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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지음, 이희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렉스 플라메
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2010.
요즈음 보고서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기록, 증언이 가진 힘과 오랜 시간 동안 비밀유지가 되는 힘이 무엇인지 그런 것들. 거짓이 조작이 공작이 어떻게 형성되어 뻗어나가는지 진실을 감추기 위한 카르텔이 얼마나 공고한지 그런 것들을.
브로덱의 보고서는 어떤 보고서일까. 예상 가능하기도 하다. 일종의 진술서 같은 것이리라. 소설은 왜 보고서를 써야 하는가에 대한 브로덱 자신의 질문이 있다. 왜 ‘브로덱’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브로덱이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드러내지 않으려는 속뜻은 따로 있다. 내용과 더불어 보고서를 쓰는 자, 브로덱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소설을 통해 또 하나의 단어를 배운다. 안더러. 그리고 에라이그니스. 전쟁이 끝난 마을, 전쟁은 끝났지만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전쟁 이전의 상황일 수 없는 마을에 낯선 이가 나타난다. 낯선 이를 부르는 말은 매우 많은데 ‘안더러’는 그 중 하나다. 타인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안더러’를 불편해한다. 이 낯선 자, 이방인은 여인숙에 머물며 그저 그림을 그리고 전시하려 할 뿐이지만 죽는다. 이 형용할 수 없는, 이상야릇하고 안개로 휩싸인 일, ‘에라이그니스’에 대한 일을 밝히고 기록하는 것이 브로덱의 일이다.
내 이름은 브로덱이고 그 일과 무관하다.
이 말만큼은 꼭 하고 싶다. 모두들 알아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브로덱의 보고서는 아니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 일’과는 무관한 브로덱의 어조가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브로덱이 전혀 무관한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주게 한다. 안더러의 이야기 위에 홀로코스트가 겹친다. 브로덱은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자’이다. 그곳은 “아주 먼 곳, 인간다움이 모두 사라진 곳, 겉모습만 인간이고 의식이 없는 짐승들만 머무는 곳”이었고 브로덱은 그 시기를 암흑으로 가득한, 검은 구렁이라고 칭하며 아직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이 브로덱이 살아 돌아올 것이라 생각지 않은,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브로덱은 말 그대로 ‘똥개’가 되었다.
왜 마을 사람들은 브로덱이 살아돌아온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안더러를 불편하게 여기는가. 단지 그들이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는 너무도 쉬운 대답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대답일 수도 있겠다. 브로덱은 그곳에서 살아 왔지만 처음부터 그곳에 있던 존재가 아니다. 전쟁은 특히 사람을 구분짓기 좋아한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만을, 내 가족만을 생각하고 내 영역을 고집하고 그리고 나머지로 만들어 버리는 것, 세밀하게 타인을 나누어 버리는 일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모든 역사는 보여주었다. 브로덱이 나머지였다. 안더러였다.
마을이 점령당한 상황에서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은 이유로 고발당한 브로덱은 자신을 수용소로 끌려가게 한 마을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곳에 그가 사랑하는 이가 있고 그곳이 그가 살아가는 곳이었으니. 수용소에 있는 동안 마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지 그리고 그의 아내가 어떤 고통을 당하게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어떻게든. 그렇기에 마을 사람들은 브로덱이 살아오지 않기를 바랐고… 안더러는 그의 그림이 마을이 가지고 있던 비밀을 보여주고 있어 두렵고 위태로웠다.
죄지은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죄가 없다는 것은 무고한 사람들 가운데 유일한 죄인과 결국 똑같다는 것을 알았다.
이 말이 담고 있는 엄청난 무게, 이 말이 가리키는 것이 세상이 이렇게, 나쁜 일들은 벌어지고 진실은 감춰지는 이유가 아닐까. 그렇다면 왜 마을 사람들은 브로덱에게 여인숙에서 벌어진 사건을 안더러의 일을 기록하도록 했을까는 의문이 생긴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행한 일을 감추고 싶어한다. 그들의 죄를 아는 이가 있는 것은 그들에게 불편함을 넘어 두려움을 주는 일이다. 그런데도 굳이, 브로덱을 지목해 그 글을 쓰라고 하는 것은… 5.11 연구회를 조직해 5.18의 진실을 은폐‧조작‧왜곡해온 전두환 반군부처럼 ‘조작된 진실’을 원하는 것일까. 그리하여 브로덱은 사건의 진실에서 떨어진 글을 쓰는 것일까, 그렇기에 브로덱은 다른 버전의 보고서를 준비하고 이것은 그것일까.
사람들은 이상해. 별 생각 없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짓을 저지르지. 그런데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기억을 안고서는 계속 살아갈 수가 없는 거야. 내다 버려야 하지. 그럼 나를 만나러 와. 왜냐하면 그들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걸 알거든. 그래서 나한테 다 얘기하지. 나는 하수구야, 브로덱. 나는 신부가 아니라 인간 하수구야. 사람들이 편해지려고, 가벼워지려고 자기들의 온갖 피고름과 쓰레기를 내다 부을 수 있는 뇌를 가진 인간. 그러고 나서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 버려. 새 사람이 되어서. 깨끗해져서.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서. 그들이 털어놓은 것에 대해 하수구가 입을 다물고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거든.
어쩌면 브로덱의 보고서가 필요한 절실한 이유는 이 말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이유로 쓰여져 있기만 하면 그 용도가 다하는 보고서는 마을의 시장에 의해 불에 태워진다. 수용소 생활을 거치며 삶과 인간, 인간의 본성에 관한 수많은 생각을 거듭할 수 있었던 브로덱에게는 어떤 보고서가 필요할까. 덤덤하게 마음을 아리게 하는 문체로 써 내려간 브로덱의 보고서는 인간에 관한 통찰이 담겨 있는 생생한 경험담이 된다. 브로덱이 경험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그런 일들을 저지른―“괴물이 아니라 농부이고 장인이며 소작농, 산림감독, 하급공무원들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또한 괴물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그들을 묶어 주는 동시에 그들을 초월하는 집단, 비슷비슷하게 생긴 수천의 얼굴들로 이루어진 집단 속에 녹아들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인간이 어떤 짓거리를 하는지 나는 보았다. 모든 잘못은 그들을 끌어들이고 부추기고 그들을 발 없는 도마뱀처럼 춤추도록 지휘봉을 흔든 사람에게 있으며 군중은 스스로의 행동과 미래와 궤적에 대해 의식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다. 실은, 군중 그 자체가 괴물이다.
마을 사람들은 안더러의 본명을 모른다. 그들은 마을을 찾아온 자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으니 모두 이방인을 부르는 명칭들은 실로 다양했기 때문이다. 안더러는 명확히 우리와는 달랐다고 했지만 브로덱은 안더러를 ‘나 같다’고 느낀다. 타인을 타자화시키는 것은 명명에서 시작됨을 또한번 생각하게 된다. 괴물같지 않으면서 괴물인 사람들의 일상성이 아주 아리게 느껴진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렉스 플라메와 같다.
렉스 플라메는 다른 종류의 나비들이 그들 중에 끼어드는 것을 묵인합니다. 그런데 침략자가 나타나면 렉스 플라메들은 알 수 없는 언어를 이용해 서로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깁니다. 결국 그들 집안에 끼어든 나비들은 그런 정보를 얻지 못했으므로 새에게 먹히게 되지요. 렉스 플라메가 침략자에게 희생물을 바침으로써 자신들의 생존을 보장받는 셈입니다. 아무 문제도 없고 만사가 순조로울 때는 자기네 집단과 다른 종의 나비가 한 마리 혹은 여러 마리 함께 있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저런 방법으로 그들을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위험이 닥치면 본연으로 돌아가 살아남기 위해 자기 집단이 아닌 것들을 아무런 주저없이 희생시킵니다.
그곳에 끼어든 안더러와 브로덱은 희생당한 나비이지만 각각 그림과 글로써 진실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림은 찢겨지고 브로덱의 보고서 또한 불에 타버리지만 브로덱의 보고서가 있다는 것을 안다. 집단의 광기에 진실이 묻혀버리지 않을 수 있는 힘에 대해 생각한다. 그럴 수 있는 인간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브로덱이 희생자이자 타자인 브로덱이 진실을 담은 보고서를 써갈 수 있는, 그것을 알릴 수 있는 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브로덱이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방법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브로덱의 보고서는 안더러 사건, 마을 사람들이 한 일에 대한 증언이자 브로덱 자신이 한 일, 삶에 대한 회고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록이란 글이란 사람이 사람을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브로덱은 소설의 처음과 끝에 같은 말을 한다. ‘내 이름은 브로덱이다’라고. 마지막에 거듭 당부한다. ‘내 이름은 브로덱, 브로덱, 잊지 말아달라고.’ 안더러는 이름 없이 ‘타인’으로 ‘이방인’으로 남아 사라진다. 렉스 플라메의 본성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렉스 플라메의 집단적 광기로 살아가지 않는 방법은 개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일이라는 것을 작가는 기억하라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