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래서는 안 될 텐데

 

혼모노, 성해나, 창비, 2025-03-28.

 

 

  이 책을 읽었을 때는 혼모노 열풍이 조금 비껴간 시점이었다. 난 소설보다는 외적인 부분에 더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여전히 이 책의 인기는 높은지 알라딘 서점을 클릭하자마자 40만부 기념 양장판 출간 소식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전 책 표지의 빨간 사과는 핑크빛이 감도는 사과로 바뀌었다. 사과, 그래 사과가 문제인가. 뜬금 사과의 색이 저렇게 옅어지면 안되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

  학습된 힘인지 DNA에 새겨진 탓인지 일본스러운것들에 대해선 기껍거나 선뜻 순순하게 몸과 마음이 나가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그럼에도혼모노에는 일곱 편의 단편 중 표제작인혼모노가 소설에서 연상되는 색채와 그 제목으로 인해 책을 덮고 나서도 기억에 가장 남는 작품이긴 했다.

  그리고 혼모노 속 역 근처 버거집을 지나다 질겁한다. 앞집 신애기가 창가 자리에 앉아 버거를 먹고 있다.”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어떤 날의 롯데리아보살집이 계속 머리를 점령했다. 그날의 일들은 지리멸렬하고 조각조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영원히 조각만 드러나는 건 아닌지 흐르는 시간 속에서 멍해질 때가 있다. 정말 그 일이 일어났나, 내가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다가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지거나 덮이는 것은 아닌가 싶은 날들이 흘러간다. 그러다 또 한번씩 터져 나오는 조각들에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화딱지가 쌓이기만 한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소설 속 문장처럼.


지금 나를 향해 조소하는 것이 할멈인지 저 애인지, 허깨비인지 인간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슴속에서 불길이 일렁인다.

 

  굳이 버거집 풍경을 상상하면 이런 코미디가 있을까 싶은데, 혼모노를 보면서도 그저 코미디 같기만 했고 무당 문수를 보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뭐라고 해야 하나,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이라거나 능력을 벗어난 것을 취하기 위해 잘못된 방식으로 행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그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작두에 베여 피를 흘리면서도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에게 도취되고 있는 박수무당 문수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해 한동안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될 수밖에 없을 테지만 이미 애매한 형태로 바라보게 된 것을.

  영험한 신이 떠나가 버린 무속인은 무속인인가. 박수무당 문수가 그냥 문수가 아니라 직업인 박수무당이라면 현재의 문수를 가여워할지언정 문수무당으로 찾을 일도 박수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무당이라는 역할을 맡은 문수의 역할은 끝이다. 그러나 문수는 스스로의 위치를 재정의한다. 미친 듯이 작두를 타며 자신에게 도취된 문수여, 왜 이전에는 그러하지 못했는가. 이것을 자각이라고 해야 할지, 광기라고 해야 할지 문수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어느 쪽으로 하고 싶은지 나 또한 어정쩡하다. 다만, 생각보다 벅찬 환희도 없고 문수에 대한 애정도 생기지 않는 건 분명하다.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까지도 감정의 파고는 매우 덤덤하다.

  이미, 12.3일을 만들어내기 위한 일련의 상황들에 대입되었기에 무속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없는 자의 망나니같은 마지막 몸짓, 자의식 과잉의 몸짓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장삼이 붉게 젖어든다. 무령을 흔든다. 잘랑거리는 무령 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가볍고도 묵직하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작두에서 내려오지 않던 신애기가 아연실색하며 나가떨어진다. 그애는 바닥에 주저앉아 휘둥그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황보와 그의 가족도 기도를 멈추고 나를 올려본다. 할멈도 이 장관을 다 지켜보고 있겠지.

어떤가. 이제 당신도 알겠는가.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큭큭 큭큭큭큭.

 

  나야말로 존나 흉내만 내는 놈’, 아니 존나 흉내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놈에 대해 조소하고 싶은데 실제 겪어보면 웃음조차 나오지 않던 시절이 생각나 웃지도 못했다. 이제껏 가만히 있다 무당이라는 역할 측면에서 신기가 없는 문수가 신애기에게 경쟁의식과 질투를 느끼면서 비로소 무언가를 한다는 건 그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그 무언가를 어떤 형태로 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니. ‘진짜가 된다는 건 뭐지. 어떻게 해야 진짜가 되는 것인지, ‘진짜는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간혹 어떤 이의 처절한 몸부림은 연민보다도 환멸을 더 느끼게 한다. 내게 박수무당문수는 환멸이었을까.

  얼른 환멸을 끝내고 싶다. 마음 속에 지속적인 환멸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한 일 아닌가. 내가 무엇을 했다고. 그리하여 누가 만들어낸 이 환멸이 얼른 명징하게 해소될 수 있기 위해선 여전히 지지부진하게 흐르고 있는 그날의 진실이 명확하게 해결되어야 한다. 그 사실, 진실을 드러내는데 문수처럼 작두 위에서 버둥거리는 관련 인물들이 너무나 많아 이들이 흘리는 저 가짜 피와 광기가 그들로 인해 피눈물 흘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그 무엇도 아닌 양 만들어버리려는 것이 단순히 화가 난다는 말로 멈춰지지 않는다. 꽃이 피고 햇살은 따스하고 하늘은 맑다고 그날이 그 일들이 모두 빛바래지면 안되는데……. 빨간색이 분홍빛으로 변한 표지 혼모노를 보며 진짜진짜 그 생각만이 가득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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