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범일지는 백범 김구가 쓴 자서전이다. 상, 하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상권은 아들 인과 신에게 아비의 일생 경력을 알 곳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온 개인적인 행로를 들려주기 위해 쓴 글이다. 백범의 나이 53세에 임시정부 청사에서 쓰여진 글이다.
이 글은 백범의 일생의 기록이다. 일제시기와 독립 후의 격랑의 세월 속에서 살았던 백범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으므로 사회적 상황 속에 놓인 한 개인이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는 고대로 감동의 기록이다.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그 모든 과정의 담담한 서술들은 그의 행동에 대한 감동이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행동을 하게끔 이끄는 그의 내면 속에 자리한 생각들도 역시 감동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그의 소원에 관한 글이 아닐까. 하나하나 두루두루 곱씹는 맛이 좋다. 백범의 나의 소원! 또한 그것이 그의 일생과 더불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상권은 그의 일생의 기록이므로 그가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중년의 삶들을 회고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상권은 그의 행적의 기록이지만 그가 행한 구체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그러한 과정에서 느낀 그의 생각과 감정들을 함께 기술하고 있어서 백점의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함께 파악할 수 있다. 상권이 보다 개인적인 생애에 관한 기록이라면 하권은 백범의 활동을 보다 조직적인 관점, 임시정부 활동과 그 당시 활약하던 다은 인물들과의 관계를 중점으로 기술하고 있다. 한편으로 보면 개인이 속한 조직의 활동 내역이라 불릴 만하다. 백점은 하권의 집필에 관하여 자신이 활동한 50여 년의 기록을 보며 숱한 과오를 거울삼아 다시는 이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고 하고 있다.
개인의 생애에 대한 자서전에 관한 한, 이렇게 저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시간적인 순서대로 쓰여진 백범의 자서전 상권은 마치 한편의 소설을 보는 것처럼, 현실에서 일어난 것인가 하듯이 드라마틱하다. 그의 글은 특별한 수사나 기교없이 쓰여진 것 같은데도 글들이 휘날리는 듯하다.
사실적인 내용을 서술하면서 그러한 행동 이면에 있던 백범의 생각을 함께 말하고 있어 그의 행동의 동기, 생각들을 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시간적인 흐름으로 정리한 것이 일제시기와 임시정부수립 이후의 활동들에 관한 역사를 함께 파악할 수 있게 되어 개인의 성장의 기록이자, 독립운동의 역사를 파악하게 되어 미흡한 공부를 더하는 느낌이었다. 개인의 기록이라 정확한 인명이나 시간이 헷갈릴 수 있음을 주해자의 설명에서 정정하며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기에 더욱 그렇다.
본관 안동. 호 백범(白凡). 아명 창암(昌岩). 본명 창수(昌洙). 개명하여 구(龜,九). 법명 원종(圓宗). 초호 연하(蓮下).
어떻게 불리든, 그는 그. 본질이 달라질까. 아니 어쩌면 그를 어떻게 불러주느냐에 의해 그의 정체성이 그의 행동력이 달라질지 모른다. 스스로 개명하며 그의 신념과 의지를 붇돋우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리고 우리의 어린 왕자 속에서도, 김춘수의 꽃에서도 누누이 강조되듯이. 우리가 누군가를 부를 때, 그는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 간다. 그렇게 창수는 안동 김씨 김자점의 방계 후손으로, 황해도 해주 백운동 텃골에서 아버지 김순영과 어머니 곽낙원의 외아들로 태어나지만 김구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고 살아 있다.
백범의 일생을 보다 보면 입을 다물 수가 없다. 그의 생을 뜨악하며 바라보면 그가 일제시기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를 생각하게 되고, 그가 나의 아버지라면 나의 생활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의 아이들은, 모두 5명. 세상에 태어난 김구의 아이들 2남 3녀 중 딸들은 모두 어릴 때 사망하고 아들 또한 독립 전에 사망한다.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해준 것이 없는 아비의 마음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을 것이다. 살아 있는 아들들에게 띄우는 그의 생애의 기록이 그리하여 더욱 애잔하다. 그가 이러한 기록을 남기고자 한 것이, 아들들에게 띄우는 편지로 시작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일생을 통하여 가족을 모아서 가정생활을 한 적은 시간으로도 짧다. 18세에 붓을 던진 이후 시종 유랑생활이었으니, 장련읍 사직동 생활에서 모친을 모시고 종형 남매 일가와 거주하며 2~3년 머무르고, 그 후 문화, 안악 등지에서 몇 개월 몇 년간 거주하였으나 역시 유랑생활이었다. 가장 오랫동안 머문 곳은 상해 불란서 조계에서 4년간 가족과 같이 생활한 것이다. 아내를 잃은 이후 10여 년 동안 어머님은 인과 신을 데리고 본국에서 지내시고, 나만 혈혈단신으로 동포들의 집에 의탁하거나 새우잠을 자는 옹색한 집단생활을 계속했었다. 어머님이 9년 만에 다시 중국으로 오셨으나, 어머님은 어머님대로 인과 신을 데리고 따로 생활을 하시고, 나는 나대로 동포들의 집과 혹은 중국 친우들의 집에서 더부살이 생활을 계속하였다. 중경 생활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범의 입을 통해서도 가족과의 삶이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입장이, 신의 마음이 궁금해지는 것은 안중근 의사의 아들 안준생 때문일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아들 안준생은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일본에 사죄했다. 힘들고 힘들던 그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무릎 꿇어버린 안준생에 통탄하다가도 그저 모두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리라 생각하며, 몇 번을 개명하며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던 김구와 그의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시대가 낳은 개인의 불행에 울분만이 솟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나오려다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뭘, 어쩌란 말이냐.
김구의 생애를 살펴보면 한 개인의 생애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다. 그의 생애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다. 그의 연보를 보다 보면 그것이 고대로 그 시기 우리나라의 모습이었음을 알게 된다. 개인과 나라의 일체화가 그의 생애를 통해 대변된다. 그들에게 오늘의 삶을 빚지고 있다는 상투적인 말이 고스란히 내뱉어진다.
백범일지에서 그는 줄곧 자신이 못생겼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의 노년의 모습을 기억하는 나는 그 온화하게 보이는 얼굴이 꽤나 잘 생겼다고 생각하던 터라 그의 이 외모에 대한 자격지심을 어떻게 하나 생각했는데 책 속에 나타나는 흑백사진 속의 아주 작은 그의 얼굴은 또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더불어 숟가락을 부수며 엿을 바꿔 먹던 어린날의 개구쟁이가. 그런 어린 아이가 굳은 신념을 가지고 굳건한 활동을 이루어가는 변화를 보며 파동도 없이 흘러가는 내 삶과 신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