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


 

자크 아탈리 지음, 이재룡 옮김, 사월의 책, 2010.


 

 “이 이야기는 역사상 딱 한 번 있었던 일로서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20년 동안의 시절에 관한 것이다. 때는 역사상 딱 한 번, 딱 한 곳에서 유일신을 믿는 세 개의 종교가 서로를 존중하고 찬양하며 서로에게서 자양분을 섭취하는 길을 택했다(p7.)”

 

 역사상 딱 한번, 딱 한곳 유일신을 믿는 세 개의 종교가 어우러졌던 곳은 12세기 스페인이다. 당시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코르도바는 이슬람교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공존하던 평화의 땅이었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북아프리카 알모아데족이 스페인으로 침입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개종이 요구되고 처형이 난무한 종교박해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황을 피해 이븐 루시드와 모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절대적 영원에 대한 논고』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이 책은 신이 우주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주는 이미 시간 전에 있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슬람교도인 이븐 루시드는 이슬람 제국의 왕의 의중에 따라 재상이 명령하는 대로 이 책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유대인 모세는 처형당한 외삼촌이 남긴 유언으로 이 책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종교와 이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이어지고 책을 찾는 여정 속에 목숨을 위협받기도 하고 살인 사건도 벌어진다. '깨어 있는 자들'이 등장하며 책을 찾지 말라는 위협과 찾는 일을 방해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책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왜 그들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고민하는 두 사람은 스페인의 현자로서 끊임없는 질문에 부딪치고 사상을 피력한다.

 

여기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방식은 이 시대의 이념에 충실하다. 파란만장한 삶도 전부 실화이며, 그들이 한 말들도 실제 대화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특히 오늘날 서구에서 아베로에스라고 불리는 아부 알 왈리드 무하마드 이븐 루시드는 정말로 위대한 이슬람 철학자이며, 마이모니데스라고 불리는 모세 벤 마이문 역시 위대한 유대교 사상가이다. 소설에서처럼 이 두 사람은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살다가 1149년 그곳을 떠나 모로코로 들어갔다가 1165년에 다른 곳으로 떠났다.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이 시기의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그렇듯이 이 위대한 이슬람 철학자와 유대교 사상가가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눴을 공산이 매우 크다. p8

  

  자크 아탈리는 역사적인 인물과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여 공통의 분모를 이끌어낸다. 여기에 허구적인 상상을 더해 이 글을 완성해냈다. 실존 인물들을 통해 재현해 낸 이 이야기는 소설적인 구성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철학서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자크 아탈리 자신이 ‘프랑스 최고의 석학’으로 불리며 정치, 경제, 인문, 예술 등에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 책은 단순한 삶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인문학적인 내용을 소설이란 형식으로 풀고 있을 뿐이다.

  소설은 미스테리적이며 여행기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형식으로 자크 아탈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종교와 이성의 조화이다. 이야기 속에는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많은 현자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종교와 이성에 대한 많은 대화, 담론들을 나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철학적인 논쟁이 가득하다. 이런 철학적인 담론을 이론적인 형태로 풀어냈다면 지루하거나 어렵거나 했을 터인데 미스테리 형식의 소설 속에서 강연으로, 대화로 풀어 가기에 조금 더 쉽게 느껴질 수 있는 듯하다. 또한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이므로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허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주인공의 삶에 대한 몰입을 더할 수 있다.

  매우 유명한 학자인 저자가 소설을 썼다기에 궁금했다. 어떤 내용인지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소설책이라는데 두께가 제법 된다. 정말 소설일까. 과연 학자라는 사람이 쓸 수 있을 만한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철학자에 관한 책을 쓴 저자가 철학적 주제와 내용을 전하는데 소설 형식을 택했고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한마디 한다. 


  "나쁜 소설만이 자전적이네. 좋은 소설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쓰이지. 그리고 그 본성이란 허구 속에서만 찾을 수 있고."


  자크 아탈리는 좋은 소설을 쓴 것일까.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좋은 소설이라 할 것이다. 지금도 끊이지 않는 종교전쟁, 종교가 매개가 된 전쟁을 보건대 ‘종교전쟁의 문제는 서로 싸운다는 것보다 힘의 과시’라는 말이 오늘날의 상황과도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책 속에서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을 계속 되묻게 된다.

  세 개의 유일신교를 대립시키는 게 무엇인가? 무엇이 우주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가? 진리는 예언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현시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진리의, 비밀의 책을 찾는 두 주인공이 각각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종교와 신, 종교와 이성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물음과 모순과 인간의 어리석음과 이기를 알 수 있는 물음이다. 종교가 인간의 삶을 영원케 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적으로 몰아갈 수 있음을, 종교적 갈등이 초래한 비극적인 역사의 한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논쟁들이 많이 제시되었다.

  마침 스페인 여행의 뒤라서 주인공들이 떠나는 순례의 여정을 온전히 상상이 아니라 직접 본 장소를 그리며 쫓아갈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스페인에 세 종교가 공존했던 그 시기처럼 반목하지 않은 종교에 대한 바램, 종교가 종교답기를, 종교인이 종교의 교리의 본질을 잘 실천하기를 실로 바라는 마음으로 책의 여정을 함께 했다.

 일단, 소설인데 미스테리한 구조와 여행기가 보태지면서 흥미를 높여 준다. 그런데 소설적 구성을 갖추고 있지만 지루한 감이 있다. 흥미있게 가독성있게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종교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나 종교와 이성에 대한 물음과 질문들을 대화나 강연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그 강연과 대답은 결국 같은 주제로 일관되어야 하기에 반복적인 패턴으로 나타난다. 철학적 개념과 사상을 대화식으로 풀어 좀더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측면은 있다.

  ‘실화소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등에 사람들의 관심을 쏟듯이 현존한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였기에 흥미를 배가시키는 부분이다. 다만 내가 그들을 잘 모를 뿐......그들의 인생을 재현하고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에 상상을 가미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부분도 흥미를 더할 수 있다. 단, 이러한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선택했지만, 양념이 첨가되지 않은 담백한 느낌이다. 이 담백이 나쁘지 않게 느껴지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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