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매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8
김금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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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소리 그쳤다


나의 사랑, 매기, 김금희, 현대문학, 2018.


  옛날의 금잔디 동산의 매기, 이런 서정적이고 아련한 노래를 부르면서도 머릿속엔 매운탕의 그 매기가 떠올랐다. 백발의 매기만큼이나 긴 수염을 가진 매기였다. 어릴 때란 어찌 그토록 단순하고 즉각적인 것인지 물레방아 도는 물가 어딘가에 매운탕이 되기 전의 매기를 놓았는데 생각보다 잘 섞였다. 이 책을 읽는 때에도 변하지 않았으니 여전히 두 개의 매기를 떠올리는 나는 아직도 어린 모양이다. 아니, 너무 너무 커버렸나. 재훈의 ‘나의 사랑 매기’에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했고 그 이유가 다른 무엇보다도 매기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사랑은 프라이빗한 것이지만 쇼잉이기도 하다는 것’을 재훈이 마포구 와우산로 17길에서 깨달을 때 나 역시 재훈이 매기, 매기할 때마다 어색하고 이것은 사랑일까에 관한 잡다한 생각을 했다. 재연 배우인 매기의 행동은 역할극에 빠진 듯 ‘쇼잉’에 집착하는 듯했고 그리하여 과장되게 느껴졌다. 매기가 아니라 영희, 미자, 지영, 수린…이런 이름이었다면 달랐을까. 매기로 불리지 않았다면 좀 달랐을까. 재훈의 입을 통해 그려지는 매기는 재훈의 그 사랑이 절절하다 아무리 외친다한들 통속적이게 느껴질 뿐.

  어쩜 사랑도 사랑이야기도 그렇다. 행복한 사랑이야기는 모두 비슷하지만 어딘지 불행한 사랑이야기는 구구절절하게 설명적이라는. 현재와는 달리 먼훗날에 지난 시절을 되돌아볼 때는 어김없이 애틋할 뿐인 사랑, 그 사랑의 모습.


내가 매기의 말을 기다리다가 안 되겠어서 먼저 물었다. 매기는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냥 재훈아, 먹고 싶은 것 먹고, 보고 싶은 사람 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라고만 했다. 들어보면 환자를 돌보는 사람의 특별할 것 없는 대답이었는데 나는 아주 확실히 절망했다. 매기의 대답에는 말의 진기랄까, 온도랄까, 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사라지고 있는 중인지도 몰라서 나는 용기를 내서, 그러고 있잖아, 라고 답했다.


  사랑을 타인에게 ‘쇼잉’하지 못하는 그들의 사랑은 사랑일까. 14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매기와의 사랑이 마무리될 수밖에 없는가를 이 소설은 이야기한다. 14년만에 재회해 사랑속으로 ‘툭툭 떨어져 내린‘ 둘의 관계는 쇼잉하지 못하기에 위태롭다. 그 옛날에는 미숙함에 어긋나기만 했다면 지금 재훈이 돌아서야 하는 이유는 넘치는 그 사랑을 ’쇼잉‘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재훈은 “동산 수풀은 사라지듯 옛날의 노래로서”만 매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재훈은 닭기름 냄새가 올라오는 2층집에서의 매기와의 섹스를 그 닭튀김이 주는 친숙함에 아주 자연스럽고 무해하게 생각한다.


매기 역시 내가 보지 못하는 어느 영역에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장바구니 위로 어느 푸성귀의 푸른 잎이 보일 때마다, 비닐봉지를 묵직하게 누르는 야채의 부피감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심지어 당근도 자기 삶을 감당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절은 기름 냄새를 맡으며 재훈과 매기가 닭집 2층에 있어야 했던 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더 컸다. 그 “아주 위험하고 격정적이며―여러 의미에서―파괴의 행위를 하고 있는” 재훈과 매기의 사랑은 “옛날의 금잔디 동산의 매기”로만 불려질 거다. 재훈은 그것을 안다. 쇼잉이라는 영어 단어로 뭔가 달라 보이고 있어 보이게 위장되었을 뿐 정확히 말해 불륜인 그들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랑이라 말할 수 없고 남들에게 보일 수 없고 손잡고 거리를 활보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묵직한 무게의 당근을 통해 현실을 인식하며 매기의 추억으로 소환하고 더 이상의 관계는 없음을 이야기하는 소설, 이 지극히 ‘프라이빗’한 이야기는 모든 쇼잉하지 못하는 사랑 이야기가 나아가는 결론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언제나 전혀 프라이빗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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