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10년마다 자신의 삶을 결산하는 자아경영 프로젝트




구본형, 휴머니티스


   저자는 이 책은 자서전이라 말한다. 자서전은 저자의 삶의 현실적인 흔적이 기술되고 그 삶에서의 저자의 생각들이 나타난다. 저자는 자서전의 부제를 ‘10년마다 자신의 삶을 결산하는 자아경영 프로젝트라고’명명했다. 자신의 삶의 결산 방식을 저자의 삶을 구성하는 총 11개의 테마로 구성하여 기술하고 있다.

  먼저 1장에서는 자신의 지난 10년의 삶을 돌아보고 2장에서는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의 나이에 대한 단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3장에 이르러 직장생활을, 4장에서는 얼굴과 외모와 더불어 자신의 내면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5장에서는 가족, 6장에서는 자연, 7장에서는 건강, 8장에서는 길, 9장에서는 집과 공간 10장은 학습, 11장은 일이라 주제로 구성되고 있다. 이러한 주제 아래 자신의 삶에서 생각해오고 실천해 오던 것에 대해 저자가 가지는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각각의 주제 아래 소제목을 달아 짧은 이야기 형태로 구성하고 있다.

 흔히 자서전이라 하면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저자의 삶의 외관을 이야기하고 그에 따른 내면의 이야기가 흐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책은 서사적인 흐름을 따르는가 싶으면서도 삶에서의 사건이나 인생의 흐름보다는 살아온 과정 속에서의 사유를 풀어내는 것을 더 중시한 듯하다. 그래서 어찌 보면 주된 ‘이야기라인’이 없다. 어쩌면 특정한 인물의 인생이야기가 부각된 자서전적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볼 수 있는 인생의 ‘특별한 사건’이라 부를 수 있는 게 없다. 이렇게 얘기하기엔 그렇지만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막장’ , ‘어떻게 그런 일을 겪을 수가’라고 할 만한 이야기가 없기에 이러한 형태의 구성이 나오지 않은가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회고하고픈 이들에게, 그럼에도 이렇다 할 ‘사건’이 뚜렷하지 않았던 삶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구성과 내용으로 보인다.

   각 장마다 소제목을 달고 이야기하고 있어 소제목에서의 연결고리는 있지만 전체적인 구성에서 보면 큰 이야기의 흐름이라기보다는 사유의 흐름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사유에 맞게 힘있고 강건한 문체가 아니라 부드럽고 조곤조곤한 문제가 담백하게 이어진 에세이 형태다.

  저자는 구성상에 세 개의 에필로그와 평설을 두고 있다. 특히 평설이라는 것은 글에 대한 해석이자 논의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이러한 역할은 저자보다 연배가 높거나 네임 밸류를 가진 사람들이 한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제자의 평설을 싣고 있다. 어쩌면 저자는 단지 이름이 널리 알려진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글이 좋다, 나쁘다’의 평보다 자신에 대해 잘 알고 가까이 있는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리하여 그에 대한 평을 받는 것이 더욱 진정성있는 일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방법은 적중한 듯하다.

  자서전을 읽다 보면 우선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삶이다. 자서전을 쓰는 이들은 우선 많은 굴곡과 사건들을 겪은 삶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서 그 힘든 일들을 겪은 데 대한 ‘사건’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딱히 사건이라 부를 사건이 없기에 사물이나 일상에 대해 가지는 그의 차별적인 생각, 혹은 공감되는 생각, 아름답게 묘사하고 비유한 문장들에 눈이 간다.


불행한 사람들만이 변화에 관심이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지금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행복을 가장한 사람들 역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도 때때로 변화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뼛속 깊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이 지루하고 반복적이며 별 의미와 보람도 없는 불안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일상이라고 엄살을 떠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인생은 그런 것이려니 하는 사람들이다. 변화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과 당위성을 찾아냄으로써 그들은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변화를 꿈꾸지만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 나는 그들 속에서 불행을 감지한 치열한 사람들을 찾아내야 했다. p334


  아마도 이 책의 제목이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인 것처럼 ‘마흔’에 대해 표현한 구절들이 되씹어지는 구절이다. 마흔의 삶에 대한 저자의 단상들, 비유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마흔은 정말로 흔들리는 나이인 것인지, 이와 같이 마흔에 대한 좋은 글귀로 인해 사람들이 감성적이 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마흔의 삶에 대한 비유들이 이 책이 나올 수 있는 핵심적인 요인이 되는 듯해서 ‘마흔’에 대한 그의 여러 묘사와 비유를 가진 글귀들을 계속 곱씹어 볼 참이다. 근데, 또 딱히 생각하면 거기에 ‘마흔’ 이 아니라 ‘서른’도 대입해 보고 오십도 육십도 대입해 본다. 딱히 안 어울리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저자의 필력이 워낙 매끄러워 정말 ‘마흔’이 딱이구나 싶게 된다. 마흔은 당나귀의 삶이라는데 어쩌겠는가. 서른도, 오십도, 육십의 당나귀의 삶보다 마흔의 당나귀의 삶이 딱~이다.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그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상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산다. 그것이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나는 책을 쓴다. 말하자면 나의 이야기를 하며 산다. 글쓰기는 꿈을 현실로 데리고 오는 나의 방식이다. 나에게 책이란 꿈과 현실을 잇는 통로이다. 매일 조금씩 책을 쓰는 것은 나의 일상이며 현실이다. 책을 쓰며 상상하는 모든 것 역시 나의 일상이라는 점에서 구체적으로 남아 있든, 저술가에게 생각과 상상은 이미 현실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분명한 현실이다. p211~212


 나는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 분노는 억제된 불길이다. 나는 때때로 침울해 보이거나 무거워 보였다. 분노를 적의 없는 상태로 감출 수 있는 방식이 바로 스스로에게 물기를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제대로 타오를 수 없었다. 가득한 여기에 시달리다가 결국 불문을 열고 굴뚝을 달아 불길이 훨훨 타오르도록 했다. 이것이 나를 살려 주었다.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 나의 방식대로 살 수 있도록 분노를 자극했다. 나의 세계를 보호하기 위하여 분노를 키웠다. 이것이 내가 내 속의 분노를 길들이는 방식이었다. 내 속의 욕망이라는 불길이 잘 타오르는 동안 나는 마음의 평화를 즐길 수 있다. 그 불길의 주위에 자리를 펴고 누워 타오름을 즐기는 것은 벽난로의 아득함이었다. p314


  너무 자서전이라는 말에 얽매이지 않고 책의 흐름을 보려고 한다. 하지만, 자꾸 ‘자서전’이라고 보니 흔히 하는 자서전의 틀로 책을 보게 된다. 일단, 자서전의 느낌인데 자서전을 벗어난 형식이란 것이 신선하다. 하지만, 자서전을 내는 이들은 일단 여러 방면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다. 구본형도 마찬가지다. 이미 앞선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렇다는 것은 그의 저서를 통해 그의 기본적인 삶의 모습을 알고, 그의 생각들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사유들은 다른 책들에서의 사유와 어떤 차별이 있다고 봐야 할까?

  그의 삶에 대한 대강의 그림자라도 알고 싶어 하지 않을까. 보통의 자서전이 태어난 순간부터의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면‘구본형’의 자서전은 그의 지난 생애를 그저 ‘지난 10년’으로 묶어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감각적, 묘사적, 비유적인 글들로 그의 생을 정리하고 있다. 자서전이 과거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면 이 책은 미래의 이야기인지 ‘하고 싶다’와 ‘되고 싶다’라는 단어가 더욱 가득차 있는 것 같다.

  이야기의 구성 또한 종횡무진이다. 직장생활을 이야기하다 내 얼굴을 이야기하다가 자연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그 연결고리가 그렇게 어긋나다는 것을 느끼진 않았다. 그저 장마다 다르게 읽히는 이야기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차만 봤을 때는 이것이 자서전의 제목이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저자처럼 여러 책을 통해 반복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경우에만 가능한 목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상에 처음부터 자서전을 들이미는 사람은 없겠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메시지들을 다른 글들과 얽어 내어 또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탁월한 힘을 가진 저자임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야기의 핵심은 돌고 돌아 ‘직장생활’이 아닌 개인의 ‘일’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벗어나 나의 ‘일’을 찾는 과정에서 느끼는 인생의 사유를 개인의 내면과 외면을 넘나들며 한 편의 그림같이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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