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정치가들의 모든 모순과 아이러니
오랜기간 동안,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및 혁명적 투쟁사상에 관하여 거부감을 가지도록 길들여져 왔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길들여진 사람에게 있어 마르크스주의적 내용은 두가지 반응을 낳게 한다. 첫째는 반동적인 도서로서의 취급이며 둘째는 그 내용의 논리적인 전개 및 사물을 꿰뚫는 학자의 통쾌한 시각에 대한 경이와 새로운 글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모순되는 감정을 가지고서 글을 읽는 과정이었다면 모순론의 내용에서처럼 반드시 주요한 모순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글을 읽도록 이끌어 나갔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나에겐 후자쪽이 조금은 강한 듯하다. 다만 마르크스주의에서 주장하는 부분과 모순론의 차이점, 마르크스주의론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마오쩌둥이 이를 수용, 확장하였는지를 중점으로 내용을 살펴보게 되었다.
중국의 정치가이자 공산주의 이론가 마오쩌둥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시절에는 농사일을 도우며 아버지의 반대로 진학하지 못했고 16세때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양창지에게 유물론적 철학과 윤리학 강의를 받았고 비밀학생단체들과 접촉하면서 무정부주의에 관한 책을 많이 읽으며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로 기울게 되었고 또한 러시아혁명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이후 국가주석이 되었고 국가주석을 사임하고 죽을 때까지 당주석으로만 있었다. 1964년 《마오쩌둥어록》을 간행시켰고, 1965년 10월 이후에는 당내에서 완전 고립되어 연금상태에 있었으나 문화대혁명을 지휘하였으며, 1960년 이후의 중소논쟁과 문화대혁명 기간을 통하여 마오쩌둥사상을 높이 내걸었다. 1970년 헌법수정초안을 채택하여 1인체제를 확립하고 중국 최고지도자로 군림하였지만 사망하기 직전인 1976년 4월 천안문사건으로 완전히 고립된 채 사망했다.
모순론에서 마오쩌둥은 이론적인 부분에 대하여 중국의 상황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함으로써 당시의 중국상황에 대한 이해와 함께 보다 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마오쩌둥에 의해 정의·정리된 이른바 마오이즘 사상의 기본은 교조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인 것으로 보인다. 마오쩌둥은 교조주의자들의 이론과 사물에 대한 해석이라는 것이 상당히 왜곡되고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의 이론과 상황에 대한 해석에 대하여 교조주의자들의 해석을 질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논지를 주장하는 자들의 특징이 무조건 “나는 옳다. 네가 그르다”는 식의 논리를 편다는 점을 생각할 때 어느 정도 자신의 주장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와 예는 주장에 대한 동조를 떠나 일부분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게 하고 또 다른 반박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다 발전적인 토론을 할 수 있게 한다.
발단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인 모순의 운동법칙에서 시작한다. 모순은 모든 현상에 존재하며 또한 모순 속에는 특수성이 존재한다. 이 특수한 모순은 다른 사물과 한 사물을 구별할 수 있게 하는 본질을 구성한다. 모든 사물에는 모순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보편성은 특수성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양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교조주의자들은 보편성만 앞세우고 있다. 모든 사물에 내재하는 모순의 해결방식은 당연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 사회의 특수성에 기초하여 달라져야 한다.
중국사회의 경우 특수한 모순은 제국주의-특히 일본-와 중국인민간의 모순이다. 따라서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국내의 각 계급의 단결로서 민족해방전쟁을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다른 점을 마오쩌둥이 정통적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른다면 결국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결국 마오쩌둥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기초한 수정된 마르크스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가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명철한 논리를 펼치는 이론들에 대한 관심은 그것이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모순론』에서 마오쩌둥이 주장하는 내용들이 그가 중국사회에 대한 적용을 어떤식으로 이루어갔느냐였다.
이에 대하여 여러 책에서는 마오쩌둥이 『모순론』에서 얘기한 이론들을 실질적으로 1940년대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전개하였다고 하고 있다. 이른바 정풍운동으로서 그의 지위에 위협이 되는 인물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또한 마오쩌둥의 이론은 전파되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고 있으므로 마오쩌둥의 저술의 영향력과 그의 주장의 어느 정도의 실효성을 얻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논리적 전개뿐만 아니라 그의 생활과의 접목에서 이 글을 이해하면서 마오쩌둥의 부분적 논거에 수긍하는 점이 없잖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적극적인 지지자로서의 나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가 마르크스주의라는 거대한 사상가의 이론을 자기 나름의 해석틀로 수용하고 이해하였고 이를 변화시켰으며 또한 자기화한 것을 적용하였다는 것만은 기억한다.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그에 대해 좋은 것을 기억하는 자와 그의 독재를 기억하는 자들이 엉키어 있다. 난 모른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나 그가 만든 것들에 대해서나 그가 파괴한 것들에 대해서나. 독재에 조금 더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긴 하다. 그의 생의 마지막처럼 자기 속에 고립된 정치가들에 대해서 도대체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무얼까 궁금하다. 그가 자기이론을 전개하고 적극 실천한 것은 중국사회엔, 중국공산당에겐 독이었을까 힘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