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에 시비걸기 ■


1. 쏙쏙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


        요컨대 이 이야기를 읽으시는 분들은 나쁜 자극을 주는 것은 피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읽으면 됩니다. 그 때문에 읽는 사람을 그르치지 않도록 이야기 첫머리에 모두 그 내용 전체의 줄거리가 짧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p798


  그러니까 보카치오는 100가지 이야기를 다 읽을 필요 없고 골라 읽으라 한다. 그렇다

면? 했지만 이미 나는 착실히 처음부터 읽은지라 골라 읽지 못했다. 그것은 보카치오가 맨 마지막 장에서 저렇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서두에 저렇게 써 놓았다면 맘이 좀 달라져 골라 읽었을까? 아닐 것이다. 보카치오는 글을 다 쓰고 나서 어떤 심경인지 저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차례에서 이야기의 주제가 나오지 않은 이상,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역시 책을 들춰서 찾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아주 세세한 제목까지 목차에 달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첫째 날, 둘째 날 이런 형태로 차례가 기술되는 것이 아니라 각 날의 이야기의 ‘주제’를 목차로 내세웠으면 한다. 왜냐고? 저자의 의도대로 “골라 읽기 쉽게”


2. 성별 구분이 안 가는데?


  굳이 성별구분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야기 형태로 이루어진 소설들을 볼 때 켄터베리 이야기도 그렇고 변신이야기도 그러했지만 이야기하는 화자에 따라 방식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데카메론의 100가지 이야기는 남성과 여성이 이야기하고 있고 그들 각자는 나름 다른 성격들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이러한 구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열 명의 화자는 오로지 한 인물로 느껴졌다. 바로 보카치오 자신의 목소리다. 주제에 따른 이야기의 성격에 따라 이야기를 하는 방식, 문체, 톤 등을 좀 달리했으면 어땠을까. 좀 더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것이다. 열 명의 화자가 등장하지만 이들의 역할이 과연 있는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어느 순간 이야기의 내용에 따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재미없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서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이야기가 지루한 감도 없지 않다. 좀 더 생동감있는 이야기로 만들려면 열 명의 화자들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어떻게 만들어 낼까? 전체적으로 흔들리지 않으면서 각각의 특징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안을

  어쩌면, 이것은 번역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 그것을 알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특히 완역판이라 소개하는 최근 번역본인 민음사는 “『데카메론』은 분량이 방대하고 거침없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며 전반적인 시대 상황이나 영향을 준 작가들과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요구하는 까닭에”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내가 알지 못하는 이탈리아어로의 데카메론은 지금 내가 느끼는 것보다 조금 더 ‘야한?’ 느낌이었을까. 


3. 페스트는 왜 등장하는데?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페스트의 영향으로 씌어진 것이라 한다. 당시의 전 유럽을 휩쓴 페스트는 이탈리아에서도 절정이었고 그로 인한 참상을 직접 겪은 보카치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데카메론 이야기는 이러한 페스트가 창궐하던 도시, 보다 건강한 삶과 정신을 위하여 교외로 떠난 10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들이 페스트를 피해서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느냐가 아니라 페스트를 피한 상황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다. 마지막까지도 그래서 페스트는?이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들 열명이 나누게 된 이야기가 모두 페스트 때문이라 말하지만, 나는 좀더 페스트로 인한 참상이나 생각들이 더 필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페스트는 하나의 도구이긴 했지만, 그 역할이 나는 왜 미미하게 느껴졌을까.


4. 아리송해


  데카메론이 금서인 적도 있다고 하고 오늘날은 꼭 읽어야 하는 고전이라 하기도 한다. 둘 다에 약간의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보카치오는 이랬나보다, 저랬다보다 생각하다 보니 자꾸만 아리송해진다. 그는 중세시대의 가치와 신념이 무너지고 인간의 삶과 욕망을 직시하여 데카메론을 서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위선적인 종교인의 행태를 묘사하고 특히 여성의 욕망에 관대한 입장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보면 그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했다가 또 다른 이야기를 보다 보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언뜻 드는 생각은, 온전히 이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받을 비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느냐, 어느 정도는 생각하면서 글을 썼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카이오가 여성의 성적 욕망과 자유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듯이 얘기되는 평이 많은데 그에 대해 3초 동안 의문이 들었다. 진짜인가. 사실, 그 시대에 보다 여성이 주도적으로 성적 쾌락을 충족시키는 이야기는 없었던 듯하고, 그러나 이야기가 없다고 해서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니까 별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또한 어디서 이야기를 모았다고 했으니 이미 그런 이야기들은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 중간에 화자들이 논평하는 이야기 중 다소 여성의 욕구나 욕망, 여성 자체에 대해 낮게 평가하는 듯한 발언도 있다는 사실이다.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라고 하지만, 사실 신들의 세계에서 신들도 더하면 더했지 다르지 않았던 것을, 다시 신들의 세계로 돌아간 이야기 아닌가 얼핏 생각하기도 했다.

 다시 3초간 지나간 생각, 데카메론에 대해 성직자들에 대한 비판과 위선에 대한 고발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같은 맥락으로 여성에 대한 비판과 고발로도 읽을 수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다시 머리말을 읽어 보다 그는 이 책을 쓴 이유가 사랑에 대한 우울증을 위로하고자 썼다고 했다. 그가 사랑이 깨지고 나서 위로 받은 친구들에게 은혜받은 바를 돌려주고자 이 책을 썼다는 글을 보자, 나는 정말로 3초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를 위로한 친구들에게 나는 이제 괜찮다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쓴 것인가? 그래서 나는 여성에게 차였지만 이제 여성에 대한 감정을 다 정리했으니라며 담담하게 여성을 저렇듯 묘사한 것은 아닐까. 특히나 처음과 마지막 에피소드를 대비하여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원체 데카메론에 대한 다양한 평들이 많으니 그것을 곧이 곧대로 수용하며 재밌네, 대단하네라고 생각되기 보다는, 진짜 그런 거야?라며 생각하다 보니 평론가들이 얘기한 것들을 찾아보고자 한 문장 한 문장에 집착되었던 듯도 하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어쨌든 긴 책을 쉽게 읽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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