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가 될 수밖에 없는


셜리 잭슨, 힐하우스의 유령



   이 소설이 읽을 맛이 난다면 문장의 맛도 크다. 문장이 좋다. ‘고딕 미스터리’, ‘고딕 호러’의 대가라 불리는 작가 셜리 잭슨의 이 소설을 스티븐 킹은 지난 백 년간 등장한 초자연적 소설 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았고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스티븐 킹은 자신의 작품 <샤이닝>을 썼다.

   저자는 자신의 성격과 상황이 닮은 주인공을 만들었다.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내어 자신의 심리를 표현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그토록 작가 자신은 공포와 광기 속에 있었나 싶다. 소설을 소설로 읽고 작가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그렇지 않아도 강렬했던 소설에 대한 느낌이 더욱 배가되었다. 작가 셜리 잭슨이 악마의 소리를 듣는다는, ‘마녀’라는 소문이 있었다니! 셜리 잭슨은 남편이 발령받아 간 노스 베닝턴이란 마을에서 주민들과 잦은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힐즈데일 사람들이 상당히 불친절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작가가 이 마을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주인공 엘리너가 자신의 자유를 찾기 위해 찾은 힐 하우스에서 겪는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공포’는 일반적인 공포 소설과 다르다. 그 점이 이 소설에 빠지게 되는, 비교불가한 공포를 느끼게 되는 원동력이다.

   

그 어떤 생명체도 절대적 현실에 갇힌 채로 살아간다면 광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심지어 종달새나 베짱이도 꿈을 꾼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어둠을 품은 채 언덕을 등지고 서 있는 힐 하우스는 광기에 물들어 있다. 지금까지 팔십 년간 자리를 지킨 이 건물은 앞으로도 팔십 년은 우뚝 버티리라. 벽은 똑바르고 벽돌은 차곡차곡 쌓여 있으며 바닥은 탄탄하고 문은 꼭 닫혀 있다. 힐 하우스를 이루고 있는 목재와 석재 위로는 항상 침묵이 내려앉는다. 무엇이든 저택 안을 걸어갈 때는 항상 혼자이다. p35


  광기에 물든 힐 하우스는 진짜일까.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엘리너는 11년 동안 간호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언니와 소유권이 반반인 차를 타고 집을 떠난다. 방황과 정체된 삶에 언니 부부와의 갈등이 한몫했고 또 하나는 힐 하우스의 심령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조수가 필요하다는 몬터규 박사의 편지 때문이다.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지난 생애에 대해 자책하지만 32살에 비로서 자신의 결정으로 힐 하우스를 찾아가는 엘리너의 마음은 경쾌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곧 엘리너는 자신보다 더 젊고 매력적인 시어도라를 만나 더욱 열등감을 느끼게 될 뿐이다. 힐 하우스 상속자 루크 샌더스와 몬터규 박사 부부와 함께 힐 하우스에서 생활하면서 이들이 겪는 기이한 현상들은 실제인 걸까.


힐 하우스의 선과 공간은 불행한 우연으로 인해 집의 정면에 악마적 분위기를 드리웠다. 그 원인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으나 광기 어린 배치와, 고약하게 비틀린 각도와, 하늘을 등진 지붕을 보노라면 절망이 밀려들었다. 게다가 힐 하우스는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p73


  이 어둡고 음산한 집이 주는 공포를 엘리너는 사람들에게서 위로받고 싶지만 엘리너는 사람들에게서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다. 12살에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겪은 엘리너는 자신의 예민한 성격 때문에도 이 현상들에 몹시 두려워하고 공포의 강도도 거세진다. 폴터가이스트는 독일어러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영’이란 뜻이며 이유없이 이상한 소리가 나거나 집이 흔들리거나 물체가 움직이는 현상을 말한다.


두려움에 떠는 것은 이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합리적 사고를 기꺼이 버리는 짓이죠. 두려움에 굴복하거나 싸워 이기거나 둘 중 하나이지, 그 중간을 택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p244


  엘리너는 벽에 피로 쓴 자신의 이름이며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들을 들으며 더욱 공포와 광기에 휩쓸린다. 그러면서 힐 하우스가 가진 힘이 이것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 끝없는 자신의 불안이 이런 현상을 보게 하는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두려울 때면 세상의 이성적이고 아름다우면서 두려움이 없는 면이 분명하게 보여요. 의자와 탁자와 창문은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그대로 있죠. 꼼짝하지 않아도 카펫의 섬세한 짜임새를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이런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을 받아요. 사물들은 두려워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뇨. 우리는 자신을 아무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죠.

우리가 진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를 두려워하죠. p245


  엘리너가 힐 하우스에서 겪는 공포를 보며 오래전 한국영화 알포인트가 떠올려졌는데 점점 죄어오는 공포 속에 미쳐버리는 심정이 고스란히 전달이 되었다. 나를 둘러싼 공간이 주는 공포, 그것도 가장 편안해야할 집이 주는.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 줘야 할 가족이 주는 소외감, 손을 내밀고픈 이들에게서 받는 외면. 이 모든 것들이 심리적인 방황의 이유가 되어 한 인간을 더욱 더 폐쇄적이게 만든다. 인간이 광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은 힐 하우스가 가진 힘일까, 내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인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