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입니다
당신의 파라슈트는 어떤 색깔입니까,
리처드 N. 볼스, 조병주 옮김, 동도원, 2005.
이 작가는 수식어가 너무 많다. 불행히도 내가 관심없어 하는 분야에서 많은 타이틀을 수여했다. 끊임없는 베스트셀러 작가라기에 관련 책들을 찾아보니, 제목이 늘 같다. 이건 뭐지?
우리는 일해야 하고 취업해야 하고 그렇기에 취업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에 천착한다. 이전엔 취업에 관한 노하우를 알려 준 이들이 없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열광했단다. 그 덕분에 이 사람은 경력개발과 직업탐색 분야에 관한 엄청난 권위자로 등극했다. 사진의 활짝 웃는 노년의 모습은, 나 성공했소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력개발 컨설턴트들은 왜 이렇게 많고 이들의 책들은 어쩜 그렇게 잘 팔리는지. 이 세상에서 취업해야 하는 모든 구직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늘 이런 책들은 비슷비슷하게 여겨지는데, 그럼에도 왜 잘 팔리는지 의아함을 가진다. 이 작가는 같은 책을 제목만 조금씩 수정하여 계속 우려먹고 있다. 변화하는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는 것,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고 대단한 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정말 대단해라고 말해 지지 않는 것은...
그런데, 이 작가 배움이 강하신 분인 모양이다. 거듭 다양한 학문을 공부했다. 화공학과 물리학은 그나마 유사 분야라 하더라고 신학을 다시 공부했다. 신학이니까 이해가 간다. 종교는 가끔 학문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가처럼 다른 전공을 가지고도 신학을 공부하거나 신학을 공부하고도 다른 전공을 가진 저자들을 북리뷰하면서 너무 많이 봐서 또 딱히 ‘놀라운 걸, 대단한 걸’이라기보다는 그렇구나, 하게 된다. 이쯤되면 큰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인데 나는 이 작가를 너무 밍숭맹숭 바라보고 있다. 물론, 그의 생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쪽 분야의 책들을 몇 권 보고 나니 작가들의 이미지가 겹친다. 윌리엄 브리지스도 리처드 불스도 결국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고 강연에 나가고 강연활동과 컨설턴트 활동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년의 나이에 재혼을 했다. 77세. 그의 정확한 결혼 과정은 모르지만 이 부분에서는 놀랍다. 우와, 대단한 걸.
이 책은 구직자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방법들을 알려준다. 직업 선택의 요령은 자신의 소질에 대한 이해와 개발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러한 소질을 발견하고 개발하여 이것이 필요한 최적의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다. 자신의 소질인 능력을what 어디에where 어떻게how 발휘할 수 있는가의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구직자들을 위한 자기계발서이자 취업을 위한 실용매뉴얼로서 이 책은 무엇보다 개인의 ‘소질’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데 힘을 쏟고 있는데 그것이 직업을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알기 위한 방법으로 ‘전용성 스킬’ 개념을 제시하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잘하는지, 어떤 스킬을 자주 사용하고 성취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소질을 파악하기 위한 도구로 ‘꽃송이 연습’을 설명하고 있다.
책의 제목으로 “파라슈트”를 선택했는데 파라슈트는 ‘생존의 위기에서 행복하고 안전한 직업으로서 당신을 구해주는 구조장비(시스템)’으로 저자는 정의하고 있다. ‘What Color is your Parachute?’, 이 제목을 사용하게 된 계기가 1968년도의 모임에서의 한 일화 덕분이다. 이 모임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조직에서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 용어로 bailing out은 파산하기 직전의 회사에서 사람들이 탈출하는 것, 낙하산으로 비행기를 탈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에 저자는 농담으로 ‘그렇다면 당신의 낙하산은 무슨 색깔이요?’라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실직을 겪으며 이러한 글을 쓰면서 이 제목을 붙인 것이다. 제목에 대한 일화가 이 책의 제목이 왜 이 제목인지를 확실히 느끼게 한다.
어쩌면 구직이 필요하고 절절하게 일을 찾고 있는 상황이라면 구절 하나하나가 와 닿았을지 모른다. 저자가 알려주는 매뉴얼을 하나하나 보면서 구직과정에서의 잘못된 점을 반성하고 새롭게 의지를 불태웠을지 모른다만....나의 절절함이 덜한 탓인지 그렇게 놀라울 정도의 강렬한 인상을 받진 못했다. 아, 43년 동안이나 세계적으로 취업자에게 바이블이 되었다는 이 책은 내게 그저 그런 또 하나의 구직자를 위한 매뉴얼 정도로만 기억되게 되었다.
취업 매뉴얼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로 많은 이들에게 고전이 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책은 결국 어떤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보다는 결국 방법에서의 실행이 관건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이 어떤 도움을 줄까를 생각해 봤다. 적극적인 구직활동에 있지 않은 내게는 이 책 역시 관련된 분야의 수많은 책 중의 하나일 뿐이니까. 그러면서 그 수많은 책들 중 왜 하필, 이 책이 더 유명한가라는 관점에서 봐야 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미국이니까로 시작한다는 점, 그리고 저자가 목회자 신분이었다는 점이 크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책의 내용과는 무관한 외적인 부분이다.
내적인 부분에서는, 잘 모르겠다. 이미 나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핵심적인 내용들을 다른 책을 통해 봤기에 신선하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다. 아마도 그렇기에 저자는 매번 개정판을 내고 책을 보완하고 있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을 바꿔서, 내용을 조금 달리하여....우려먹기 식이라도 해도 변해가는 구직세계의 흐름에서 나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있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보완이 아니라 그냥 아예 처음부터 독립된 책을 쓰라고. 문장 몇 개, 방법 몇 개 달리한 것이 새 책인가, 보완인가하는 물음을 가지게 한다. 이런 종류의 업데이트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하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미국의 카운슬러의 대가라고, 취업커리어 컨설턴트로 매우 위대한 자라 칭송받는데 받는 이의 태도가 열려 있지 않으면, 결국 와 닿지 않는 방법들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열려 있지 않은 자도 설득할 수 있는 책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가지로 곰국을 끓여내고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