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퀴어하다 - 장소에 토박이가 된다는 것, 속한다는 것, 그리고 자연의 온갖 퀴어함에 관하여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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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체로부터


자연은 퀴어하다 - 장소에 토박이가 된다는 것, 속한다는 것, 그리고 자연의 온갖 퀴어함에 관하여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노승영 (옮긴이), 에이도스, 2026-04-14


  ‘퀴어하다’. 이 단어를 흘낏, ‘퀴어보다는 자연에 방점을 두고 책을 펼쳤기에 이런 전개를 예상하지 않았다. 자연에 관한 다큐 정도로 생각하고 책을 펼치는데,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당황할 수밖에. 퀴어를 너무 간과한 건가. 원제를 본다. Forest Euphoria. 그리고 작가 소개를 본다.

  ‘퀴어하다가 자연스러운가. 대체로 퀴어라는 단어는 동성애라는 특정한 의미를 부각하며 한정적으로 사용된다. 그렇기에 이러한 의미를 들이댄다면 제목이 자연스럽지 않다. 혐오와 멸칭, 황색 언론에서 주로 다루는 소모적인 논쟁의 형태가 아니라 다른 의미를 가졌다. 저자가 확장하여 이야기하고픈 퀴어함은 뭘까. 적어도 생물학자로서 저자가 왜 자연에서 Euphoria”를 외치는지 너무나 공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마케팅 측면에서 퀴어하다를 붙이고야 마는 까닭도 알겠다.

  시작부터 저자는 명료함의 결여’, ‘모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스스로 명료함이 결여된 인간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살아 온 아르메니아인. 시작이 어디에서부터였나 따져가는 건 중요한 부분이 아닐 테다. 그것이 저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더 중요하다. 아르메니아도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서 모호한 위치에 있는 나라로 평가받는다. 현재 저자는 인종학살을 피해 아르메니아에서 미국으로 피란한 이민자 가정 출신의 여성 생물학자로 소개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의도를 서두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의도가 이 책을 끌고 가기보다는 숲에서, 자연에서 Euphoria”를 체험하고 인식한 것이 이 책을 쓸 수 있게 하는 동기를 강화하고 의도를 견인하였다고 본다. 이 순서는 중요하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에 속한다. 그러니까 자연 이야기에 인간 이야기가 삽입된 것에 내가 너무나 퀴어하지 않게반응한 것이다. 그렇다면 퀴어함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퀴어는 오늘날 문화에서 정상으로 간주되지 않는 성 및 성별 범주를 가리키는 데 주로 쓰이지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일탈인가를 모호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뭉뚱그려 가리키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

 

  자연은 다양하고, 복잡하고, ’순수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양성과 복잡함과 다르게 순수성을 부여할 때는 대체로 생물종의 성별이나 번식에 제한하여 이야기한다. 이에 따라, 자연에, 생물종에 지독한 폭력을 가한다.” 이분법적 강박과 이성애 규범을 강제하면서 말이다. 생물학종은 모두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단순한 암수 구별법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거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저자는 생물학자로서 연구를 깊이 하면 할수록 이분법적이고 이성애적인 접근체계가 얼마나 지배적인지, 심지어 기존 질서를 그대로 따름에 따라 객관적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도, 학자의 선호에 따라 생물종에 혐오를 담은 명명을 하는 경우도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통제, 예측 가능성, 확고한 정의(定意)를 요구하며, 청결, 순수, 상업적 생산성을 기대하는 우리 문화에서 저자와 같은 성별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소외되고 배제당한다. 외롭고 아프고 힘겨울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저자 앞에 나타난 자웅동체이거나 삼성이체인 균류와 같은 존재들! 이러한 생물들은 다양하고 많다. 혹고니는 동성끼리 짝을 이루며, 뱀장어는 뚜렷한 생식기간이 없이 살아가기도 하며, 달팽이 또한 성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분법적 사고와 인간 중심의 사고 체계에 따르면 모두 배제되는 문제적 생물군들. 이것은 저자가 스스로를 존중하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전환시켜 주는 존재가 된다.

 

균류는 전복적이다. 나는 이 전복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그들의 논바이너리 몸에서, 범주와 정의의 거부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강하게 했다. 그들을 연구하면서 명료함과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나은 언어를 찾았으며 더 중요하게는 나의 유동성, 양서류성, 집단적 반향을 향한 끌림을 인정받고 공감받았다. 그들은 내가 스스로의 사람됨을 찾고 이해하고 찬미하게 해주었다. 그들은 나를 이름으로 불렀다.

 

  버섯에 대한 EBS 다큐를 꽤 흥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그 몇시간 짜리로도 버섯에 대해 제법 매료되었는데 명료함이 결여된생물학자의 눈에 버섯은 얼마나 흥미로울까. 이러한 균류로 인해 저자는 퀴어함의 가치에 대해 생각한다. 모호하고 뒤죽박죽인 자연에 대해 생각한다. “이성애 규범 바깥의 생식을 연구하며 진화와 생물학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자연의 퀴어함을 받아들이는 데서 나아간다.

  이 책은 자신을 보다 더 사랑하고 싶지만 기존 위계 질서 속에서 힘겨웠던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재인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동안 얼마나 힘겨웠는지 균류에 동질의식과 소속감을 느끼며 자신을 정립해 나가는 저자의 몸부림이 이 책에 잘 담겨 있다. 소외되고 배척당한다고 느끼는 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지 그 방법적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처음부터 명확히 밝힌 저자의 의도, 그건 다음과 같다.

 

이 책에서 나는 자연이 얼마나 퀴어한지 탐구한다. 나는 어릴 적 경험, 퀴어 정체성, 균류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의 작업을 통해 자연이 억압될 수 없고 제한될 수 없고 똑바로 정의될 수조차 없음을 배웠다. 자연에 편재하는 퀴어함은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이분법적 규칙에 도전한다. 성이 셋 이상인 균류, 까마귀의 동성 동반자 관계, 달팽이와 장어의 간성 몸에서 우리는 인류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영감을 얻는다. 궁극적으로 퀴어함은 우리 모두를 정체성과 무관하게 더 불확정적이고 불확실하고 이행적이고 혼합적이고 상호의존적이고 협력적이고 비위계적인 존재 방식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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