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 오늘의 젊은 작가 8
김엄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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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인간


주말, 출근, 산책:어두움과 비, 김엄지, 현대문학, 2015.


  a, b, c…… E… 나를 가리키는 알파벳은 무얼까.

  제목처럼 이 책은 일요일 늦은 밤 그리고 월요일 새벽이면 더욱 당기는 글일 것이다.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순간의 기분들을 휘갈겨 쓴 낙서의 향연. 그리하여 소설의 서사는 희미하고 단어와 이미지가 남는다. 너무나 익숙하고 떼내고 싶은 이미지다. 반복적인 패턴에서 멈춘다면 그건 a처럼 실종이란 이름을 달았을 때가 될 것이다.

  소설을 보고 있자면 지극히 단순한 패턴의 인간을 만난다.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며 스스로를 가치화하는 인간이 가진 아주 단순한 욕구만이 살아남아 움직이는 모습을 짧은 문장 속에서 보고 있으면 아득하고 허무하다. 중요한 요인은 출근하는 인간이다. 거의 모든 직장인이 ‘출근’이란 단어에 느낄 법한 감정이 여기에 담겼다. 출근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주말이란 출근을 더욱 힘겹게 만드는 요소에 다름 아니다. 출근을 위한 소모적인 도구로서의 주말. 그리하여 주말은 기다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극도로 싫어지기도 한다. 소설에서 느끼는 공감은 작가가 가리키는 것에 있을까. 그저 ‘출근’이라는 단어가 일으키는 환기에 있을까.

  E는 평일엔 먹고 자고 출근하고 주말이면 밀린 빨래를 하고 밀린 잠을 자고 TV를 본다. 때로 누군가를 만나 섹스를 하고 때때로 동료들과 어울린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충실한 채 살고 있다. E의 일상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런 만큼 E의 머릿속도 깔끔하다면 참으로 좋으련만. 주인공은 E이지만 소문자로 나열된 a, b, c 그들에게 클로즈업 한다면 역시 E와 같을 것이다. 그렇게 같지 않지만 결국 똑같이 패턴화된 a=b=c=E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지리멸렬과 권태의 세상이 무력감이 더욱 짙어진다.


암전.

설정만을 보여 주고 암전.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고 다시 암전.

암전.

암전은 무대 위의 유일한 개연성이었다.

무대 위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벌어지고, 벌어졌다. 무대 위에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무책임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직장인으로서 가장 서글플 때는 주말이 지나 출근을 해야 할 때가 아니다. 아마도 밤낮없이 일에 매달리며 나름 성취감을 얻고 동료와의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그곳에서 한발짝 뒤로 물러나 있을 때 아니 그렇지 않고 그 정점에 있더라도 내가, 소모품이라고 느껴지는 때다. 그런 느낌을 안고서 매일 매일 일정한 시간에 그곳으로 찾아 들어갈 때.

   이 파편적인 서사의 소설이 휘갈긴 낙서같은 글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은 그것이다.  a, b, c 그 모두가 실종되더라도 아무런 변화도 없을 그곳을 찾아가는 수많은 E들이 있다. 미치도록 불안하고 미치도록 미칠 것 같으면서도 그것을 끊어버리지 못하는 이들이 돌고 돌고 있다. 주말이 지났고 출근하고 때때로 비가 오고 때때로 산책을 하고 한없는 일상의 쳇바퀴를 끊을 마법의 단어. 그것은 무얼까.

  출근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참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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