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 - 모르는 영역
권여선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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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힘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모르는 영역 


  비록 난 대상 수장작가 자선작 <전갱이의 맛>에 더 매료되지만 <모르는 영역>을 읽고 나면 왜 이 작품이 이효석 문학상 대상작인지 느껴진다. <메밀꽃 필무렵>이 바로 떠올려진다. 봉평 장날 풍경은 떠들썩한 식당 안 풍경으로, 메밀꽃 핀 달밤은 어둠 가득한 저수지와 차오르는 달의 이미지로, 부자관계일지 모를 허생원과 동이의 대화는 소원한 부녀관계인 명덕과 다영의 대화와 닮은 듯 여겨진다. 내용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인상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여운이랄까, 여백이랄까 그런 이야기 분위기가 닮았다.

  가족관계에서 시간이 지나면 더욱 어색해지는 관계, 부녀관계가 아닐까.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딸바보’가 대세처럼 자리하고 있지만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된 딸과 아버지의 관계는, 더구나 어머니가 부재한 부녀관계는 소설 속 부녀관계처럼 소원할 것이다. <모르는 영역>은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족이란 가깝지만 먼 그런 관계다. 그 관계의 익숙함을 경험하고 느끼고 있는 모습을 “모르는 영역”이라는 단어로 “해 입장에서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지”라는 문장 속으로 잘 그려내었다.

  <전갱이의 맛>은 권여선 작가의 단편이다. 첫 낚시 경험은 양식장 사이의 바닷가에서 장난감 같은 낚시줄로 우럭을 몰아쳐 잡은 거였다. 함께 장난감 낚시를 하던 이는 전갱이만 잡힌다고 울상이어서 전갱이가 맛이 덜한 물고기인줄 알았다. 그날 밤 잠결에도 우럭을 건져 올릴 때의 짜릿함이 손가락 끝에 머물렀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우럭 잡기가 쉽지 않다는 말에 의아해하면서도 우럭만을 건져 올린 것에 심취해 있었던 것인지 바닷가에 돌아와서 내내 천원짜리 줄낚시에 대한 경험을 늘어놓던 때가 생각난다. 어쩜 우럭잡기에 대한 이야기는 더 우려먹을 지도.


그러니까 사람은, 사람이란 존재는……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그렇게 감각하는 자체만으로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더라고. 내가 지금 이걸 느낀다, 하는 걸 나에게 알려주지 못하면 못 견디는 거지. 어떤 식으로든 내 느낌과 생각을 내게 전달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감각이나 사고 자체도 그 자리에서 질식해버리고 마는 것 같았어.


  남자는 성대낭종 수술을 받고 회복과정 동안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남자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말’이라는 게 타인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와의 대화라고. 그런 생각을 하게끔 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말을 들려주기 위해 표현하려는 과정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새삼 말이, 언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 낚시 바늘을 비껴간 전갱이의 맛은 여전히 모른다. 그럼에도 이혼한 전남편과 우연히 만난다면 전갱이보다는 우럭을 먹을 것 같지만 식당이고 시장이고 널린 것은 우럭이기도 했다. 소설 제목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내게 없는 감각이었다. 나는 전갱이 맛을 모른다. 그 결여된 감각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그 무엇, 그 이야깃거리.


나의 말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기억되거나 발견되는 거야. 내가 어떤 언어를 간절히 원했던 순간을 기억하거나, 그 간절함이 생겨나는 그 순간을 발견해서 내 말로 삼는 거지. 그러니까 내 말들은 어원을 잃는 법이 없어. 최초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그 위에 다른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말 속에 삶이 깃드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때로는 뜻을 알 수 없는, 그저 표현으로 먼저 생겨난 말도 있고, 가끔 아주 외설적인 말도 뛰어나와.


  전갱이의 맛을 읽고 조금 벅찬 감정이었는데 언어가 가지는 힘에 대한 경외감이라고 할까. 타인과의 대화를 몇날 며칠 하지 않는다고 질식하지 않으리라 자신하지만 끊임없이 생각이란 걸 하고 있다는 건, 남자가 말한 것처럼 자신과의 대화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 수단인 말. 내가 말을 하는 방식, 내가 말을 생각하는 방식, 그런 것들이 내 삶을 채워간다는 생각에 나는 좀더 말에 대해 겸허하겠다 생각하는 동시에 보다 많은 말을 건져 올려야겠다 싶다. 내가 기억하고 발견하는 만큼 나의 ‘말’이 내 언어의 ‘어원’이 많아질 것이므로. 작가는 원고를 마치고 나면 술을 마신다고 했는데 이런 감각을 얻으려면 소주에 전갱이를 먹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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