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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조각 시간 - 제2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성수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5월
평점 :
10분만 더 숨쉬다가
유리 조각 시간 - 제2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성수진, 나무옆의자, 2026-05-20.
도망치는 일도, 힘을 쏟아야 한다. 책을 덮고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유리 조각 시간’이란 게 가늠되지 않아서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궁금했다. 시간이 유리 조각처럼 파편화되는 것을 말하는가.
책을 읽는 동안엔 오래 전 스쳐 본 유튜브 영상이 떠올랐다. 단편적인 기억에 의존하여 몇 날 며칠 유튜브를 헤맸다. 실로 일주일 넘게 미친듯한 집착이었다. 마침내 찾았을 때 감정을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몇 단어에서 기억과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왜 그토록 이 기억을 완전하게 할 원본을 찾고 싶었을까. 대략 6분 정도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열아홉 살에 엄마, 아빠, 오빠를 교통사고로 한번에 잃었다. 장례식 후 가족 따라 가려고 양화대교에 섰다. 10분만 더 숨 쉬다가 뛰어야지, 가야지 하다가 해가 뜨고 지나가는 차들이 많아져서 조금 기다리는데 조금씩 밝아지면서 보이는 강물이 너무 예뻐서 잠깐 보고 있다가 잠시 지난 시간을 생각하며 서 있었는데 자전거가 지나가다 멈췄다. 자전거에서 누가 손을 잡았는데도 세상에 감흥이 없어 놀라지도 않고 그 사람을 쳐다보는데, “새벽공기 좋지?”하는데 눈물이 났다. 따스한 말에 주저앉아 마구 울었고 또래였던 그 친구가 자기 얘기를 오래도록 들어주었다. 그 친구가 ‘나’를 너무 챙겨줘서 살고 싶어졌다고. 그 친구가 말하길 경찰에 신고하려다가 너무 슬퍼보여서 자기도 모르게 옆에 갔서 말 건 거라고. 스무살 둘이 원룸을 구해서 같이 의지하며 잘 생활하며 행복하게 지냈는데 5년 지나 그 친구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에 울기만 하고 쓰러지기도 했는데 열아홉 살 때처럼 극단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친구가 알려준 것이 너무 많아서, 그 친구가 준 사랑에 힘입어, 삶으로 이끌어준 그 친구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있다는.
소설 속 유영은 하루하루 ‘10분만 더 숨 쉬다가’를 읊조리는 ‘나’ 같다. 그러면 ‘경진’은 그 친구일 수밖에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실체를 알 수 없는, 무겁고 가라앉은 분위기에 놓여본” 유영은 아홉 살에 감각적으로 그 실체를 파악한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건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 사고로 사망한 언니 유경의 존재였다. “곁에 있는 나를, 내게 드리운 그림자를 보듬어줄 것”을 바라지만 영원한 아픈 손가락 유경이 엄마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하여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 유영은 엄마가 “내가 죽어야 나를 이해해줄 것 같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영은 제 존재에 대한 의심과 외롭고 쓸쓸함을 가득 안고서 성장하게 된다.
가족 속 결핍을 외부에서 찾게 된 유영은 중학생 시절 채팅 사이트에서 ‘경진’을 만나 우정을 나눈다. 채팅 속 문장으로 만난 ‘경진’, 채팅명 ‘델’은 유영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였다. 유영은 “찬란한 아픔. 아름다운 구역감.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 말로 하면 빛바래고 어딘지 유치해지는 그 느낌”을 델하고만 공유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메일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던 ‘경진’에게서 소식이 끊어진 지 오래, 간호사가 된 유영은 업무 문제와 가족 안에서 여전히 편치 않은 상황에서 낯선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자 병원을 그만두고 출국을 준비한다. 그러던 중 5년 만에 경진에게서 메일이 도착한다. ‘경진’이 보내온 ‘유영’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돌이키면 상처 가득한 과거를 회상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채팅으로만 만나던 둘이 처음으로 만나던 날, 유영은 다리 난간에 섰었다. 그날 델은 필사적으로 유영을 끌어안았다. 이제야 생각하면 그때 유영이 다리 난간에 선 것은 ‘치기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는지 그때 델은 “자신의 마음을 돌릴 수만 있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듯한 태도”로 유영을 붙들었다. 그날 델의 품 안에서 한참을 울던 유영은 델의 왼쪽팔에서 ‘부풀어 오른 흉터’를 보았다. ‘하나의 긴 선과 그것을 가르는 짧은 선들을’. 델은 주머니에 유리 조각을 넣고 다니며 제 몸에 상처가 나길 기다리는 아이였다. 그런 델, 아니 경진은 “자신이 어떤 세계의 일원이 되고 싶은지 파악했으며 그 세계에 속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면서 연락이 뜸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나는 서로에게 몰두했다가 조금씩 빠져나온 뒤 자신의 일상에 복귀해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사랑과 우정의 공통된 과정”이지만 그래도 변화된 관계가 눈물 날 만큼 서글펐던 유영은 갑작스런 경진의 소식에 불길한 느낌과 함께 경진을 찾는다.
아마도 다리 난간에 섰었던 유영과 이를 막으려던 경진의 모습에서 “10분만 더 숨쉬다가” 영상이 연상되었을 거다. 5년이라는 시간 또한 연상작용에 한 역할을 했을 테고. 물론 유튜브 영상 속 10분만 더 숨쉬다가와 유영이 가진 상처와 외로움이 ‘가족’으로 기인한 것이라 해도 다르다. 그 곁에 선 ‘친구’의 존재가 삶에서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숨을 쉬게 해주는 존재인지는 알 것 같다. 가끔 생각한다. 오래 전 연락이 끊긴 친구의 갑작스런 소식에 반응하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 유영이 생각한 것처럼 “서로에게 몰두했다가 조금씩 빠져나온 뒤 자신의 일상에 복귀해 관계를 이어나가는” 이 반복적인 과정에서 가끔 선택의 순간이 찾아오게 될 때, 결정적 요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뭐, 그런.
학창시절엔 이상하게도 ‘친구’에 대해 ‘우정’에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런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뭔가 ‘마음이 끌리는 대로’가 아니라 ‘그래야만 해야 하는’ 형태로 움직였던 것도 같다.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많은 친구에게 본능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신경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시간의 길이’의 우위를 ‘우정’의 선택 순위에 높여 놓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취향이나 생활반경 내 존재하는 이들이 우정의 대상이 되었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래도 특정한 몇을 제외하고 직장에서 만난 관계는 오래 유지되지는 않은 것 같다. 어릴 때 만난 친구들일수록 취향이나 사회를 보는 시선이 얼마나 다른가도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소식이 끊긴 가끔 생각나는 친구도 있고. 달라진 게 있다면 한때는 ‘친구’란 같은 나이인 경우에 한정했다면, ‘친구’는 ‘나이’와는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 속에 내가 ‘유영’이라면 시간이 흘러 찾아온 이 상황에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그렇게 각별한 친구야? 몇 번 만나지도 않았다며…….”
희주의 물음을 듣고 나서야 마음속에 아주 확고하게 다른 결심이 들어섰다. 얼마나 자주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었는지, 서로의 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지 아닌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직 내게 중요한 건 김경진이라는 존재 그 자체였다. ‘친구’라는 단어로는 차마 설명할 수 없는, 그냥 김경진. 우리가 서로를 만났다는 것. 그 하나의 사실만으로 이유는 충분했다. 나는 경진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었다.
경진은 “자신이 고유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소설을 쓴다”고 했다. 나는 영화나 소설 속에 묘사되는 ‘멋진’ 친구의 모습이 되고자 한 때가 있었다. 어느 순간엔 내겐 그런 친구가 있는가란 물음을 하게 되곤 한다. 어릴 적부터 오랜 시간을 친구로 지내오면서 사소하다고 해야 할지 그런 일들로 관계를 끊었다고 얘기하는 주위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뒤늦게 ‘관계를 끊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유영은 ‘각별한 친구’는 몇 번 만나지 않은 것 정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만났다’는 이유, ‘존재’ 자체로 ‘김경진’을 각별한 친구로 정의했다. 그들의 학창시절이 그 기억이 유영과 경진이 ‘각별함’을 보여주는 요인이 된다. 마음 속에 누군가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 어떤 시간을 나누었느냐가 현재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친구란 “삶으로 이끌어주는” 존재, 지금은 이 말이 와 닿는다.
손바닥에 유리 조각을 두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소주병 혹은 사이다병이 깨지고 난 뒤의 시간을 짐작해보았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모래사장에서 바람과 파도를 맞으며 서서히 마모되어온 시간을. 수많은 모래알 사이에서 나는 초록으로 빛나는 작은 유리 조각 하나를 주워 경진에게 건네었고, 오랜 시간이 흘러 경진은 그것을 다시 내게 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