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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ㅣ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평점 :
에밀 졸라
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김광우 (지은이), 미술문화, 2017-10-23.
2026년 클로드 모네가 사망한 지 100년이 되는 해란다. 모네는 마네와 함께 거론되는 교과서에서 다루었던 화가다. ‘인상주의’로 대표되는 것 외에, 학창시절 기억에 의존해도 마네와 모네는 늘 헷갈렸고 대표적인 작품이 무엇이었는지도 가물해지는 때, 2025년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전시회가 있다고 하여 오직 ‘모네’ 작품만을 생각하며 전시회를 갔다. 모네 작품은 어디에를 연발하며 그저, 모네 작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아예 잊어버린 채 돌아왔다. 전시회 제목에 딱 쓰인 것이 모네인지라 모네의 수많은 작품이 어느 정도는 될 줄 알았더니 모네의 작품은 1점이었다. 모네는, 그러니까 미끼였던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Johannesburg Art Gallery, JAG)’의 주요 소장품 143점에 모네 작품이 하나일 줄 어찌 알았겠는가.
사실 대부분이 그렇지만 모네, 마네는 화가의 일대기도 그림도 제대로 본 적 없었던 것 같다. 교과서에 조그맣게 있었던 그림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 외에는 다른 책을 통해서 보다 자세히 접해 보지 못한 화가였다. 우리나라는 ‘고흐’에 관한 책은 정말 많은데 생각보다 다른 화가들에 대한 책들은 많지 않다. 아니, 고흐에 관한 책이 너무 절대적인가. 두 화가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둘 다 같은 제목으로 그린 그림 때문에도 헷갈렸고 주의깊게 살펴보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전시회에서 본 모네의 그림은 팸플릿에서는 아주 인상적이었지만 전시회에서는 인상적인 기억이 되지 않았다. 작품이 한점이기에 오히려 더더욱 모를 화가로 남았는데 이 책을 보고 모네와 마네를 명확히 구분한다.
마네와 모네는 대조적이구나. 비슷한 화풍이었던 것 같다며 마네, 모네를 한 유형 한 묶음으로 생각했는데, 두 화가의 그림과 일대기를 보며 어쩌다 이런 혼란을 고정시켰는가 싶었다. 미술 수업을 제대로 안 들었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때문이었을까!
인상주의라는 이름 하에 간단한 인상을 말하자면 마네는 선명함, 모네는 흐릿함이다. 두 화가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화가로 마네가 모네보다 연상이며, 동일한 제목으로 그린 그림이 몇 있지만 마네가 ‘인물’에 중심을 둔 사실주의적 그림을 주로 그렸다면 모네는 ‘풍경’에 중심을 둔 ‘인상주의’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대충 요약하는데 저자는 세련되게 이들을 비교하여 보여준다.
마네는 의도적 구성이나 생략으로 화가 자신만의 느낌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렸다. 따라서 인물화에 관심이 많았고 그에게는 모델이 매우 중요했다.
마네는 모더니즘을 연 사람으로, 모네는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네와 모네는 동시대를 살며 교류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 책은 이런 마네와 모네의 삶과 작품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동일한 제목의 그림이 각각의 특성을 가진 채 어떻게 다른지, 잘 보여주고 있다. <풀밭 위의 오찬>(대체로 그림 제목이 풀밭 위의 식사, 풀밭 위의 점심 식사, 풀밭 위의 오찬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이 책은 풀밭 위의 오찬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오찬’ 표현이 이상하게 별로다.), <생리자르역>을 비롯하여 아르장퇴유에서 그린 마네와 모네의 그림들도. 앞의 두 작품이 마네오 모네의 명확한 차이점을 보여준다면 모네가 살고 있던 아르장퇴유에서 모네 부부를 그린 마네의 그림은 아르장퇴유에서 모네가 그린 그림들과 유사한 형태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두 화가를 알게 되긴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에밀 졸라”를 비롯한 평론가이기도 했다. 두 화가는 파리 화단의 인정을 위한 살롱전(국전)에 끊임없이 출품하였지만 대체로 평단으로부터 ‘악평’을 받았다. 이 때마다 두 화가의 그림을 분석하여 그림을 해석하고 화가의 의도를 설명하며 그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은 에밀 졸라였다. 전통적인, 익숙함에 길들여지고 그것만이 옳고 조금이라도 다르면 ‘틀린’ 것으로 치부하는 다른 평단을 향해 제대로 된 비평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당시에도 누드 그림은 성행했는데, 그러고 보면 왜 그다지도 ‘누드’ 그림에 열광하였는지 참 모를 일이다. 그런데, 마네의 그림만은 적나라하게 공격받았다. 모두들 외설적이라 비난했고 황제는 “뻔뻔스러운 그림”이라고 비난했다. 이 그림은 그래도 ‘낙선전’에 전시되었고 황제의 비난 덕분에 홍보가 되어 인기가 좋았다.
이 책은 마네와 모네에 대한 평단의 비난에 대한 에밀 졸라의 비평이 잘 담겨 있다. 에밀 졸라의 시각으로 그림에 대한 비평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날 이 두 화가를 대표하는 평들이 에밀 졸라에게서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평을 저자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을 번역하여 그대로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이를 보면서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그림에 대해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눈으로 보고 뭔가를 느끼거나 혹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 어떤 점이 포인트가 되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게 한다. 물론 두 화가의 작품을 다룬 책인데도 “에밀 졸라”만 생각나는 것도 있지만.
두 화가의 공통점은 평단에 비난 단골이라는 점이다. 이들에 대한 비난에는 ‘기존과 다르다’, ‘새롭다’, ‘낯설다’라는 평이 많다. 그리고 이것을 긍정하지 않고 부정하는 형태로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오늘날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바로 ”과거의 전통적인 형식을 파괴하고 미술 자체의 본질과 순수성을 추구했던 혁신적 태도”인 “모더니즘”이다. 저자가 처음 설명하고 있듯이 마네는 “모더니즘”의 선구자이자 인상파를 연(물론 본인은 인상파이기를 거부했다 한다) 화가로 모네는 인상주의의 대표 주자로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자 추상 미술을 연 화가로 대표되고 있다.
이처럼 훗날에도 이름을 날리며 영향력 있는 화가가 되기까지 이들에게 온갖 말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동료, 평단, 친구, 화단,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두 화가를 둘러싼 반응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이 책을 통해 누군가 ‘나( 더더군다나 예술가라면)’ 를 알아주는 이 한 명이라도 만난다면 참으로 행복한 인생이구나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