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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 밖은 안녕
이주혜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4월
평점 :
환상의 존재들
괄호 밖은 안녕, 이주혜, 문학동네, 2026-04-10.
책을 덮고 나면 ‘번역’이란 단어가 둥둥 떠오르는데 아, 이주혜 작가가 번역가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다. 소설집 속에 반복된 ‘번역’이란 언어와 언어만이 아니라 존재와 비존재, 동식물, 기억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아니라 항상 ‘낯선 곳’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서 공간에 대한 ‘번역’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 모든 것들, ‘언어’가 아닌 것을 ‘의미화’하여 해석하는 이야기들. 그래서 한편으론 이 낯선 곳에서 여행하면서 ‘번역’으로 인한 어려움이 전혀 없다. 「안개의 기분」에 등장하는 “사슴 키리‘의 능력을 부여받은 것처럼, 어찌 이다지도 소통이 어려움없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인가.
번역으로 힘든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든 어떻든 소설 속 인물들은 여행을 떠나는데 이 여행 장소는 주로 ‘일본’이다. 일본은 또한 ‘번역’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언어를 이해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왜 굳이 여행의 장소는 일본인 걸까. 세계화가 된 지 오래, 점점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배경은 이제 한국소설에서 아주 기본으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일본이라는 공간이 지리적으로 가까워서일까. 분명 우리나라와는 심리적정서상 이질감과 거리낌이 있는 ‘일본’이란 나라, 꼭 이 나라가 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가, 필연성이 있는가 생각해볼 때가 있다. 젊은 세대에서 ‘일본’에 대해 우호적(?)이고, 한국인이 가장 많이 여행가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을 본 것도 같다. 굳이 배척할 필요야 없지만 굳이 더 챙기고(?) 그럴 것까지야 있는가 생각하기도 한다. 아직 뭔가 해결되지 않은 듯하여. 하지만, 그런 점에서 또한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이 주는 ‘소설적인 요인’들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그래서 일본이 배경인 소설들이 주는 이미지, 정서가 대체로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소설에서 일상을 벗어나고픈 이들은 자신의 언어가 닿지 않는 낯선 곳을 선택한다. 여행은 보다 ‘낯선 방향으로’ 가서 ‘익숙함을 발견’하고 오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던가. 여기,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낯선’ 곳으로 가, ‘낯선 것 이상의 기묘한 것’을 만나고 ‘과거를 기억’하고 온다. 과거의 ‘기억’을 괄호 밖으로 끄집어내어 ‘해석’하고 온다고 해야 할까. 살면서 타인에 의해서든 자이로든 단단히 갇혀 두었던 그 기억 속 말들을 끄집어낼 때, 그것은 적어도 해석되고 해체되어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게끔 만든다. 그렇다면 이건 치유의 과정인 건가. 「안개의 기분」에서 마주치는 말하는 사슴 ”키리“를 보자. 느닷없이 나타난 키리는 “마음을 다하면 저절로 상대방의 말을 할 줄 아는” 존재다. 소설집에서 이런 존재는 불쑥 나타난다. 여행을 떠난 ‘나’는 비로소 ‘마음을 다하여’ 자신의 마음 속에 숨겨놓은 ‘언어’를 마주할 용기를 가지게 된 걸까. 그것을 위해 작가는 툭툭, 여행 속에서 이러한 존재들을 내밀고 있는 것인가.
여자는 음성언어 외의 언어 소통에 능숙했다. 오직 손짓과 몸짓, 표정만 동원할 뿐인데 이상하게도 여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저절로 이해되었다. 여자는 마임 배우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동작이 섬세하고 표현력이 뛰어났다. 몸에서 출발한 언어는 의식적으로 해석할 필요 없게 단단한 괄호에 담겨 곧바로 내 몸에 도착했다._「괄호 밖은 안녕」
「괄호 밖은 안녕」속 비오는 날에 만난 맨발의 여자도 그렇다. 사슴 키리처럼. 그러나 이런 존재들이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 이들을 마주쳤는지는 모를 일이다. 환상처럼 유령처럼 마주한 이들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그들 너머의 기억을 소환하니까.
어떤 기억들을 소환하느냐, 「안개의 기분」에서는 민해라는 이름이 ‘민중해방’의 민해인지를 묻는다거나 외할머니와 엄마와 아들이 성이 같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기억을, 「괄호 밖은 안녕」에선 가정폭력에서 도망친 이웃집 여자에 대한 기억과 자신의 가족사를, 「초록 비가 내리는 밤」에선 남성 가부장제의 피해자를, 「여름 손님입니까」에서는 내가 질투한 엄마의 조카인 영란 언니를, 「순영, 일월 육일 어때」에선 결혼과 임신을 이유로 ‘수은’의 인생에서 사라진 언니다. 대체로 ‘가족’에 관한 기억이다. 위안이 되는 존재로서의 ‘가족’ 인지 상처를 주는 가족인 것인지.
「초록 비가 내리는 집」은 인상적이다. 가부장적인 남편 ‘박천일’에게 40년이 넘는 세월을 순종하며 살아야 했던 ‘양순덕’이 병으로 사망하며 화분 100여개와 그 식물을 키워낸 기록을 적은 노트를 남긴다. ‘박천일’은 아내의 기록을 읽어내지도 식물을 키워내지도 못하고 ‘손우정’에게 집을 세주는데 사회에서의 또다른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손우정’은 ‘양순덕’의 기록을 보며 식물을 되살리고자 한다.
손우정은 비를 피하는 게 화분에 이로울지 맞는 게 이로울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헛웃음이 터졌다. 저 많은 화분 중 초록으로 살아난 식물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손우정은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식물들이 번개와 폭우를 견뎌내리라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로 화분들 간 틈이 거의 없게 바짝 붙여주고 가장자리의 아주 작은 화분들은 창고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아놓았다. 손우정은 화분 백 개와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속삭였다. 우리 꼭 살아남자.
식물을 가꾸는 아내와 함께 산 남편이 전혀 해내지 못하는, 아내의 기록마저도 무슨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남편과 다르게 타인인 ‘손우정’은 ‘양순덕’의 식물에 대한 기록을 읽어내고 해석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신이 당한 억압에서 해방되고 치유하고자 하는 ‘손우정’은 서로 본명도 모르지만 서로를 위로하는 「할리와 로사」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싱글맘의 서사, 가정폭력 피해자, 돌봄 노동에 갇힌 여성들 등 가부장제, 남성 피해에 맞선 여성의 상처에 대한 공유와 연대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 꼭 살아남자".
생각해보면 “마음을 다하면” 될 일인데, 해석할 수 없는 언어로 존재하는 관계들이 있는 법. 그리하여, 낯선 여정이 해방이 되고 ‘이소’를 꿈꾸는 이들이, 괄호 밖으로 나가기 위한 존재들이 소설에 가득 차 있다. 그들에게는 아직 이 현실에서는 환상의 존재들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