무명의 목소리



인류가 존재한 이래, 온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해왔다.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신분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소수의 지주들이 땅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구습에 정하하거나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의 존재만큼 평등함을 외치는 사람들은 늘 존재해왔다. 때로 그 외침은 생명을 담보로 하고, 젊은 나이에 수감되고 일신의 안락을 포기해야 하는 힘겹고 거친 삶이었다. p13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늘 존재해왔다. 안타까운 건 이런 이들은 끊임없이 존재할 것이고, 이들이 저항할 수밖에 없게끔 하는 이들도 끊임없이 존재할 거라는 거다. 그들은 불합리와 부조리한 억압의 틀을 계속 만들어왔고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 틀을 깨부수기 위해 노력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 저항을 표현한 이들, 이름 없는 이들의 기록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들은 책뿐만 아니라 연설문, 법정에서의 최후 진술, 슬로건, 대자보, 낙서, 팸풀릿, 가요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자신들의 분노를 표현했다. 이 책, <저항자들의 책>은 이들의 목소리를 역사적 상황 설명과 함께 연대기 순으로 엮은 것이다.


   백성을 억압하는 왕의 잔인한 통치는 살인자의 흉포함보다 더 가혹하다.

p31 티루쿠랄, 티루발루바르, BCE 200년경


   저항과 분노의 목소리가 있었다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닌 것은 그러한 일이 발생하는 사회였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도대체 민중을 억압하지 않은 나라는, 권력자는 없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한번이라도 이런 목소리가 없었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대한민국의 저항의 기록을 외국인의 저서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만적의 난(1198), 동학농민운동(1894), 4·19혁명(1960), 광주민주항쟁(1980)에 관한 기록이 그리고 한국의 시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에 실린 시가 이 인류 4000년의 역사의 기록에 포함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특정 교과서에서는 제대로 만날 수 없을 지 모르는 기록들일 것이다. 


 여기 그대와 나 외에 공범은 없소.

   그대는 압제자, 나는 해방자요.

p70 해방자가 압제자에게, 투팍 아마루 2세, 1781


   들여다보면 저항자들의 목소리는 그 울림이 같다. 억압의 이유와 방식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억압하는 이들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저항자들의 목소리는 그 아픔을 알기에 같고, 그들이 바라는 것이 다를 수 없기에 같다.


    말씀해보십시오. 어떤 것이 당신의 것입니까? 당신은 어디서 당신의 행복을 길어왔습니까? 당신은 마치 극장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다른 사람들은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것들을 마치 자신만의 것인 양 다루는 사람 같습니다. 부자들이 바로 그렇답니다. 그들은 공공의 재화를 선점했기 때문에 그 재화를 마치 자신만의 것인 양 취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남은 것들을 부족한 사람들에게 돌려준다면 아무도 부자가 되거나 가난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자는 도둑입니다. 

        p36 어떤 것이 당신의 것이오?, 카이사리아의 바실리오, 300년경.


  물론 압제자가 권력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오랜 인류 역사에서 여성과 동성애자에 대한 탄압, 이민자에 대한 탄압, 유색인종에 대한 탄압, 그리고 어린 아이에 대한 탄압 또한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의 저항의 목소리 또한 울린다.


    결혼은 고대 인간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큰 오류입니다. 결혼한다는 것은 곧 노예가 된다는 뜻입니다. … 따라서 결혼은 자유도시에서는 더 이상 묵인될 수 없습니다. 결혼은 범죄로 간주되어야 하며 가장 혹독한 수단에 의해 제압되어야 합니다. 누구도 자신의 자유를 팔아넘김으로써 다른 시민들에게 나쁜 본보기를 보일 관리는 없습니다.

p138 여성동맹에서의 연설, 파리코뮌 지지자


  인류의 멸망이 도래했고 위기라며 전세계가 협력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이들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고, 자국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우선시한다. 그들이 바로 혁명을 유도하는 이들이다. 위험과 위기를 극복하고 노력해야 한다지만 그 노력의 주체는 늘, 민중이다. 위험하니까 그 위험을 모두 감수해야 하고 모든 위험의 순간에 뛰어들어 위험을 몸으로 막아야 한다. 하지만, 자세히 알지 못할 때도 많다. 왜, 위기인가를. 무엇이 위기를 불러 왔는가를. 알고자 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제한되었고 그렇게 수천년을 저항자의 이름으로 살아왔다. 무명씨의 기록처럼 “지식인이면 어떠냐 / 노동자면 어떠냐 / 농민이면 어떠냐 / 우리는 민주시민이다.”  이 하나의 문구로 민중은 뭉친다. 이 하나로 민중은 혁명가가 된다.


    혁명가가 된다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 행복해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혁명가는 삶으로부터 도피해서는 안 된다. 혁명가는 투쟁을 위해서 사는 것이 의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삶을 즐겨야 한다.

     p371 내 피는 붉은 투쟁의 강으로, 우고 블랑코, 1966 


  이 역사 속의 모든 기록들은, 결국 실제로 일어난 일들에 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 기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행동이 있었다’.


     나는 세상을 변화시킬 도구로서, 단결의 힘을 철석같이 믿는다. 또한 대화의 힘도 믿는다. 그러나 말을 증명하는 것은 행동이다.

      p523 말을 증명하는 것은 행동이다, 헤닝 만켈, 2010



저항자들의 책 

4000년 인류 역사에 울려 퍼진 분노와 저항의 앤솔러지


타리크 알리 서문, 앤드루 샤오・오드리아 림 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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