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아다니는 왕자들의 정체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명작 동화에 숨은 역사 찾기
박신영, 페이퍼로드, 2013.
책을 읽으며 특정 부분에 중점을 두게 된다면 그 부분이 전공이거나 관심두는 부분이거나. 보통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을 하게 되는데 내 관점에 따라 책을 선택하거나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다.
작가는 고전 동화와 소설에서 자신의 관심 분야를 이끌어 내어 집중한다. 책에 쓰인 27개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자기만의 줄거리와 주제를 가지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주제와 줄거리에 맞게 이야기를 선별하고 배치한다. 작가의 이 책에서 말하는 주제는 ‘역사’다. 동화와 소설이 쓰여진 당대의 인물과 역사적 배경과 상황에 관한 이야기다. 구전되어 온 동화가 어떻게 탄생되고 변형되는지를 사료들을 제시하고 있어 동화와 소설을 환상과 허구가 아니라 타당한 역사적 현실로 인식하게끔 한다.
책의 제목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가 담고 있는 내용을 보자. 잠자는 숲 속의 공주뿐만 아니라 백설공주 등 많은 동화 속에 등장하는 왕자들은 백마를 타고 참 많은 곳을 돌아다닌다. 그 과정에서 위험한 일도 겪지만 공주를 만나 행복한 결혼을 하는 걸로 마무리된다. 어쨌든 모험을 통해 성공과 사랑을 거머쥐는 수많은 백마 탄 왕자님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걸까. 저자는 이들 왕자가 “신분 상승을 꿈꾸는 떠돌이 구혼자”라고 말한다.
작은 나라에 후계자가 될 왕자가 많은 경우 문제가 생긴다. 영토를 분할하여 상속하면 국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위를 계승하는 한 왕자를 제외한 나머지 왕자들은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야만 했다. (……)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웃 나라 외동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처가의 왕국을 물려받아 공동 왕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자들은 공주가 한눈에 반할 수 있도록 현란한 말솜씨와 에티켓, 기사도를 몸에 배도록 수련해야 했다. 유리관 속의 백설 공주가 자기 스타일의 여성이 아니어도, 심지어 100살쯤 연상인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100년 동안 이를 닦지 않아 입 냄새가 진동해도 꾹 참고 키스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아아, 슬프지만 이것이 바로 소녀들이 한 번쯤 꿈꾸던 백마 탄 왕자, 프린스 차밍의 정체인 것이다. p16~20
이 목적을 명확히 해주는 대표적인 왕자가 딱 떠오른다. 영화 겨울왕국의 열두번째 왕자인 한스. 많은 동화책에서 왕자들의 이러한 목표가 드러나지 않아 수많은 세월 동안 백마탄 왕자님에게 환상을 품고 산 이들에게 뒤통수를 딱 때리는 역사적인 상황이 알려주는 진실을 작가를 통해 알게 된다.
잔혹한 늑대로 잘 알려진 빨간 모자 속 늑대에겐 어떤 역사적 상황이 있을까. 이는 실제 ‘평화상실형’을 받은 인간이다. 중세에 중죄를 범해 평화상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을 누군가 죽여도 죄가 되지 않기에 불안한 이들은 숲으로 도망가게 된다. 평화상실자는 바르구스라고 했는데 늑대를 뜻하는 말이며 실제로 죄인에게 늑대 머리를 덮어 씌워 추방하기도 했었다고 하고 몸에 털이 많은 사람을 늑대인가이라 여겨 추방하기도 했다 한다. 그러니까 동화 속 늑대는 평화상실형을 선고받은 죄인이었던 것이다.
많이 알려지고 또 많이 해석되고 있는 백설 공주 속에서 찾아보는 역사적인 이야기는 뭐가 있을까. 작가는 백설 공주 속 못된 왕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니까 농경 사회 속에서 여성은 생산력이 중요하기에 나이가 들어갈수록 젊은 여성에 비해 쓸모없는 취급을 받게 되었다. 늙은 왕비의 이야기는 결국 이 땅의 여성들이 인구 생산의 도구로 인식하는 시대에 살던 여성들의 애환이 가득 담긴 이야기라는 것이다.
빨간 구두 이야기에서 왜 그토록 빨간 구두를 신고 춤추는 것이 금기가 되고 죄악이 되는가. 여기에는 종교 개혁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그 답을 알려준다. 종교 개혁 이후 사회는 엄격하고 금욕적인 풍조가 팽배했다. 그렇기에 춤추고 술 마시고 극장에 가는 것은 큰 죄악이다. 특히 빨간색은 사치와 방종의 상징이기도 했고 여전히 검은 양복에 검은 스타킹과 검은 구두만 착용하는 칼뱅주의자 신도들이 네델란드에만 50~60만 명이 있다고 한다.
이런 형태로 작가는 동화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이나 상황을 들려준다. 그렇게 해서 더욱 깊은 이해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렇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동화들이 교훈을 가득 담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니까 우리는 동화에서 너무 교훈을 이끌어 내려고 하는데, 변화무쌍한 사회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안쓰러운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마냥 환상적이고 재밌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각자가 감내하고 인내해야 했던 무수한 날들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