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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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이랑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이야기장수, 2026-03-12.

 

 

  내가 아는 이랑은 고랑과 짝을 이루는 단어가 전부다. 아니다. ‘누구’와 혹은 ‘무엇’과 ‘함께’를 나타낼 때의 이랑도 안다. 고랑과 함께 쓰일 때, 이랑은 뜻이 분명해지고 은유도 폭발한다. 그래서인지 이랑에는 필연적으로 고랑이 따라붙는 듯하다. 고랑과 함께하는 이랑. 삶의 정점과 하강이 공존하는.

  그리고 이제, 이랑이 예술가의 본명이라는 것을 안다. 예술가에게 ‘미친’이란 수식어는 최고의 찬사가 아닌가.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일 때, 딸 하나는, 이랑의 언니는, 이슬은, 미친년이 되지 못해서 “미래를 더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이슬’의 이야기가 각인되어 ‘이슬’을 애도한다. 미친년이 되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제목을 보고 미친 듯이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나름 머릿속에 상상되는 이야기의 내용과 흐름이 있었다.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다르게 흘러갔다. 엄마와 딸들과 고양이의 역사로 흘러가는 중에 ‘이슬’이 계속 맺힌다.

저자인 이랑은 언니 ‘이슬’이 소진사消盡死하였다고 했다.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消盡死?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

 

  38세의 이슬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일상을 잘 버텨오다 갑자기 “저승에 갔다. 이승을 떠났다. 하늘에 갔다. 사망했다.” 가정폭력 피해생존자 동지로서 사랑한다고 말하던 언니는 “죽음을 선택하고 죽음을 실행했다.”

  동생 이랑은 언니가 ‘장녀병’이었다고 질타했는데, 그 병에 걸린 언니가 안타까웠다. 언니를 둘러싼 그 환경(이랑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미쳤고, 아빠는 쌍놈이고, 할매들도 다 정신병자고, 친척들은 사기꾼이니.”, 게다가 남동생은 장애인이다.)을 떠나 조금 편안해졌기를 바랄 수밖에. 되물림되는 불치병인 장녀병을 치료할 약은 없는 건가. 이기적이고 천재적인 동생에게 “너만 너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며 비난했지만 점점 “너라도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하던 언니 이슬의 변화된 말들이 미래를 암시하는 말이었을까. 비공개로 차곡차곡 쌓아 둔 이슬의 몇 개 되지 않은 기록이, 편지가 그 담담한 편지가 이랑의 노랫말보다 더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그런 것쯤 제쳐두고 좀더 미쳐버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제 능력을 소원을 가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건, 얼마나 아픈 일인가.

  이랑의 엄마 김경형은 힘겹고 아픈 삶을 어떡하든 혼자 헤쳐나가려 노력했지만 어찌보면 실패했다. 가족과 친척 사이에서 ‘미친년’이 되어버린 엄마는 사는 동안 고통과 아픔과 답답함과 울분을 산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하지만 산에서 심각한 ‘폭력’을 당한 후 더 이상 산엔 갈 수 없었고, 이후 장롱 속 이불 속에 머리를 박고서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대신했다. 나는 이랑 엄마의 이 모습이 너무 처절하게 느껴졌는데, 더불어 가스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한 실비아 플라스가 생각 나, 더더욱 가슴이 답답했다.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에 물든 대가족 집안에서 태어난 우리 엄마 김경형의 ‘미친년 인생’은 엄마 탓이 아니다. 엄마 탓은 아니지만 엄마가 미친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잔혹한 굴레 속에서 나 또한 미친년으로 자라났다. 그나마 나는 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는 미친년이라 다행이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엄마의 미친년 역사도 무척 소중하기에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

 

  이랑이 정의하듯 ‘미친년’의 역사는 되물림되었다. 이랑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미친년이 되었고 그리하여 언니도 그러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동생 이랑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언니 이슬도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 방송댄스, 라틴댄스 등을 비롯해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즉흥 춤”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제대로 미칠 수 있을 정도의 것은 아니었고 그것과는 별개로 온전히 떠안고 있는 가족에 대한 경제적인 어려움과 힘겨움을 상쇄하기에는 부족했나보다 싶었다. 그것만으로는 이슬이라는 한 인간이 보다 편안하고 자유로울 수 없었노라고.

  이젠 남은 자가 있다. 떠난 자를 그리워하며 아파하며 떠난 자가 남겨둔 것을 고스란히 옆에 두고 있는. 이랑의 가족사를 들으며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성장해 온 나날을 보며 이랑에게 하루하루 “끝없는 혼잣말”이 얼마나 필요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연극을 하고 이 모든 행위가 일찌감치 가족 내에서 불거진 상처와 슬픔을 다독이는 것이라면 여전히 이랑 작가는 계속 써야만 할 것이고 몸의 행위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사랑이라 말하지만 가장 근원적인 고통과 슬픔, 아픔을 남겨준 가족, 그리고 그 가족을 고통 쪽으로 더 가깝게 만드는 고루하고 폭력적인 관습들로 누군가는 폭발적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누군가는 감정을 거세한다. 세상에 이토록 내밀한 가족사를 털어놓지 않더라도 온전한 감정을 느낄 수 있기 위해선 이랑처럼 ‘미친년’이 될 필요는 있다. 누르고 있는 기억과 감정을 끄집어 온기를 찾아가는 여정, 특히나 이 땅의 ‘미친년들’에게는 더욱 그것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랑의 이 책은 위로와 함께 용기를 북돋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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