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기억의 그 이후

오직 두 사람, 김영하, 문학동네, 2017-05-25.


  어떤 기억은 감각에 의해서도 강화된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속에 음악이 삽입될 때 장면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느낌 감각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전혀 손을 대지 않고도 손에 무언가를 쥐었다가 놓친 듯한 감각을 느끼고 있다. 소설 속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내 손을 스르륵 빠져나가는 그 무엇. 어쩌면 책을 덮고 나서 그 감각 때문에 「아이를 찾습니다」의 장면장면을 되새김질하게 된다. 아주 부주의하게 아이가 놓은 카트를 손에서 놓친 부모, 세 살 때 유괴된 성민의 부모가 겪는 일들은 익숙하게 흘러가지만 다시 성민을 찾은 이후의 삶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의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전자가 같다는 이유로 마음이 합일되는 것은 기막힌 환상일 것이라고. 더구나 아이는 어딘가에 나의 친부모가 살아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만큼 학대받는 삶이 아니었으니까. 윤석은 마트에서 카트를 놓친 때부터 “행복 그 비슷한 무엇을 잠깐이라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 없다. 하지만 성민을 다시 찾은 이후의 삶 역시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저는 생각했어요.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에 대해서요. 이제 그만 화해하지 그래, 라고 참견할 사람도 없는 외로움.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말다툼. 만약 제가 사용하는 언어의 사용자가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면 말을 조심해야겠어요. 수십 년 동안 언어의 독방에 갇힐 수도 있을 테니까. 그치만 사소한 언쟁조차 할 수 없는 모국어라니, 그게 웬 사치품이에요? ―「오직 두 사람」


  작가는 아빠와 딸의 관계를 오직 두 사람만 남은 희귀언어사용자로 풀어낸다. 어린 현주에게 아빠는 우상이었고 그런 만큼 보이지 않는 편애가 존재했기에 다른 가족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아버지에게 조종된 삶을 살던 딸이 점차 그 관계의 불편을 느끼며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혼자 남은, 병든 아버지에게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는 감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범죄자와 작가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은밀히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계획이 뻔하면 덜미를 잡힌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때로는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다는 점도 그렇지. 이 아파트에서 내가 쓰고 있던 소설은 정해진 플롯이라고는 없는 중구난방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었다. 반면 사장의 음모는 아주 짜임새 있는,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저급한 추리소설의 냄새를 풍긴다. 그런데도 승자는 사장이라니. 이것은 혹시 잘 짜인 플롯이 결국에는 중구난방 요령부득의 서사를 이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 「옥수수와 나」


  이상문학상 수상작 「옥수수와 나」는 소설가인 주인공을 통해 작가와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다. 김영하 스타일에 맞춤한 작품이란 느낌이다. 위트와 아이러니가 절절하게 넘치는. 「인생의 원점」또한 그것이 가득한 작품이다. 인생의 원점 또는 변곡점에 대한 관념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매우 ‘실질적’인 경험을 제공하게 해준다. 서진이 마침내 느낀 것처럼, 

“인생의 원점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 그런 정신적 사치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 그게 진짜 중요한 거야.”

  「오직 두 사람」의 현주는 말한다. 이제 유일한 희귀언어사용자가 되었기에 허전하고 쓸쓸할 것 같다고 말이다. 책을 읽은 후에 희귀언어사용자가 마지막 남긴 글을 읽은 듯이 허전하고 쓸쓸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김영하 작가가 곳곳에 위트와 아이러니를 남기는 스타일임에도 이런 감정이 드는 것, 기억은 스타일이 아니라 메시지를 붙잡고 있나 보다 싶다.

  김영하 작가는 그만의 독특한 세계, 설정을 더한 글과 더불어 방송을 통해 더욱 더 작가의 ‘브랜드’를 높여가고 있다. 출간하는 책마다, 한마디 말에도 그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책을 읽은 후 이 공허함을 견디는 일은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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