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
박솔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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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움이라 할 수 있을까


을, 박솔뫼, 자음과모음(이룸), 2010.


  ‘을’이란 제목을 보자마자 갑을병정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그 ‘을’이라 생각했다. 을이 있으려면 갑이 있어야 하고 그런 이야기일거라는 예상은 빗나갔고 시공간이 어딘지 짐작할 수 없을 소설을 만난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을이란 걸 알았음에도 책을 덮고 나서 뿌연 안개를 걷어내지 못한 채 생각했다. 이건 갑을의 그 을이 맞노라고.

  어쩌면 이렇게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을’이라는 소설은 세 사람에 관한 소설이고, 그런데 그들은 연인도 친구도 아니고 정확히 어떤 사이인지 알 수 없었다고. 외딴 호텔에 그들은 머물렀고 호텔은 어느 나라,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아무데나 갈 수 있잖아’라는 대사처럼 도대체 등장인물들의 마음이 행동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이 소설이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소통의 매개가 아니라 기호의 등가물이 되는 것들을 사랑’하는 을처럼 소설은 독자와 소통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 익숙한 소설의 서사 방식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기호와 메시지같아 소설은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작가의 의도를, 이야기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언제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글을 읽었던가. 그래서 등장인물의 이름 ‘을’이 아니라 갑을관계의 ‘을’이란 기호로 읽어버린다.

  소설 속 인물의 이야기보다 ‘을’이 본 영화 얘기가 더욱 흥미롭다. 하긴 그것이 그들의 관계를 암시하는 내용일 것이다. 호텔은 행복한 낙원은 분명 아니지만 막상 한방의 총성이 울린 호텔은 더욱 불온하게만 느껴진다.


을이 보았다는 영화는 세 사람에 관한 영화였다. 어떤 외딴 곳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연인도 아니었고 친구도 아니었다. 을은 그들이 정확히 어떤 사이인지 알 수 없었다. 을은 그들이 외딴 곳으로 몰린 사람들로 보였다. 그들이 어떤 사이인지 알 수 없었지만 ‘외딴 곳’이라는 장소가 그들에게 동지애 비슷한 것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는 외딴 곳에 새로운 사람이 방문하게 되었다.


  장기 투숙자를 대상으로 한 호텔에 ‘을’이 머물고 있고 ‘민주’를 불러들였고, 또다른 투숙객 ‘프래니’와 ‘주이’가 있고 하우스 키퍼 ‘씨안’이 있다. 이렇게 세어 보면 다섯이 되지만 이야기는 늘 셋을 말한다. 처음부터 셋이 아니라 둘이었다가 더해진 셋의 이야기로서. 그래서인지 둘 사이에 더해진 셋은 관계를 흐리게 한다. 둘일 때에는 마치 명확해 보였던 관계가 셋으로 인해 다르게 보인다.


두 명이 있을 때는 다른 할 일이 없다는 듯 뒤엉켜 뒹굴기만 했으나 세 명이 되자 그들은 나라라도 세울 듯이 열심히 일했다. 머릿속으로는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비장하며 가슴 떨리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비장하며 건설적이고 청교도처럼 부지런한 날들이 흘렀다. (…) 노동 후 피곤했던 그들은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런데 누군가가 살며시 일어나 어둠 속에서 칼을 들어 누군가를 찔렀다. 푹 하고 찌르는 소리와 끅 하는 비명이 짧게 순차적으로 들렸다. 또 다른 한 명은 가만히 일어나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칼을 들었던 이는 죽은 이의 시체를 질질질 끌고 나갔다. 모리세이는 계속 노래를 부른다. 방 안에는 다시 두 사람이다. 그들은 짙은 어둠 속에 앉아 있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엉겨 붙어 뒹굴었다.


  을과 민주, 프래니와 주이의 관계는 기존 사회질서에서 쉬이 용인되는 관계는 아니다. 그렇기에 사촌 자매인 프래니와 주이는 가족과 나라를 떠나왔다. 남성이 안정된 경제력을 가지고 여성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상황이 통상적인 사회에서 을과 민주는 그렇지 않다. 변화를 위해서 그들이 호텔로 온 것인지 아리송할 정도로 호텔 투숙객으로서 이들의 삶은 목적도 의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자유로운 듯 위태로워 보이는 일상이기에 지켜보는 입장에선 불안하기만 하다. 서로 자신이 ‘을’인 것처럼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을질’인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인지 깨려고 하는 것인지조차 아리송하다. 그렇기에 어쩌면 셋의 존재가 중요할 것이다. 그들 서로의 관계를 명확히 해줄 세 번째의 존재, 그 세 번째 인물의 위치가.


이 세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있음이 보였다. 그것을 질투나 시기 같은 것이 아니었다. 본능적인 긴장감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력한 감정. 그들은 공을 던지듯이 긴장감을 던졌다. 던지는 사람은 늘 서툴렀고 받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렇게 쉼 없이 빠른 속도로 강력한 감정들을 주고받아냈다. 던지고 싶어서 던지는 것도, 받고 싶어서 받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긴장감 안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없었던 것이다.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던지는 것이고, 어디선가 날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얼떨결에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다시…… 그러다 그렇게 주고받던 감정들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사람이 칼을 든 것이었다. 그가 들지 않았다면 누구라도 칼을 들었을 것이다.


  둘 사이에선 더 많이 이야기하는 자가 을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더 많이 지켜보고 그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렇게 알고 있음에도 더 알고 싶고 그러나 더 다가가지 못하는 어떤 관계들. 신인문학상을 받은 소설로 심사위원은 노마드적 사고, 자유로움이 소설에 가득하다고 이야기한다. 분명 끈적이지 않는 이야기다. 새로운 투숙객을 맞이하는 깔끔하게 정리된 침구류를 만진 듯한 느낌과 건조한 문체는 분명하지만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느껴지진 않았다. 씁쓸하고 쓸쓸하며 지극히 공허한 느낌이 가득한데 어쩌면 그건 타인과의 소통과 관계를 미적거리며 남긴 탓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쿨한 관계 정리가 아니라 쿨내 나 보이게 했을 뿐인 관계로 인한 미적거림. 그렇게 소통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이유로,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머물렀다는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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