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신이 각본을 쓴 코믹 대서사극이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정서웅 옮김, 민음사, 2003.


   파우스트는 크게 1권과 2권으로 나뉜다. 이 두 권의 나눔은 내용에서 차이가 있다. 1권은 젊은 시절의 괴테가 2권은 노년의 괴테가 완성한 작품으로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파우스트는 괴테의 창작 속의 인물이 아니라 전설 속의 인물이라 한다. 그러니까 16세기 살았다는 떠돌이 학자라 한다. 마술과 점성술을 가지고 신학과 의학에도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범상치 않은 행동이 그를 전설 속의 인물로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런 이유로 파우스트는 다양한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었고 여러 형태의 이야기로 전해졌다. 여기에 괴테도 동참한 것이다. 오래도록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듯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악마와 계약을 맺는 이야기다. 계약의 내용, 조건이 무엇이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괴테는 이 이야기를 1권은 헌사, 무대에서의 서연, 천상의 서곡, 비극의 1부로 구성하고 2부는 비극의 제2부로서 5막으로 구성하여 전개시키고 있다. 괴테식 파우스트를 이해하기 위한 이 버거움을 어떻게 할까.


이 희곡의 중요한 의도는 강렬한 인식에의 욕구를 지나고

용기 있게 자아를 성취해 나가는 르네상스식 인간상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이 책은 상당한 분량의 작품해설을 삽입하고 있는데 주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 그렇군이라고 이해하면서도 처음에는 운문을 까닭없이 속독으로 읽었던 탓에 내용을 유리시켜버림으로 다시 정독하기를 반복했다. 상당히 사변적으로 느꼈다. 재미와 감탄도 아주 조금 했다. 아마도 지식이 풍부한 괴테였기에 수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집합되어 그들의 특징을 잘 살린 한편의 파노라마를 풀어냈겠지. 그저, 괴테가 만든 향연 속에 아는 학자 이름이 나오면 반갑네 할 여력밖에 없었다. 어쨌든 충분히 내게 놀라움을 주었다. 그러다가, 아주 우습게도 요런 형태의 복잡하고 많은 이들이 떠들어대는 희곡은 중학교 시절 학예회 시간에 아주 우습거나 재밌는 연극을 만들 때 썼던 컨셉인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주 희화화하기 위해 그때 내가 아는 인물들을 총동원하여 그들의 특징을 살려내어 극 속으로 끌어 들였다. 나는, 단순 재미였지만, 괴테는 그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고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작품이니 진중하겠지. 그래서 그 진중이 무엇인지를 집중하고픈데, 잘못된 선입견이 코믹으로 읽으려한다.

  하지만 어떤 순간 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적절하고 놀라운 대사들이 끊임없이 흥미롭게 하기도 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비트는 대사, 또한 그러면서도 영적으로 울리는 대사들. 여러 가지 다양한 면을 즐길 수 있었다. 

  파우스트는 한 사람이 쓴 것이 맞는지, 같은 내용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1부와 2부의 내용과 분위기가 달랐다. 거기에는 오랜 시간차가 있었다는 것을 알자 이해를 하면서도 오랜 시간 동안, 60년이라고 하던가. 같은 책을 붙들고 있었을 괴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니, 그가 죽기 전까지 꼭 붙들고 완성하고픈 책이었다고 하니.

 희곡이기에 장면과 막이 등장한다. 지문도 등장한다. 그러나 대사는 운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정확한 움직임을 그려내기엔 조금 어려운 끊임없는 운문의 향연. 그 비유와 은유를 보다 보면 놀라운 문장들에 빠져 내용의 줄거리를 가끔 놓친다. 어라, 그 문장 속에 담긴 의미가 그것이었나. 운문이라고 빠르게 읽었던 탓에. 처음부터 줄거리와 의미를 파악하고 문장을 곱씹었다면 괜찮았으려나 싶다. 아무튼 나같은 독자를 제대로 낚으셨다.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거래, 자신의 영혼을 팔고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이야기로 줄거리가 요약된다. 그 과정 속에 사랑, 욕망, 속죄, 구원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데 처음과 끝을 보고 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저 가련한 인간이었다. 신의 손에 놀아날 수밖에 없는.....파우스트가 백세에 자신의 청춘을 돌아보았을 때엔 화려한 젊은 시절의 환락보다 인생무상을 느끼고 도덕적 가치를 더 우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많은 이들이 나이들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면 인생의 그늘에 대해서는 후회를 하고 좀더 가치있는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가. 신화속 등장인물과도 섞이고 과학자며 연금술 이야기들도 등장해 여하튼 재밌는 요소들이 많다. 그러나 종교적인 색채도 강하다. 영혼의 구원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끔 만든다.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시각은 얼마나 또 다르게 느껴질까.

  괴테의 시각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시작하자면 정리되지 않은 채 많은 말들이 막 나올 듯하다. 그래도 그냥,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의 차이를 비교해보고 싶기는 하다. 파우스트의 이해를 좀더 하기 위해 러시아 영화 파우스트를 봤지만, 잤다. 영화를 본 시간이 11시가 넘어서라는 오로지 시간 설정을 잘못하고 영화를 봤다는 한탄을 해보지만 역시 이유는 한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괴테의 파우스트 내용이 그대로이기를 빌었지만, 역시 감독이 재해석한 파우스트였다. 그래도 뼈대는 같으니, 다시 도전해 보겠다. 아침 11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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