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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퇼레, 자살가게
이런 가게가 있다면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죽는 방법을 검색하며 함께 죽을 사람을 찾는 요즘의 분위기에서 온라인을 벗어난 오프라인에서
‘자살’ 방법을 친절히 안내해주는 가게가 등장한다면!
자살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자살을 희망하는 이들이 있기에 이들을 위해 철저한 맞춤서비스를 행하는 가게가 있다. 이 가게는 가문 대대로 자살용품을 판매해왔고 여전히 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건, 그만큼 수익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이용자가 많다는 얘기다.
이 상점의 판매물품을 한번 보자. 어떤 목매달기 총과 칼, 밧줄, 독약은 물론이고 독이 묻은 사과와 투신용 시멘트 등 죽을 수 있는 모든 상품이 준비되어 있다. 상품을 팔기 위해 손님들을 위해 친절과 적극적인 서비스를 행한다. 죽지 않으면 전액 환불!까지도 해주는 극강의 서비스 마인드로 상점을 운영하는 이 가게에 가업을 이을 아들 알랑이 태어난다. 주인인 미시마 튀바슈는 칼과 총의 전문가이고, 아내인 뤼크레스는 독극물 전문가이다. 장남 뱅상과 딸 마릴린이 있기에 굳이 알랑이 태어나지 않아도 가업을 이을 자식 걱정을 하지는 않아도 되었지만 그저 알랑은 오직 자살용품을 시험해보다 태어났을 뿐이다.
알랑은 출생부터 이 가게의 분위기와 맞지 않게 태어났다. 그는 웃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고, 애가 웃네!”라고 하면 세상 모든 부모들은 좋아하지만 이 가게에선 발끈한다. 웃는 게 아니라 입가 주름이라고 바득바득 우긴다. “튀바슈 가문은 절대로 웃지 않는다구요”
"벌받고 있는 겁니다. 학교에서 자살자에 대한 질문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근데 쟤가 뭐란 줄 아십니까? 아 글쎄, '자, 살자!' 고 하는 사람이라나 뭐라나, 그랬다는 거 아닙니까!" p39
알랑은 가게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 웃는 인상으로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킨다. 가게 인사법은 “명복을 빕니다”라고 가르쳐 주고 손님들 앞에서 흥얼거리지 말고 웃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가게는 음침한데도 화사한 햇살이 내리비치는 푸른 하늘 그림을 그리고 좋은 꿈꾸라고 인사한다. 탁월한 긍정과 낙천적인 알랑의 행동에 가족은 걱정이 한가득일 수밖에 없다. 보통의 가정에 괴짜 하나가 분위기를 반전시키듯 괴짜 가족에 보통의 아이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 가족이 평범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더욱 더 알랑이 평범해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사고치는 개구쟁이 아이가 어떠한 구박에도 주눅들지 않고 여전히 개구쟁이짓에 빠져 있듯이 알랑은, 자기만의 개구진 활동에 열심이다. 가족들이 원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에서 어쨌든 가족들에게 알랑의 행동들이 ‘튀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럼 다른 아이들은 알랑과 어떻게 다른가. 큰아들 뱅상은 반 고흐에서 딴 이름인데 그는 식욕부진증 환자로 한시라도 붕대를 감지 않으면 머리가 터질 거라고 믿으며 어두운 그림만 그린다. 뱅상은 삶을 끝장내고자 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유원지, 자살 테마파크 모형물을 만들고 있다. 이곳에선 돈을 내고 사격장에서 과녁이 되거나 감전사, 익사 등의 방법으로 죽을 수 있다.
마릴린은 먼로의 이름을 연상하게 하지만 먼로와는 달리 통통하고 거북스런 몸매를 가지고 있다. 마릴린은 이런 자신을 창피해하며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며 티셔츠에 ‘사는 게 지겨워’라는 문구를 달고 있다. 마릴린은 생일선물로 받은 주사기를 가지고 침샘에서 독이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자살자에게 죽음의 키스를 판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엔 그 사람에게 키스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
어쩐지 음침하고 우울할 것만 같은 이 가게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바로 알랑의 문제적인 행동들 때문에 시종일관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가득하고 코믹한 느낌이 가득하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는 작가 장 퇼레의 글솜씨가 책을 보는 내내 웃게 한다. 그런 마음이 된 듯 가족들 역시도 어느덧 원하지도 않게 알랑의 긍정에 중독되어 삶에 대한 희열을 찾아가고 심지어는 알랑이 없는 동안엔 알랑을 그리워하기까지 한다.
"삶이란 있는 그대로의 삶 자체를 말하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서툴거나 부족하면 서툴고 부족한 그대로 삶은 스스로 담당하는 몫이 있는 법입니다. 삶에 그 이상 지나친 것을 바라선 안 되는 거예요. 다들 그 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삶이 말살하려 드는 겁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그 모든 것을 좋은 면에서 받아들이는 편이 나아요. 목매달 밧줄이나 권총 따위는 여기 이곳에 맡겨두고 말이죠. 요즘 손님처럼 겁에 질리고 불안에 떨 때 밧줄이든 뭐든 목에 걸고 어디 한번 잡아당겨보세요. 뭐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다 의자에서 떨어져 무릎 깨지는 건 순간이죠. 무릎 아프지 않으세요?" p154
자살가게에서 이런 말을 할 거라 생각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자살가게는 희망을 파는 가게로 바뀌어 간다. 그리고, 알랑에게는?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고 있다는 알랑의 묘사에 웃음띤 알랑을 상상하면서도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 그 묘한 느낌을 흔들어 생각해보니, 그것은 냉소와 슬픔이 섞인 그림이었다. 가족들에게서 느낀 것이 코믹이었으니까. 이 결말을 생각했을까. 얼마간 자살가게의 살자가게로의 변화는 예측하기도 했지만.
아이는 한 손으로 버티며 꾸준히 올라간다. 이제 가족과의 거리는 불과 3미터 남짓. 스웨터를 입은 등짝과 바지 위로 네온의 광고문안이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알랑은 붕배를 단단히 틀어쥔 채, 지난 일들에 대한 그 어떠한 아쉬움이나 미움도 없는 덤덤한 마음으로 저 위 가족들 얼굴을 바라보면서 흔들흔들 오르고 있다. 지금 보이는 저들 모두의 행복과 미래에 대한 갑작스런 신념, 저 얼굴들에 빛나는 환한 웃음이야말로 알랑의 일생일대 걸작이나 마찬가지다. 2미터가 남자 누나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린다. 튀바슈 부인은 난데없이 어린 시절 유치원 마당에 들어서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듯 가까워지는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 알랑의 임무는 완수된 것. 순간……그는 손을 놓는다! p209
희망에 전염된, 다시 웃음을 찾은 가족들과 사람들은 이제 찾은 행복한 기운을 잘 유지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의, 알랑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던가를 생각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우울에 허덕일 때, 내 옆의 소중한 사람이 힘든 모습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마음이 되어 알랑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어쨌든 이 허무란.
"……잠이나 좀 잘래."
어차피 내일이면 또 살아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