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헤라자드가 이 얘기를 했다면 살아날 수 있었을까
조반니 보카치오, 한형곤 옮김, 동서문화사
단테의 신곡과 견주어 인곡이라 칭할 정도로 데카메론은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것을 증명하듯 많은 작가들이 여러 작품에서 데카메론을 모방했고 그 모방작가 중에는 제프리 초서, 셰익스피어도 포함된다고 전한다. 또한 전 유럽에서 가장 먼저 산문으로 된 최고의 문체를 구사한 소설이라 한다.
데카메론은 Principe Galeotto이란 부제를 달고 있으며 데카메론은 열흘 동안의 이야기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나온 것이다. 제목처럼 이 작품은 열 명의 사람들이 열흘 동안 나눈 이야기들을 모은 소설이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눈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액자형태로 구성된 당시 떠돌던 많은 전설과 설화를 담고 보카치오 자신의 창작도 실려 있는 소설이다.
1348년 이탈리아 피렌체는 페스트가 성행하여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는데 보카치오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작품을 창작했다. 페스트를 피해 어느 시골로 피난을 가게 된 7명의 여자와 3명의 남성이 2주 동안 하루에 나눈 열 편의 이야기를가 실려 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일인 금요일, 토요일에는 휴식하기로 하고 열흘간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를 마친 밤이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다. 그리하여 총 100편의 이야기인 단편 소설과 10발라드인 10편의 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일 밤 나누는 이야기는 개인이 이야기하는 형태로 되어 있기에 이야기가 독립적이지만 실제로 매일 밤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가 정해져 있기에 하루마다 나열되는 열편씩의 이야기는 같은 주제를 담은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데카메론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의 이야기라 한다. 아마도 이 이야기의 주제가 어떤 상황에서 전략과 술수를 사용하고 있는 이야기이기에 다른 날들의 이야기에 비해 더욱 재미있게 여겨지지 않은가 싶다.
내게 있어 기억나는 부분은 책을 덮고 나의 화를 돋우는 이야기들이다. 가장 마지막에 있었기에 책을 덮을 때까지도 남아 있던 이야기는 열흘째 마지막 이야기이다. 자신의 아내의 덕을 시험하고자 자신의 아들까지 죽였다고 하여 이른바 아내를 길들이는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이 어이없는 인간 때문에 이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아주 지리지리하게 긴 내용이었던 학자의 복수이야기도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여덟째날 일곱 번째 이야기로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미망인에게 복수하는 학자의 모습이 정말, 학자스럽다는 느낌이 들며 학자가 하는 말은 옳은 면이 있는데도 통쾌하다는 느낌보다 참, 구질하다는 느낌이 오히려 들었다.
여섯째날 일곱째 이야기는 필리파 부인이 나온다. 나는 이 여자, 말 잘하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여성의 욕망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 이야기하는데 그렇지라는 추임새가 나왔다.
둘째 날 일곱 번째 이야기도 화가 나는 이야기다. 공주가 피치 못할 상황에 휘말려 4년 동안 여러 풍파를 거치고 여러 명의 남자들과 결혼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보카치오는 이 이야기를 여성이 자신이 가진 재주인 미모를 가지고 이렇게 만들고 있다는 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나는 피치못할 상황에 빠진 불운한 공주의 처지와 상황에 기가 막힌데 어찌 이것이 공주의 자의로 행하는 일이라 볼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이야기들 속에서 자발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욕망을 발산하고 쟁취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 이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첫째 날 첫 번째 이야기도 참 황당하고 우스운 이야기였다. 나는 이 이야기는 어떡하든 그것의 진실과 마음과는 상관없이 표면적인 신앙에 집착하는 모습들과 관련하여 생각되면서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다. 전반적으로 데카메론에선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수도사나 수녀, 수도하는 이들의 탐욕스러운 행동들 말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라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이야기들 말이다.
만약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드가 데카메론 속 이야기를 왕에게 들려주었다면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세헤라자드는 살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확답하진 못하겠다. 천일야화 속 이야기의 부분 부분도 데카메론 속 이야기의 몇몇이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으니까. 이 시대엔 정말로 이러한 식의 이야기들에 열광했던 걸까. 그래서 요즘의 시선으로 이 책을 보기에, 이 책이 뛰어나다는 이유를 찾지 못해 그 이전의 시선으로 보려 해도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는 데카메론의 매력에 빠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