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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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을 잡아


진이, 지니, 정유정, 은행나무, 2019.


  포털 메인 사진기사엔 뱀이 가득한 흙탕물에 선 인간에게 오랑우탄이 손을 내밀고 있다. 사진을 찍은 작가의 인상처럼 ‘내 손을 잡아’ ‘도와줄까?’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사진 속 인물은 오랑우탄의 손을 잡진 않았다고 한다. 그 손을 잡았다면 이후의 사진은 어떻게 찍혔을지.

  며칠 전에는 ‘원숭이가 구석기 시대 돌입하다’라는 과학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3천년전부터 돌을 도구로, 뗀석기로 이용하고 있긴 했지만 점점 보다 더 정교하게 만들고 있다고. 이렇게 학습하고 전수하며 지금보다 문명화되어 갈지 모른다. 마치 인류가 구석기 시대 그러했던 것처럼.

  원숭이,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 오랑우탄… 그 특징을 명확히 구별하지 못하고 통칭하여 원숭이류로 분류하는 이 종들은 인간과 유사점이 많다. 분명 지적인 면에서 인간과 비교될 수 없을 텐데 가끔 이러한 동물이 인간보다 낫다 생각될 때가 있다. 인간에 대한 실망에서 오는 작용일 것이다. 퍼져가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초기 상황 때에도 이런 위급한 상황에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 혹에 어떤 어떤 인간들의 모습 때문에도 더욱 더. 그래서 감정적인 부분이야 헤아릴 수 없겠지만 보편적 정서는 같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런 동물들의 행동에 감정이 끌려지게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결론은 구달 박사가 침팬지 연구에 그렇게 매진을 하고 있나 보다, 정유정 작가의 『진이, 지니』의 판타지가 판타지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두 인물은 김민주와 사육사 ‘진이’다. 그리고 보노보 지니가 있다. 영장류 연구자가 되기 위한 오랜 노력을 포기하고 사육사로 일해 온 진이의 마지막 출근날,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보노보 구출작업에 투입된 진이가 보노보를 구출하고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나는 늘 그래왔듯 내 영혼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건너서 버스 승강장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넋 나간 사람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서서 길 건너 병원 앞마당을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내 문제는 사소하게 느껴졌다. 작아서 사소한 게 아니라 멀어져서 사소해진 경우였다.


  삶에 무력하고 의지없는 주인공의 등장으로 세상만사가 느리고 질서없이 흘러갈 듯하지만 스릴러를 전개해온 작가의 문장답게 속도감이 있다. 정유정 작가의 그동안의 작품과는 결이 너무 달랐던 소설이지만 그 세밀한, 리얼리티는 사라지지 않았다. 분명 이 소설은 맹백한 판타지임에도 상황과 심리를 묘사하는 작가의 정교함에 휘둘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보노보가 등장하는, 영혼의 바뀜이 일어나는 이 소설이 말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진이’라는 사육사가 처한 상황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기보다는 진이가 품어가는 생각과 감정이 현실적이었다는 말이 맞을 듯하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물들여져 간 게 맞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또한번 놀란다. 이 이야기가 사흘간 펼쳐진 일이니까 말이다.

  그 많은 시간 동안 해결치 못한 삶의 태도가 주인공들이 겪는 이런 사건을 맞닥뜨린다면 사흘 안에 달라지리란 건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터닝포인트, 외부에서 가해지는 충격의 발생, 쿵! 쾅! 하지만 내면에서 쌓아올린 그 무수한 생각과 감정이 없었다면 한번의 충격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변화란 그저 보여지는 것만일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 변화란, 그동안 품고 있던 내면의 트라우마를 끄집어내어 그것과 맞닥뜨리고 해소하는 것일 테니 비로소 ‘나’로서의 삶을 살아갈 여정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내게 삶이 죽음의 반대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다. 내게 허락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르쳤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가진 자에게 내려진 운명의 명령이었다.


  소설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지만 그와 더불어 진행되는 건 트라우마다. 죄책감 또는 책임이라는 무게. 제 삶에 대해서, 타인의 삶에 대해, 이 세상 모든 생물의 삶이라는 실존에 대해. 소설은 ‘살아 있는 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말한다. 삶에 무척이나 무력한 이의 입에서 나오는 이 말의 무게는 소설이 전개되어 나가면서 달라진다. 당연 그럴 것이다. 작가가 전력을 다해 말하고픈 바가 그것일 테니까.

  오랑우탄이 손을 내민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오랑우탄의 손을 잡지 않았다. 물론 진이 또한 지니를 만나기 전 위급한 상황의 보노보에게 손을 내밀지 못했다. 어쩌면 그 기억이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까, 그 시간을 되돌리고픈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 그런 이야기지만 소설을 덮는 시점엔 진이와 지니가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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