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세계에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필요할까
무수히 많은 동화들을 여러 버전으로 봐왔지만 그 모든 동화들은 안데르센 아니면 그림 형제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유년의 동화는 이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에 의해 길들여졌던 것이다. 나이를 먹고 요즈음 나오는 동화책들의 황홀한 그림과 예쁜 책들에 넋이 가면서 어쩌다 전집을 읽을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어느 게 안데르센 것이고 그림 형제 것인지를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하고 싶었던 건가.
물론, 그림 형제의 동화들이 어린이용 동화와는 많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뭐가 이렇지라는 생각에 다시 표지를 확인하고서야 조그맣게 쓰인 ‘어른을 위한’ 이라는 글을 보았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느낌은 전적으로 저 글귀의 역할이었다. 그래도 전집이나 완역은 흥미를 돋운다. 빠지는 부분 없이 뭔가를 알게 된다는 기분. 작가의 원본을 보게 된다는 즐거움.
빼곡하게 쓰인 여러 편의 글들을 읽으면서 동일한 패턴들이 지루하게 여겨졌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세상이기도 하다. 누구라도 왕궁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진기하다고 하는 것들을 내밀거나 하면 공주와 결혼할 수 있다. 공주님들은 사소한 이유들로 전리품이 된다. 새어머니는 늘 아이들을 귀찮아하고 괴롭히고 마녀들은 왜 그다지도 사람들을 이유없이 괴롭히는지. 이 이야기들이 작가들의 순수한 창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떠도는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각색한 것이라고 하니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 그런 형태로 전승되었을 테다.
동화는, 동화여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 마음의 문제인가? 더 이상 동화 속 환상에 놀라울 일 없고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없으니 그림없는 동화책을 읽으며 하릴없는 지적질 속으로 빠져 버렸다. 이런 내가 안타깝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라잖아?
동화는 굳이 어른을 위한 것일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을 그대로 읽으면 된다. 그것이 동화의 세계다. 교훈을 찾아야 하고 느껴야 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필요할까. 이야기의 수위가 다르다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을 바꾸면 그것은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가 되는 걸까. 이야기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데. 그래놓고 왜 그림 형제의 이야기들을 동화라고 굳이 붙일까. 동화는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정확하게 어학 사전을 들춰봤다. 동심(童心)을 바탕으로 하여, 어린이를 위해 쓴 산문 문학의 한 갈래라고 동화를 정의한다. 동화에는 환상과 아름다움의 세계가 펼쳐져 있고 그리고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된다. 아니 그것들을 읽어내야 한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는 가지치기로 보다 온화한 말로 이야기를 조정하는데 비윤리성은 굳이 어른들의 몫인가. 그것을 구분하는 것, 비윤리에 물들지 않고 이야기를 읽어내야 하는 어른들의 세계가 벅차게 느껴진다. 요즈음처럼 급속도로 세상이 변하고 윤리에 대한 인식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는 영화등급이나 시청등급의 다른 표현이지 어른들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