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수천년 습득된 증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선택한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을 담은 사회인문학책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소설이라니. 동명의 영화가 있는 건 알았는데도 영화의 원작이라는 것을 매치시키지 못했다. 어쨌든,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비롯, 밀레니엄 시리즈를 다 읽고 든 생각은 왜, 스티그 라르손은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났는가,였다. 밀레니엄 시리즈를 완결하지 못한 채.......소설의 마지막을 알고 싶은 먼 나라의 독자가 작가의 죽음을 애도했다.

  흥미있고 가독성있는 이 소설은 스웨덴 소설이다. 어느 순간 스웨덴 작가들의 책들이 서점계를 휩쓸고 있는 듯하다. 창문을 넘으신 할아버지나 오베 할아버지 감옥에 가신 할머니들. 이 작품들이 유쾌함에 조금 더 다가가 있다면 밀레니엄 시리즈는 치밀하고 진중하다. 저녁 나절의 찬기 머금은 느낌의 북유럽이 느껴진다. 어둡고 음습하며 시린 느낌의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심은 미카엘과 리스베트이다. 일단 미카엘이 ‘정의’를 불태우는 기자라면 리스베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가의 천재 해커다. 그나마 미카엘이 어느 정도 보아 온 캐릭터라면 리스베트는 특히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다. 성격이나 외모나 재능이나 모든 면에서.

  밀레니엄 시리즈의 첫 번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중심 사건은 유명한 기업가 방예르가의 손녀의 실종이며 두 사람이 이를 파헤치면서 전개된다. 실종의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의 치밀한 추리는 흥미진진하고 거듭 밝혀지는 충격적인 실종의 이유에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1부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만 해도 1권고 2권으로 나눠져 있고 한권의 분량도 상당하다. 하지만 일단, 이야기에 발목 잡히면 밤이라는 게 뭔지, 잠이라는 게 뭔지를 잊게 된다. 마치 나의 일 같아서, 내가 아는 이에게 벌어진 일 같아서 마음 졸이며 실종의 이유와 실종자의 생존을 걱정하게 된다.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이라는 제목은 적절한가. 거대 재벌 방예르가 손녀의 실종사건과 함께 많은 여자들이 연쇄 사망하는 일들을 함께 풀어 가는데 그 사건들에서 여성들의 죽음이 ‘증오’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증오’라는 이유로 살인의 이유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증오’에는 조금이라도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탓에 여기서 껄끄러움에 주춤하게 된다. 가해자에게서 살인의 동기로 ‘증오’라는 말을 듣는다면 돌아버릴 것 같다. 아무런 일면식이 없는 이에게 대해 가지는 ‘증오’, 단지 그대가 여자라서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는 잔혹하고 악랄한 범죄들.

  그 모든 비도덕적이고 부도덕한 악랄함이 인식과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진 기가막힌 사건들은 1부에서 그치지 않는다. 개별적인 사건들로 독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도 하지만 밀레니엄 시리즈의 전반에는 여성에게 ‘증오’라 이름붙이는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악랄하고 추한 범죄들이 가해진다. 밀레니엄이 되었어도 수천년 동안 문명을 쌓고 지식과 지혜와 합리적인 이성들을 축적해 나갔다고 하는 인간들의 의식 속에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당연하게 인이 박힌 여성들에 대한 인식. 작가가 밀레니엄이라 제목을 정한 것은 수천년간 이어져오고 이어져가는 여성들을 대하는 사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는 대대로 이어지는, 상습적이고 습득된 잔인함과 폭력이 어떻게 확장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어쩌면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한 개인의 잘못된 일탈, 악마적 행위가 개인을 벗어나서 가족을 벗어나 지역을 벗어나 사회로. 그리고 사회구조가 지역사회로 가족으로 개인으로 침투해나가는 상호적인 모습들을.

  작가는 어린 시절 반파시스트로서 제2차 세계대전에 나치에 의해 수용소에 수감된 외조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 또한 반파시스트였고 반전 활동을 꾸준히 한 사람이다. 그로 인해 살해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 한다. 파시스트의 이야기가 녹여 있는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의 이력이 이 소설이, 이 시리즈가 단순히 흥미를 겨냥한 추리소설이 아님을 보여준다. 전세계가 이 책에 열광한 이유는 흥미있는 이야기에 흡인력있게 빨려들어가면서도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예리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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