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는 아름답다
달과 육펜스, 서머셋 몸
“찰즈 스트릭랜드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 사람에게는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위대함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 내가 말하는 위대함이란 출세한 정치가나 성공한 군인에게서 느끼는 그런 위대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같은 위대함은 인간 자체가 지니고 있는 위대함이라기보다는 단지 그가 가지고 있는 지위가 위대하게 보일 뿐인 그런 위대함이 아닐까.…거기에 비할 때 찰즈 스트릭랜드의 위대함은 진짜였다.”
이렇게, ‘달과 육펜스’의 처음은 시작한다. 마흔 살, 이제 삶의 안정을 취했다고 여겨지는 나이의 가장이 안정적인 가정과 직장이라는 삶을 버리고,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내용이 바로 ‘달과 육펜스’다. 제목에 대한 끌림, 주인공에게 느껴지는 강렬함.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쓰여진 전혀 허구이지 않은 이야기. 주저없이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달과 육펜스를 꼽을 수 있는 건, 찰즈 스트릭랜드에게 나를 이입시키기 때문이다.
찰즈 스트릭랜드는 한 가장의 가장으로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살아가던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주식 중개인으로서 성실히 일하던 평범한 가장이 직장과 가족을 버렸을 때는, 분명 다른 여자에게 열렬하게 빠졌을 거라는 많은 이들의 분노에 찬 생각과 달리, 그의 행동은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열정 때문이었다. 그림에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괴팍한 예술가 지망생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가난하고 고된 삶은 개의치 않고 그림에 대한 열정과 예술혼으로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아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의 괴팍스럽고 냉소적인 태도는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하고 그림 또한 인정받지 못했다. 몇 년의 방랑을 거듭하며 찰즈 스트릭랜드는 마지막으로 타히티 섬에서 정착했다. 이곳에서 17세의 원주민 소녀 아타와 결혼하여 열대의 울창한 나무 숲, 그늘 속으로 구불한 오솔길을 따라서도 한참을 가는 산호초 섬, 에덴 동산 같은 곳에서 생활하였다. 그 곳에서 스트릭랜드는 행복해 했다.
스트릭랜드의 말년 생활을 전해준 의사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나병이었고 마지막엔 눈마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번도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거나 용기를 잃은 적이 없었고 마지막 운명하는 순간에도 단 한번도 평온을 잃거나 흔들린 적이 없었다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죽으면 시체를 묻고 난 후 집에 불을 질러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무 조각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다 타서 재가 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면 안 된다는 약속을 하게 했다. 그가 그린 벽화와 함께 찰즈 스트릭랜드도 한줌 재로 남았다.
달과 육펜스는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했다. 실화인 듯 허구인 듯 스트릭랜드가 고갱인 듯 이 화가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늘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또한 달과 육펜스라는 제목이 너무 좋았다. 이때부터 13살이란 나이에 만난 스트릭랜드는 내 인생을 표면적으로 지배하는 주인공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조용히, 조용히 살아가고 있자. 하지만, 곧 나도 나의 열정을 불태우고 살자. 열정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자. 그래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아직 마흔이 안됐으니까, 그때가 되기 전까진 육펜스를 움켜쥐고 있는 나를 합리화한다. 그래서인지 스트릭랜드처럼 그림을 그리는 시기를, 자연스레 마흔 살을 데드라인으로 삼고 있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안된다고, 늦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늘,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한다. 나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시체처럼 일을 하는 것이 오로지 안정적인 수입 때문이라는 자괴감과 함께 말이다. 그러면서도 선뜻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건, 그 일에서 안정된 생활을 얻을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직장인으로 살아가기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꿈만 꾸고 있다. 그것에 가는 것이 마냥 두렵기도 한 것 같다. 마치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또한 꿈꾸는 삶을 동경하며 그렇게 사는 것에 길들여진 것이 아닐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늘 재능이 있다고 믿어 왔는데 그 길을 걷다 보니 아무런 재능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꿈꾸는 삶에서 발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작가 서머셋 몸은 찰즈 스트릭랜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영혼 속에는 원래부터 어떤 창조적 본능이 뿌리 깊이 박혀 있었으나, 주위의 환경 때문에 그것이 오랫동안 가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 창조 본능은 마치 암세포가 살아 있는 조직 속에서 커 가듯이 맹렬하게 자라나다가, 끝내는 전신을 사로잡아 그로 하여금 꼼짝없이 어떤 행동을 일으키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내 속에도 시작하기도 전에 구겨 넣은 창조적 본능이 아직까지 살아 있기를 바란다. 조금 늦었더라도 그것을 건드리면 맹렬하게 타오르기를 바란다. 어쨌든 달과 육펜스는 끊임없이 나를 일깨우는 책이다. 찰즈 스트릭랜드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지금은 현실과 타협하고 있지만, 곧 달을 찾아 가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