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곳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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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부사가 가리키는 것


내가 있는 곳, 줌파 라히리,  마음산책, 2019.


  분명 나는 소설 카테고리에서 이 책을 본 것으로 안다. 책을 펼쳐 든 순간 당황한다. 아니었나? 에세이였던가. 줌파 라히리의 5년 만의 신작소설이란 글귀를 발견한다. 뭔가 마음에서 벅차오르는 감정이 사그라든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좋아한 만큼 소설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사실을 최대한 뺀다 하더라도 이 신작소설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요즘 몇몇의 작가들에게서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경계의 ‘소설’이 출간되곤 하지만.

  몇 년 전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에 살며 이탈리아어를 배우며 글을 쓴다고 했고 실제 그에 관한 글을 써서 출간한다. 작가의 도전에 응원을 보내지만 독자로서의 나는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다. 아니 그것은 글을 읽은 후에 느끼는 감정이니 오히려 더 알싸한 기분이 든다.

  신작소설 <내가 있는 곳>에 대한 느낌, 작가의 ‘장소부사를 사용한 글짓기’를 읽는 느낌이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수업에서 선생님이 내어주신 글짓기 숙제. 나는 한글로 번역된 글을 읽는 것이므로 그것이 이탈리아어로 쓰여 있는지 영어로 쓰여 있는지 인도어로 쓰여 있는지에 대해 모른다. 그 글이 쓰여진 언어의 수준에 대해서도 가늠하지 못한다. 때론 그것 자체에 대한 감상이나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기댄 수준으로 평가를 하게 된다. 이 글이 줌파 라히리의 작품이 아니라면, 이탈리아 소설로 쓰여진 어느 무명작가의 첫 번째 글이라면, 산문이라면. 그렇다면 이 글을 보는 내 눈은 마음은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줌파 라히리의 작품이라고 하기에 선택했고 그렇기에 실망한다는 점이다.

  줌파 라히리를 지운다면, 작가의 이름을 지운다면 이 소설에 대해서 느끼는 건 무얼까. 어느 도시에서 도시를 형성하는 모든 장소에서 일상의 느낌을 풀어쓴 잔잔한 언어. 담백한 언어로 쓰여진 글. 때론 많은 이들의 일기장에 담담히 적혀져 있을 문구들….


방향 잃은, 길 잃은, 당황한, 어긋난, 표류하는, 혼란스러운, 어지러운, 허둥지둥 대는, 뿌리 뽑힌, 갈팡질팡하는.


이런 단어의 관계 속에 나는 다시 처했다. 바로 이곳이 내가 사는 곳, 날 세상에 내려놓는 말들이다.


  삶이란 일상 속에서 느끼는 모든 혼란과 방황의 감정들을 지우고 채우고 느끼며 나만의 언어로 재해석하며 의미를 채워가는 것이다. 한 여인이 성장하는 동안 가족간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에서 느끼는 외롭고 쓸쓸한 감정과 기억은 장소를 불문하고 나타난다. 까페, 침대, 빌라, 바다와 같은 물리적 장소를 넘어 마음이라는 내면의 장소에서는 언제나 들쑤시는 것이다. 마침내 어디에서든, 아무 데서든 기억과 감정은 생겨나고 그것이 살아가는 이의 숙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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