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복을 책임져라!
서은국, 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밤사이 몰아치는 빗소리에 ‘밖에 나갈 일만 없다면 집안에서 듣는 빗소리는 참 좋다. 행복하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밖에서 비를 맞고 있다면, 비록 우산이 있다 하더라도 ‘아 집까지 언제 가, 짜증나’라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비와 빗소리에 느끼는 내 마음의 상대성에 다시 묻는다. 너는 지금 정말 행복하니?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 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 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p10
그래.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 사는 것,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소망이다. 그런데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인간인데 이토록 행복감이 박복하다면 이론에 어떤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행복한 인간만 살아남게 설계되어 있다면 결국 ‘행복’이라는 생존조건은 결과적으로 필연적이었던 건가.
마음만 고쳐먹으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조언이 정말로 참된 깨달음과 인생전환의 계기가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복적으로 듣게 되면 ‘흥’ 콧방귀 나게 하는 말이다. 지금 돌아가는 세상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하고 싶으냐고 화가 날 참이다. 하지만 ‘행복’에 관한 한 그것은 마음가짐이라고 사물을 대하는 태도의, 인식의 문제라고 거의 확정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역시나 그런 전개를 할려 치면 이따위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모르냐고?!라고 버럭 소리치고 책을 던져 버릴 참이었는데.........
불행한 사람은 긍정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생각을 고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런 식의 행복 지침서를 읽고 행복해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왜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지기 어려운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행복은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고, 생각은 그의 특성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뜻대로 쉽게 바뀌지도 않지만, 변한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전체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p16
시작부터 이러니 책을 던질 수가 없다. 고스란히 손에 들고 어떤 반전으로 향하는지 지켜봐야 했다.
작가는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행복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자연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생각을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생관 역시도 인간은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 추구라고 보았다. 오랫동안 행복이 삶의 목적이라는 철학자의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저자는 행복 역시도 생존에 필요한 도구라고 말한다. 생명체의 존재는 생존이라는 점에서 보면 행복은 도구이며 단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음식을 먹을 때, 데이트를 할 때 행복하다는 느낌을 경험해야 또다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랑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새로운 것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최근의 일들만이 현재의 행복에 영향을 준다. 저자의 대학생들의 행복감에 대한 추적 연구 결과 약 3개월이었다. 그렇기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이 반복·지속되는 것이 절대적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이것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은 문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머리는 ‘불행하지 않은 것’과 ‘행복한 것’의 질적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생수 한 병은 갈증의 고통을 없애주지만, 갈증이 가신 사람에게 물은 더 이상 행복을 주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돈이나 건강 같은 인생의 조건들은 사막에서의 물과 비슷하다. 일상의 불편과 고통을 줄이는 데는 효력이 있지만, 결핍에서 벗어난 인생을 더 유의미하게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p115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는 서로 다른 별개의 현상인데 사람들은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고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 뒤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큰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살면서 깨닫게 된다. 이것은 인생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행복의 총량을 과대평가하며 이 행복의 ‘지속성’측면을 빼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타인을 의식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더 행복의 기준이 ‘남’을 향해 있기도 하고 또한 즐거움과 쾌락에 대해 그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하며 도덕적, 이상주의적, 철학적인 ‘행복’만을 쫓기도 하다.
행복도 오컴의 날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행복은 가치나 이상, 혹은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천연의 행복은 레몬의 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쾌락적 즐거움이 그 중심에 있다. 쾌락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뒷전에 두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p186
잘 생각해보면 이 책에서 말하는 행복 또한 ‘생각’ ‘마음가짐’의 다른 얘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어차피 삶에 대한 생각, 행복에 대한 기준은 다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면 전반적인 사회의 분위기이다.
중산층의 정의에 프랑스는 ①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②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을 것 ③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을 것 ④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 ⑤ '공분' 에 의연히 참여할 것 ⑥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이 대통령이 ‘삶의 질’에서 정한 기준이라 한다.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은 ①페어플레이를 할 것 ②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③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④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⑤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미국은 어떤가.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의 기준이 ①자신의 주장에 떳떳할 것 ②사회적인 약자를 도울 것 ③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 ④그 외,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직장인 대상 설문결과이긴 하지만 사회분위기가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져 왔음은 분명하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렇게 생각하도록 이끌어왔기에 우린 스스로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①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②월급여 500만원 이상 ③자동차는 2,000 CC급 중형차 소유 ④예금액 잔고 1 억원 이상 보유 ⑤해외여행 1년에 한차례 이상 다닐 것.....
행복이 도구이자 수단이라면, 생존을 위한 도구인데 한국인의 도구는 어찌 보면 쉽게 이룰 수 있는 수단 아닌가? 이렇게 정확한 표준을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가며 이것을 행복을 유전자로 전수하는 한국인들은 언제쯤 참행복을 느끼는 유전자를 몸 속에 저장하고 살아가게 될지 궁금해진다. 프랑스보다, 미국보다, 영국보다 쉽게 수치화 할 수 있으니 의지만 있다면 이룰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사실 기가 막히다는 다른 말일 뿐.
행복의 요인은 해도 적어도 절대적 불행의 요인이 제거된다면 행복에 대한 감흥은 달라질 수 있다. 심각하게 불행의 척도만을 만들어내고 심지어는 불행까지도 장려하는 대한민국의 분위기가 한국인의 행복의 기원을 새로 쓰고 있다. 이런 ‘행복’만을 유전자에 새기는 한국인의 미래가 참으로 암담할 뿐이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들을 함부로 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노력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생각과 마음가짐을 달리 해서 만들어 가야 할 일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하는 이다. 이 책의 진화론적 설명을 빌자면, 그렇게 생각한다. 사회적인 분위기와 불행의 요인을 제거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될 일이다. 잠재적 불행한 민족을 양성하지 않으려면......죽어라고 개인보고 변해야 한다고 할 일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