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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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현실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2019.


  「일의 기쁨과 슬픔」이 신인상 수상작으로 SNS에 오르내릴 때 내가 떠올린 건 알랭 드 보통이었다. 보통 책을 다시 읽어 볼까. 그리고 많은 이들이 집중할 때면 으레 그래왔듯이 이 소설에 대해선 잠깐의 호기심 후 뒤로 물러났다. 알랭 드 보통의 책 제목에 기대었음에도 구미가 당기지 않은 까닭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이 소설 하나를 읽게 되었는데 첫 느낌은 ‘이건 SF인가?’였다.

  당황한 건 이 소설에 대한 댓글 반응이었다. 소설이 현실을 바탕으로 한 상상의 영역이라지만 지극히 ‘소설’로 본 나에 비해 댓글은 현실적인 공감 반응이 많았다. 웹에서 읽은 터라 댓글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며 실제로 같은 경험을 했다는 글을 보았을 때, 나는 내 경험과 상상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제야 이 소설이 웹상에서 그토록 뜨거운 반응일 수 있었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판교 테크노벨리 스타트업 회사가 배경이다. 중고 마켓 회사 사원 김안나는 우수 이용객인 아이디 거북이알이 매번 새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꺼림칙해 문제가 될 것을 염려해 거북이알을 만나게 된다. 거북이알은 인근 카드사 회사원으로 회장에게 찍혀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고 있었다. 거북이알의 생존법은 포인트로 물건을 구매해 다시 현금화하는 것이었다. 이게 소설의 줄거리인데 4차 산업혁명의 산업 현장에서 실제 이런 경험을 한 이들이 많다니 이 미치도록 리얼한 소설을 어찌 나는 SF쯤으로 생각하였나 싶다. 나는 이 공간이 낯설었다.


굴욕감에 침잠된 채로 밤을 지새웠고, 이미 나라는 사람은 없어져버린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그런데도 어김없이 날은 밝았고 여전히 자신이 세계 속에 존재하며 출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했다.   ― 「일의 기쁨과 슬픔」


  거북이알이 포인트로 월급을 받고 굴욕감에 밤을 지새운 것처럼 미칠 것 같이 잊고 싶은 현실감, 미세하게 구질구질한 속내들을 이 소설집은 담고 있다. 「일의 기쁨과 슬픔」 외에 8편이 담겨 있는데 하나같이 드러내지 않고 있으나 머릿속으로 드러내며 보이는 사람들의 속마음 같은 것이 펼쳐져 보인다고나 할까. 그래서 한편으로는 소설같다기보다 일상을 기록한 녹취록 같다. 가장 가까운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 그러나 내면에만 머무는 것도 아니고 뚜렷하게 표현되는 것도 아닌 채 공간에 머물러 있는 어떤 불편한 심기들을 잘 뽑아내었다.


“그럼, 제니퍼부터 해볼까?”

제니퍼는 디자이너인데 한국 사람이다. 회사가 위치한 곳이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판교 테크노밸리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영어 이름을 지어서 쓰는 이유는 대표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한 스타트업의 특성을 고려하여, 대표부터 직원까지 모두 영어 이름만을 쓰면서 동등하게 소통하는 수평한 업무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했다. 위계 있는 직급체계는 비효율적이라는 말이었다.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대표나 이사와 이야기할 때는 “저번에 데이빗께서 요청하신……” 혹은 “앤드류께서 말씀하신………” 이러고 앉아 있었다. 이럴 거면 영어 이름을 왜 쓰나? 문제는 대표인 데이빗이 그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수평문화 도입은 핑계고 촌스러운 자신의 본명―박대식―을 쓰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 「일의 기쁨과 슬픔」


네 번째 아주머니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내가 “저희 집은 설거지 안 하셔도 돼요. 식기세척기가 있어서”라고 하자마다 대뜸 내 팔뚝을 가볍게 때렸기 때문이었다.

“새댁, 설거지는 손으로 뽀드득하게 해야 하는 거야. 그건 기계가 따라갈 수가 없어요.”  ― 「도움의 손길」


  4차를 지나 5차, 6차 끝없이 N차의 산업혁명이 이야기되는 시대. 인간의 패턴의 묘하게 다른 지점들. 그럼에도 직장인이라 이름 붙였을 때는 여전히 고수되는 기류. 이 미묘한 상황이 만들어낸 현실의 지점들이 잘 녹아 있다. 세상은 이렇게 달라지고 있고 이것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져 있음을 알게 된다.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에비동에 새우가 빼곡하게 들어 있는 건 가게 주인이 착해서가 아니라 특 에비동을 주문했기 때문인 거고, 특 에비동은 일반 에비동보다 사천원이 더 비싸다는 거.   ― 「잘 살겠습니다」


  이제 현재의 삶은 이런 형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묘하게 다른 공간의 질서다. 거시적 세계보다는 미시적 세계의 일들에 대한 포착, 그것을 더욱 중시하는 듯이 아니 그 무엇에도 절대성을 갖지 않는 이들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마냥 쭈구려 있지 않고 반사할 줄 아는 사람들의 모습이라 해야 할까. 잘 살기 위한 세상의 이치는 가게 주인의 마음씨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특 에비동에 맞는 현금을 지급할 때에야 새우 몇 개를 더 먹는 것처럼 그런 사실을 깨치면서 살아나가야 한다고 누군가에게 지적받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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