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다시 보는 방식.....일기를 읽으며

 

   어릴 적부터 이순신은 위인이었다. 어린 내 기억 속에 너무나 당연했던 영웅 이순신. 우리나라의 위인전은 늘 그랬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명확히 이 사람은 ‘위인’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어렸을 때부터 ‘남과 다른, 뛰어난’ 특성을 갖추고 있어서 ‘아, 그래서 위인이구나’ 하게 만들었다. 한국 위인전은 늘 특별했던 이들이 결국 특별한 결과를 만들어가는 식이었다. 그래서 늘 사람냄새 가득한 이들을 만나기보다는 경직된 듯 보이고 위엄에 가득찬 포장지 속에 들어 있는 이들을 만나야 했다. 특히나 한국화폐공사의 모델이신 이순신인데, 아무리 지폐 아닌 동전모델이라도 그 위엄을 잊을리 있을소냐.

   강제적으로 이순신은 자동 위인이 된 사람이다. 내 스스로 그에 대한 경외심을 찾아가기 보다, 내가 생각하는 위인과 영웅에 대한 정의를 정리하기 전에 이미 위대한 영웅이며 위인이라는 도식으로 자리잡은 사람...그리고..또 어렸던 어느 날, 선생님은 이순신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원균의 모함으로 죄를 추궁받던 중 전쟁으로 다시 그의 자리에 복귀되었을 뿐이라 전쟁이 끝나면 다시 감옥으로 가게 될 것이었기에 죽은 것으로 위장하였다는, 그래서 그의 무덤에는 이순신이 아닌 다른 이가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

   그래서 그에 관한 무수한 이야기들이 나왔음에도 딱히 재밌지 않은 이야기, 더 들어볼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던 이순신이었다. 그리고 경남에서의 이순신 사랑은 더욱 각별하여 곳곳에 이순신 동상과 이순신 관련 문화유적지 조성이 이어지고 있었고, 연구원에서는 남해안 특별법과 더불어 이순신 프로젝트가 중대한 과업이었다. 이순신이 먹었던 이순신 반상이 만들어져 있고, 이순신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조금만 이순신과 걸쳐져 있으면 이순신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다. 이순신 프로젝트는 거대했고 ‘거북선을 찾기’, 해저유물탐사도 있었다. 판옥선과 거북선의 차이, 이순신이 전쟁에 사용했던 총통들이 기억나는 것도 대대적인 프로젝트라 본 기억이 있다.  선거철이면 이순신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야기도 부지기수다. 어느 때인가는 이순신의 리더십에 관한 주제로 김훈의 초청강연까지 있었다. 그렇게 이순신 관련 보고서가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보고서들이 넘쳐나고 이순신 강연이 이뤄지던 그 때에도 이순신은 ‘일’로 만나고 스치는 사람이었을 뿐, 강연의 내용보다 강연자에 더 관심을 기울였을 뿐, ‘아, 이순신!’이라는 공명을 느끼지 못했다. 딱히 느낄 여유도 없었거니와 이미 알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부분적으로 봤던 난중일기를 읽으며 타인들 때문에도 너무나 기대를 했던 탓일까. 몇 장 넘기고서 ‘이게 뭐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게 다 인가? 계속 이런 형태인 건가? 반복되는 ‘공무를 보았다’를 보면서 선생님들이 절대로 일기를 쓸 때 쓰지 말아야 할 구절로 강조했던 ‘나는 오늘 ~했다’라는 문장이 생각났다. 도대체 이순신은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공무를 보았다’는 한 줄을 일기라고 적고 있는 건가. 이것은 일기가 아니라 그의 업무일지였던 것인가. 몇 번 본 난중일기의 내용이 이렇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라는 생각과 더불어 기대의 강도를 0을 놓고 난중일기를 읽었다. 정지된 바늘이 점점 올라갈 때까지.

   남의 일기를 읽는데 감동이고 뭐고를 따지는가. 그저 소소한 일상의 날들이 아니, 격랑의 날들의 소소한 기록들이 애처롭고 애처롭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는데, 공무를 보았다는 그 한줄마저도 마냥 가슴이 아린다. 전장에서 기록한 그의 글 하나하나가 어찌 울림이 없을까. 갈수록 길어지는 그의 문장도 짧은 단문들도 그저 이순신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람의 삶과 죽음에 관한 글들은 항상 애처롭다. 그리고 그의 기록들은 대체로 같은 패턴이다. 그의 일기 전반에 흐르는 이순신의 마음이, 알리도 없음에도 나 혼자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이 여겨진다.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의 일기를 모은 책이다. 일본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되어 그가 전사할 때까지 씌어진 일기이며 기록의 해는 임진년(1592), 계사년(1593), 갑오년(1594), 을미년(1595), 병신년(1596), 정유년(1597), 무술년(1598)이다.

이순신은 한글이 만들어지고 태어났지만 한글은 여전히 벼슬아치들에게서부터 널리 활용되지 못한 탓에 이순신은 전쟁 중에 초서로 몹시 흘려 쓴 일기를 남겼다. 특히 치열하게 전투가 일어난 해일수록 흘림의 정도가 심하였고 부분 부분 누락된 날들이 있다. 그만큼 치열하고 긴박한 날들을 이 일기가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이순신의 일기는 많은 부분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없었기에 후대에 이르러 그의 일기가 오독되어 전해진 글자가 많다고도 한다.

이 글은 그날 그날의 일들-그날의 날씨, 일어난 일들, 자신의 느낌과 감상 등-을 기록하고 있다. 년원일의 순으로 일기를 기록하며 하루에 한줄 기록을 남긴 날도 있으나 대체로 매일 매일을 충실히 기록하고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통해 영웅 이순신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누차 들어왔다. 그렇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다. 그의 일기 속에 늘 반복되는 것은 날씨. 어머니. 아이들. 그리고 임금과 나라와 부하 장수들에 대한 걱정들. 그리고 홀로이 외로움에 가득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글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므로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개인적인 심정을 토로한 것이니, 그런 그의 글을 나중에 묶어 엮어 책으로 만든 것이니, 여기에 목차이며 내용의 면면이 이렇다 저렇다 말해 무엇하랴. 그가 작정하고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기록하겠다는 목적적인 글쓰기가 아니었을 터이므로 더더욱.

   장수의 병무일지라고 하기엔 너무나 개인적인 토로인 것 같고, 개인적인인 토로라 생각하면 업무와 관련한 일들이 나열되어 있다. 전쟁에서 어떻게 적은 무찌를 지에 대한 구체적인 병술일지도 아니거니와 기록된 글들을 읽다 보면 너무나 자질구레한 일들같이 느껴지는 기록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전쟁의 상황, 늘 긴장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그의 일상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개인적인 자신의 심정을 기술하면서 달이 밝은 밤에도 비가 오는 밤에도 흐린 날에도 맑은 날에도 그는 근심걱정이 마를 날이 없는 사람이었다. 전쟁이라는 상황, 어지러운 나라에 중책을 맡은 책임감, 그리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그의 일기는 자신의 마음을 가누기 위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다시, 타인의 일기를 읽는 이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그의 일기를 읽다 보면 답답한 면이 적지 않다. 그래서, 원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알고 싶다. 그저 원균이란 자의 행태가 말이 간계하다라는 글만 적고 있으므로 구체적으로 어떠한 원균의 행동과 처사가 그토록 다른 이들에게 애정을 가지는 그를 날이면 날마다 욕하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은데 그런 글이 없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감정으로 적는 일기에 객관적인 사건의 개요를 요구하는 나는 참....

   날들마다 날씨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 더욱 애잔한 마음이 가득한 느낌이다. 전쟁과 날씨, 그리고 병영의 소소한 모든 것을 기록하려는 그의 마음과 의지가 되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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