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지 한다
결국 그들이 정치라고 표현하던 것은 ‘지배’였고, 행정이라고 부르던 것은 ‘군림’이었음을 우리는 목격했다. 시대는 점점 암울해져 이런 지배와 군림에 저항하면 제재를 당하고 ‘가만있으라’는 전근대적 가이드라인도 등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거부한다. ‘가만있지 않겠다’ 다짐하며 거리로 나서고 촛불을 켜든다. 그리고 주저하는 자신을 향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절규를 일깨운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어야 할 때 빚어지는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이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이들의 지독한 침묵이었다고.” p5~6
더할 나위 없이 짜증이 났는데 표면적인 건 폭염이었다. 그리고 비가 온다는 기대감에 흐린 하늘을 보고 잠시 희망이 샘솟았다가 멀쩡한 하늘을 보고 다시금, 짜증이 몰려 올려 하고 있다. 표면은 무슨, 불쌍한 기후에 짜증을 전가하지 않기로 했다. 표면이든 내면이든 요 며칠의 이 짜증의 원인을 제목이 정확히 말해준다.
“대한민국은 왜 헛 발질만 하는가 -
정치와 행정이란 이름으로 지배하고 군림하는 저들에게 분노한다!”
변상욱, 페이퍼로드, 2014.
핫이슈의 홍수 속에 간간히 등장했다 사라진 ‘민영화’, 신공항 논쟁과 ‘아무 일도 없었다. 원래대로’라는 뜬금없는 결정, 더 뜬금없는 사드배치, 연이은 뜬금 대구공항 이전. 정치권에 대한 로비자금은 허구헌날 나오는 얘기고. 국민들의 희망의 전기를 위한 특별사면이 이뤄진다고 하고. 도대체 죄인을 사면하는 것이 무슨 희망이라고, 나오는 이들이야 뻔한 것을..........거기다가 날도 더운데 개, 돼지거리는 ‘교육부’의 관리까지. 연이어 온몸에 스팀을 높여 습도를 생성한다. 지랄도 풍년이라는 말이 새삼 생각난다. 엊그제 뉴스기사(2016.7.10)를 보다가 마우스를 확 집어 던졌다. 내 컴퓨터가 무슨 죄람.....
청년수당이 5일만에 1천명이 지원해서 복지부가 수당 지급을 막을 것이라는 기사였다. 정부 부서 중에서도 가장 약한 부서 중의 하나로 꼽히는 복지부의 존재감 있게 일하는 뉴스를 접했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은 서울시의 사업으로 주민등록 기준 서울에 1년 이상 거주한 만 19∼29세 가운데 주 근무시간 30시간 미만인 청년이면 신청할 수 있다. 대상자에게 최장 6개월간 월 50만원 활동비를 현금으로 주며 매달 활동계획서에 맞게 활동했는지 보고서를 내고, 주요 지출 내용을 첨부해야 한다. 대상자 선정 기준은 가구소득(건강보험료 기준)과 미취업기간(고용보험), 부양가족 수(배우자와 자녀)다.
청년들의 취업난이 가속화됨에 따라 단기간이라도 안정된 생활과 새로운 활동 도약을 위한 지원으로 보이는 이 사업이 시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복지부가 "서울시가 사업을 강행하면 직권취소를 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사회보장기본법 위반이란다. 때문에 서울시가 법을 위반하는 것을 볼 수 없어서 보다 적극적으로 시정명령, 취소·정지 처분, 교부세 감액 조치 등의 엄정한 법적 대응으로 맞설거란다.
정부가 지자체의 복지사업을 장려하지는 못할 망정 막는 이 한심한 행태가 지극히 ‘정치적’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여러 뻘짓을 쳐다보는 중에서도 이 뻘짓을 보며 변상욱의 책제목이 딱 떠올랐던 것은 정부의 행태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권력자의 지배와 군림에 대한 사실을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외국의 사례를 비교하며 언론인인만큼 언론의 문제적 행태에 대해서도 꼬집으며 다양한 헛발질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이 책을 살펴보면 큰 틀이나 작은 틀에서나 이명박, 박정희 정권에 대해 가지는 비판은 한결같다. 이쯤되면 문제점에 대해 완전히 틀이 잡힌 정부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도 다르지 않다. 아주 오래도록 우리가 이 상황의 목격자이고 피해자이고 가해자이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지독한 선한 침묵자였기에.
언론은 투표가 답이라고 하고 계속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사회참여가 아니라 ‘투표’만 독려하는 것에 대해 꼬집는다.
국민의 정치참여의 핵심은 투표참여가 아니라 정치 자체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정치에 나서라 하지 않고 투표에나 나서라고 한다. 왜 국민에게 정치를 권하지 않는가? 이 문제는 정치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부터 따져야 한다. 권력을 쥔 사람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절차가 권력일까?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정치가 아니라 지배이다. 진정한 민주정치는 국민이 자신의 운명과 삶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해 고루 나누는 것이다. p286
투표를 해봐서 안다. 한때는 투표가 적극적인 참여라고 생각했었지만 ‘투표’의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공정성이 의문시되기까지 하는 이때, 과연 투표가 답이 될 수 있을까. 저자의 말대로 ‘참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개, 돼지 발언에 대한 파면 요구나 이 발언에 항의하며 최저임금 인상 시위도 적극적인 의사표현과 참여의 한 측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위하는 족족 연행되거나 시위 자체가 무산되긴 하지만. 정부의 헛발질이 반복되고 강도가 높을수록 ‘분노’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분노의 수위가 깊어지면 헛발질을 멈출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결과로 보고 싶은 날이다.
연구진은 권력을 주면 3가지 변화가 발생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에 집중한다.’ ‘아래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둔감해진다.’ ‘자신과 측근들은 규율을 지키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p16
저자는 권력자가 헛발질하는 이유, 그러니까 여론이 따가워도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로 페이싱 효과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의미 있는 만남이었고 상대방과 소통이 잘 되었다고 착각하는 상태를 말한다.
자기가 말을 많이 해 만족스러우면 당연히 상대는 말도 못하고 듣기만 해 만족스럽지 못한 게 뻔한데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그러니 측근에게 둘러싸여 칭찬에 익숙한 권력자는 소통이 안 되고 자기 생각만 주장하며 실수를 거듭한다. p16
이것이 모든 권력을 가진 이의 특징이라 할지라도 ‘권력’을 쥔 이에게도 ‘개인차’가 있음을 믿으며 그 믿음이 없다면 사회참여의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정치·사회 참여하는 민중들이 많을수록 권력자의 행태가 변화할 수 있으며, 그런 활동으로 ‘모셔야 하는 권력자’를 선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