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는 진단을 따른다

 

우에노 치즈코 저, 나일등 옮김, 은행나무, 2014.


  치료는 정확한 진단을 통해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시작된다. ‘원인’을, ‘진단’을 잘못하면 되면 치료의 방향은 당연 달라지고 결과는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처방은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은 진단의 결과에 의한다. 우선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아니, 그런데 도대체 왜?

  진단을 외면하며 치료의 방향을 자꾸 달리 하려는 상황을 또 맞닥뜨린다. 하지만 충분히 예견한 결과여서 놀랍지는 않다. ‘강남역 살인사건’ 얘기다. <검찰, 강남역 살인 사건은 여성혐오 아닌 정신질환 탓, 중일일보> <檢 "'강남역 묻지마 살인' 여성 혐오 범죄 아닌 정신분열증에 의한 범행, 조선일보> <강남역 살인사건은 피다 버린 담배에서 시작됐다, 뉴시스>  2016.7.10일자의 기사들은 이렇게 보도했다. 보도의 주체는 검찰이다. 한 정신질환자의 치료부족으로 인한 사건이라고 수사의 결론을 지었다. 애당초 살인자가 여성혐오 발언을 한 이후 피해자에 대한 추모분위기에 즉각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말해 왔던 만큼 결론은 ‘여성혐오가 아니에요’가 될 것이 뻔한 것이었다. 그래도 새롭게 추가된 것이 ‘여성이 살인자에게 담배꽁초를 버려서 사건이 시작됐어요’라니.

  정부는 이상하게도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줄기차게 싸움을 붙이는 형태로 문제를 ‘해결’이 아니라 외면해 왔다. 성별 싸움은 오래전부터 행해 왔던 것이고 보육료 문제는 전업주부와 워킹맘간의 싸움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싸움을, 노인과 청년층의 싸움 등 국민들 간 경쟁과 싸움붙이기의 달인이었는데, 이번 ‘여성혐오’ 상황에 관해서는 죽어라고 싸우면 안돼 하고 타이르고 있다. 여성혐오범죄라는 수사결론은 정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나?  

  한창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강남역 사건이 ‘여성혐오’에 대한 공론의 장을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다. 소모적인 논쟁이든 대안을 가진 논쟁이든 최소한의 성별혐오에 대한 문제인식의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와 남성혐오의 분위기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 것인지는 더욱 논의가 되어야 한다. 보다 대안적인 차원과 열린 인식은 어쨌든 격한 논쟁을 벌인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목소리, 주장이 인터넷 상에서만이 아니라 표면 위에서 펼쳐지게 되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격한 반응도 있고 타인의 의견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은 분위기도 있지만. 

  어쨌든 여성혐오의 역사는 길고 여성혐오의 종류도 많고 여성혐오의 방식도 많고, 그냥 많다. 일본의 사회학자가 쓴 이 책은 상당히 재밌다.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이 낯설지 않은 것은 ‘쉽게 눈에 띄는’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성혐오는 일상에서 언제든 일어나고 있고 당연 예술작품에도 드러나 있다. 있는 것을 굳이 없다고 소리치는 심리까지도 이해가 된다. 너무 부끄럽기 때문 아니겠는가.

  부끄럽다는 말에 너무 발끈하지 말자. 여성혐오가 ‘남성’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여성혐오라고 해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혐오만을 비판하지 않는다. 여성들 자신이 ‘여성’을 혐오하기도 한다. 이러한 여성들은 성차별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 가부장적 사회제도에 길들여진 여성들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여성혐오’라는 말에 남성들 스스로를 ‘가해자’로 치부한다고 발끈하지 말자. 저자의 말대로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혐오를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모든 남자들은 여자들을 괴롭히는 존재다’가 아니니까.


여성혐오는 성별이원제 젠더 질서의 깊고 깊은 곳에 존재하는 핵이다. 성별이원제의 젠더 질서 속에서 성장하는 이들 가운데 여성 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중력처럼 시스템 전체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너무나도 자명하게 존재하고 있는 탓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의식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이다. p12~13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의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저자의 주장대로 어떤 형태로든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지속되어 온 여성혐오의 미러링으로 남성혐오가 촉발되었든 어쨌든 이 사회에 여성혐오와 남성혐오는 공존하고 있고 모두가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문제는 드러났는데 이에 대한 대안은 커녕 논의의 장조차 치워버리려는 상황에서 이 고통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물론 완벽한 해결이란 있을 수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 의지가 있느냐이다. 저자는 ‘여성혐오’를 치료하려면 여성혐오의 원인을 제거해야 하는데, 저자는 여성혐오의 실체를 아는 것에서부터 여성혐오를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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