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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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만들어진다


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문학동네, 2018.


  여성에게 소설쓰기와 아이 기르기는 어떤 의미일까. 구병모 작가의 여덟 단편을 읽고 난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지속되는 호의」와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를 보며 끝날 줄 모르는 짜증과 답답함이 있었다. 그 감각이 여전히 뒷목을 서늘하게 한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산골로 거주지를 옮긴 정주에게 모든 것을 간섭하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 다른 아이들을 보살피는 과정에서 점점 노골적으로 무례함을 보이는 아이들의 태도, 그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 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가 잊히지 않는다. 공동육아, 육아에 대한 사회서비스가 증가하고 체계를 갖춘다 해도 ‘내 아이’에 관한 한 관대하고 편협하게 행동하는 부모의 존재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움직여야 하지만 합의된 방식이란 여전히 모성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건 아닌가.

  엄마에게 주어진 천부적인 모성신화는 실존을 뛰어넘는다. 그보다 우선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기에 모성신화만큼 건드릴 수 없는 절대적인 프레임이 있을까. 환상적 신화에 맞추어 현실이 창조된다. 그래서 엄마는 있지만 나의 엄마는 없는 듯이 생각되기도 한다. 모든 것에 우선해 ‘나’라는 존재의 확립이 중요할 거라는 건 완벽하게 짜여진 신화 앞에 기꺼이 무너진다. 그래서 여성 자신의 자아 찾기에 관한 담론이 늘어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현실을 벗어난 가상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신화를 찾아보고자 만들어보고자 하는 것인지도.

  소설집을 읽으며 거듭 나의 언어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현실 세계이든 가상 세계이든 상황을 인식하며 나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하며 살기 위해선 어떤 ‘말’이 필요한지, 어떤 ‘말’에 휘둘리지 않아야 하는지 그런 생각들. 글이란 글쓰기란 존재를 자각하는 행위라고 생각할 언어 자체가 한계를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오토포이에시스」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주체는 AI 소설 기계이지만. 그 이름이 ‘백지’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그는 날마다 수많은 한 문장을 쓰고 버렸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였다. 꿈은 이 세계 바깥의 현실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거나 모든 것을 기억하라. 미로에서 빠져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솟아오르는 것이다. 모든 것을 관조하라. 우아함은 정열의 독이다. 이 같은 문장들 사이사이에는 아무런 서사적 인과관계가 없었으나, 한 문장 한 문장은 저마다 자꾸만 무언가 의미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백지가 그토록 버리려고 했던 의미를.   ―「오토포이에시스」


  미래를 상상하는 건 무궁무진하지만 어느 상상력이든 현실과 유리되지 않은 삶의 연장선이다. 새로운 세계에도 그 세계를 지칭하는 신화와 말은 존재한다. 그곳에서 또한 나는 규정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이야기의 주제를 압축하는, 나아가 그 모든 이야기와 무관한 궁극의 문장”. 본질적인 나를 규정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규정된, 원치 않는 신화를 깰 언어가 문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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