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유원언 하옥사有怨言 下獄死
■ 가업을 이은 아들의 사부곡......아, 아버지! ■
저를 구차하다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목숨 부지하는 사내는 없다 하시겠습니까.
제게 이 기록은 당신께 바치는 것이자 저의 울분입니다. 당신에 대한그리움이자 당신에 대한 원망입니다.
제게 당신이 아버지였지만 세계 또한 아버지였습니다. 당신을 통해 천문과 역법을 배우고 고스란히 태사령을 이어받아야 할 운명, 그것이 관습이었고 또한 그렇게 길들여졌기에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연 태사령이 되어 이 기록들을 이어가야지요.
당신의 사명을 알고 당신의 책임을 알고 당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당신이 국가의 주요 의식을 담당했으니 봉선대전(封禪大典)에는 참여치 못한 것이 분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단지 주남(낙양)에 거주하였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었음이기에 그렇게 화를 이기지 못해 돌아가심은 제겐 모지게 사무쳤습니다. 당신을 걱정하며 부랴 부랴 달려간 제게 또 당신은 마지막까지 사적을 걱정하며 그것을 제게 이루어달라 하셨지요.
그러니 자, 보십시오. 제 것이기도 하나 당신의 것이기도 한 이 기록을 보십시오. 이것은 저 혼자의 기록이 아니니 다시 한번 보십시오. 당신이 태사로 있으면서 현명한 군주와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들의 행적을 기록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였듯이 저 또한 그러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당신이 시도하셨고 체제만이 아니라 내용도 집필하신 것이 적지 않고 자료도 모으셨으니, 당신의 책이지 않습니까.
당신이 돌아가시고 태사령이 된 그때부터 시작하여 실로 15년이 넘는 세월이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당신에게 보내는 마음 후련함과 회한이 밀려옵니다. 죽음으로 싸우지 못하고 적군에게 항복한 이릉을 비호한 것은 이릉이 패한 소식에 침울해하고 있는 황제의 뜻을 넓혀주고 이릉을 노리는 참언들을 막아보고자 하는 충성스러운 마음이었소이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할까요.
그때 격노한 한무제로부터 받았던 죽음이라는 형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죽음에 이르러 애타게 당부하시던 아버지의 뜻을 잇지 못하겠구나, 당신과 나의 세계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사그러드는구나. 좀더 소신있게 죽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나서 이은 가업이라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당연 제게 은전 50만전이 있었다면야 벌금을 내고 풀려났겠지요. 기껏해야 관리인 제게 그만한 돈이 없었으니 제 선택을 치욕스럽다 하지 않으시겠지요. 제가 선택한 궁형이란 벌이 얼마나 치욕적이며 천시를 받았는가를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렇게 천시받은 자가, 벌 받은 자가 쓴 글이라 이 기록도 천시하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궁형에 처한 채 감옥에 갇혀 서럽지 않았다 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못하는 것에 어찌 두렵다 하지 않을 수 있었겠소이까. 감옥을 나오면서 제가 더 이상 제가 아니게 되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겐 울분으로 세상을 보낼 수만은 없었지요. 세상이 다르게 보였음을 세상의 인물이 다르게 보였음을 당신은 아시겠지요. 무제는 당신만큼이나 욱합니다. 제가 다시 환관 최고의 직위인 중서령까지 오른 것을 보십시오. 이 몸으로 이만한 위치에 올랐으니 한편으로는 이룬 것이 없다고는 못하겠지요. 그렇게 오래 써간 기록입니다. 문득 문득 제 속에 들어 있는 울분들을 이 역사서에 쏟아 붓습니다. 나는 그렇게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그 비참하고 처절한 심정이 보이시는지요. 이 심정들을 임안에게 편지로 보낸 적이 있지요. 그도 나처럼 옥에 갇혔으니 동류의식이었겠지요.
유원언 하옥사(有怨言 下獄死:원한을 말하고 옥에 갇혀 죽는다)라 했습니다. 이것을 빌미로 저는 다시 옥에 갇힙니다만, 이제 더 이상 삶을 이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구차한 목숨 부지한 이유, 이제 다 끝맺었으니 당신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세상에 다 내놓았으니 이제 이 한 세상 편히 뜨려 하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