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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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지켜보고 있다


새벽의 방문자들, 2019.


  여성의 방을 훔쳐보기 위해 엉덩이를 치켜들고 지독히도 낮은 자세로 창문 밖에 엎드리고 있는 남성의 모습은 CCTV에 정확히 찍혀 있다. 3달간 이어진 이 남성의 행위는 재판이 아니라 경찰 조사 단계에서 무죄, 혐의 없음으로 수사 종결되었다. 피해자는 보복당할 것이 두려워 이사한다. 여학생을 뒤쫓아 현관 비밀번호를 마구 누른 남성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새벽, 여성을 뒤따라가 여성의 집 안으로 침입하려는 남성의 기사는 어제도, 그제도, 그그제도 나타나 같은 사건인가 생각하게 한다. 워낙 주거 획일성이 높은 나라이니 아파트 동과 호수, 때론 층을 착각하는 일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거침입 범죄 건수가 지난 한해 만4천여 건이라는 기사를 보게 되면, 한밤이나 새벽이면 여성을 뒤쫓아 가 강제로 문을 열려는 수많은 남성이 등장하는 CCTV 장면을 보게 되면, 당연 생각은 달라진다. 아니, 기저에 있던 감정들이 거침없이 올라온다. 안타깝게도 그들에 대한 ‘욕’보다도 더 빨리 퍼져가는 불안과 공포.

  페미니즘을 테마로 한 이 소설집은 일상에서 겪게 되는 불안과 공포의 순간, 불쾌하고 모멸적인 순간, 너무나 흔하게 마주해서 피해에 익숙해진 순간들을 그리고 있다. 특히 표제작과 같은 「새벽의 방문자들」엔 새벽,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들로 인해 두려워하는 여성의 심리가 잘 나타나 있다. 아무도 찾아올 이 없는 새로 이사 온 집에 한밤중 초인종 소리가 계속 울릴 때, 비디오 폰을 통해 방문자를 확인할 수 없다 해도 확인할 수 있는 상태라도 불확실한 방문자로 인한 두려움, 불안과 공포의 감정에 그곳에 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숨죽일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여자’ 역시 자신과는 일면도 없는 끊임없는 방문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숨을 참는다. 그러다 ‘여자’는 마침내 알게 된다. 끝없이 수많은 남자들이 등장하는 이유를, 그들이 왜 ‘여자’ 집 초인종을 눌러대고 문을 두들기고 열려하고 얼굴을 들이박으며 서성이는지를.


새벽의 방문자들은 잊을 만하면 한번씩 찾아왔다. 여자는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비디오 폰에 달린 모니터로 남자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별일 아니라고 주문을 거는 듯한 태연함, 남에게 들키기 싫은 일을 할 때의 부끄러움, 돌연 술이 확 깨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의 주저함, 그러면서도 어쨌든 곧 벌어지게 될 눈먼 섹스에 대한 설렘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얼굴들. 머뭇거리는 그들의 얼굴이 비디오 폰의 카메라에 정면으로 잡히는 순간, 여자는 휴대폰 카메라로 모니터를 촬영했다. 그들이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리고 나면 찍어둔 사진을 프린트했다. 


  도심 오피스텔이 성매매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최근 몇몇 일당들이 잡혔다고 하는데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오피스텔 수는 어마어마하다. 문제는 이들 말고도 또다른 일당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옆집이 윗집이 아랫집 어느 곳이 현실의 그런 공간일지 모른다. 그런 공간을 활용하는 이들로 인해 혹은 그 이상의 이들로 인해 ‘여자’는 늘 불안하고 자유롭지 못하다. ‘여자’를 성적 대상화하며 보고 즐기고 착취하려는 끊이지 않는 방문자들의 존재. 감추려고도 하지 않으며 비밀스럽고 은밀하지도 않게 진행되기도 하는 노골적인 이 행위의 기저엔 무엇이 있는 건가.   

  소설에서 ‘여자’는 문 안에서 비디오폰을 통해 남성을 보지만 문 밖의 남성은 여성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남성의 그 시선을 두려워하는 ‘여자’의 위치는 남성들을 ‘쳐다보는’ ‘촬영하는’ 위치로 바뀐다. 오래 짓눌린 감정 때문에  시선의 위치가 변한 것만으로도 감정이 들뜬다. 사뭇 통쾌하지만 그건 한순간이다. 현실에서 이렇게 대응할 수 있을까. 온갖 감정과 생각들이 스쳐간다. 소설집에서 가장 전복적 행위를 펼치는 건 김현진의 「누구세요?」다.


 면밀하고도 냉정히 머리를 굴리다가 다시 나는 흠칫, 놀란다. 아니 ,당신, 아가씨. 댁은 도대체 누구세요? 내 안에 지금 계신 분, 누구예요? 누구냐고요. 우리 오늘 처음 만나는 것 같은데, 애기 좀 해요. 나는 팬티를 벗어 세탁기에 던진다. 저 팬티는, 내 팬티가 아니다. 그럼 ,누구 팬티야?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낯모르는 사람만이 아니라 결혼을 앞둔 애인과의 관계에서도 여성의 불안과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세요?」에서 지윤은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당하고 사표를 내지만 성추행 그깟것은 참으라고, 그따위로 사표를 낸다고 화를 내는 재영과 헤어진다. 이미 지윤은 그동안 벌어놓은 것을 재영에게 착취당한 뒤다. 계획하고 꿈꾸던 미래는 사라지고 월세 독촉에 시달리는 현재에 있는 지윤은 자신도 놀랄 만큼 스스로가 누구인지 모를 상태가 된다. 그녀가 옆집 문을 열고 들어가 그집에서 행한 행위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충격적인 것이었지만 ‘그’라는 이가 행할 때면 그저 익숙한 일상의 풍경이 된다.

  지윤이 서 있는 남성에 대한 전복적 위치는 잠시의 통쾌함도 주지 못한다. 쓸쓸하고 아릴뿐이다. 피해자가 되어도 피해자일 수 없는, 남성들의 성적 대상으로서 위치하는 여성이 이 굴레를 끊어낼 방법이란 자신을 잃지 않고는 없는 것인가. 지윤의 남성을 향한 미러링이 참담함을 자아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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