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내 삶의 터닝 포인트 -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후
변화경영연구소 지음 / 유심(USIM)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대의 똥덩어리 위에


구본형, 내 삶의 터닝 포인트-‘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 후


  공자가 집 앞으로 이사를 왔다. 그 앞으로 달려가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 애쓰며 제자이고 싶다고 간절히 애원하는 내가 될 수 있을까. 한때는 스승의 날이면 딱히 찾아가고픈 이가 없음에서 오는 허전함이 있었다. 뭔가 기막힌 운명에 방점을 두었기에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주어진 관계엔 운명이라 하길 거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니다, 라는 결론을 맺고 안심한다. 공자는 나의 취향이 아니라 궁합이 맞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 것이 예의와 존경이라는 데 의문을 표하는 바이니 말이다. 예의란 좋은 말임에도 관계에 진전을 더디게 하는 항상 일정한 거리를 설정시키는 공신이다. 그 공신이 미치는 힘이 내 인생에 얼마나 강했던가를 생각하고 있노라니 이 책 속 열두 명이 공신을 어떻게 다루며 스승을 만들어 갔는지, 관계를 맺어갔는지, 인생을 나아갔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죽은 거나 진배없었지만 내 발목을 내어주는 대신 나는 살게 됐다. 떨어져 죽었어야 할 나를, 내 발목이, 자신을 27조각 내며 살려냈다. 산신이 바스러진 발목을 차가운 수술대에 올렸다. 의사는 절단이라는 말을 무덤덤하게 뱉어냈다.


  스승에 대해 말하기 전 제자들은 그들의 지난 삶을 얘기한다. 그 면면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의 ‘나’가 아닌 ‘고호’다. 방황과 절망과 실패의 날들이 지속되며 피폐해지고 자존감을 잃어가고 의미와 목표를 상실한 삶, 그저 분주하기만 한 삶, 공허함에 허우적이는 삶이었다고 말한다.


삶은 구석에 내팽개쳐진 목발처럼 초라했고 짝다리로 서서, 똑바로 선 모든 것들을 경멸했다. 절망이 지배했고 냉소와 비관으로 세상은 가득 찼다. 그때 스승을 만났다.


  그때 스승을 만나 그들이 변했다고 말한다. 당연, 그래서 그 변화를 이끌어 주는 스승의 가르침을 요약판으로 알려주는 것이 이 책이라 기대하면 안된다. 무엇보다 그리하여 그들이 변했다는 말도 적절치 않은 듯하다. 그들은 계속 변하고 있었다. 변화의 속도를, 방향을 제 마음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그들은 항상 변화에 있었다. 상황의 변화를 기회로 디딤으로 삼아 인식의 전환을 이루는 걸 알지 못했을 뿐. 그들이 자신의 변화의 조종자가 될 수 있게끔 해준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의 존재는 강렬한 영웅으로 묘사되진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강렬한 카리스마로 단번에 모든 상황을 해결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런 소리를 기억에 남긴다.


자리를 잡고 무념에 빠져 있던 그때 누군가 내 옆 칸에 앉는다. 바지 벗어제끼는 소리가 조신하게 들렸다. 나는 혼자 눈을 크게 떴다. 움직이지 않았다. 작전상 상황 종료 시까지 음소거를 유지하기로 한다. 괄약근을 힘껏 조여 나오려는 모든 것들을 중단시켰다. 숨을 멎게 했다가 가늘게 내쉬며 숨소리조차 가라앉혔다.

그는 화장실에 앉아 시를 읊었다. 어떤 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읽어 내리는 것인지 외워서 읊조리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시를 듣지 않고 그의 멋진 목소리만 들었다. 그리고 이따금 무언가가 물에 빠지는 소리와 굽이굽이 스승의 장기를 빠져나온 가스 소리를 들었다. 귀를 쫑긋 세웠다. 소리들이 만연한 가운데에서도 그는 시를 멈추지 않았다.


  왜인지 나는 붐빈 화장실을 피해 들어간 공용화장실에서 스승의 배설의 전과정을 몰입하여 듣고 있는 제자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참으로 자연스러운 상황이지만 어쩐지 기묘하고 난감한 상황에서 노동요(?)처럼 흐르는 스승의 시낭송 속으로 빠져들어간 것처럼 다른 제자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같은 자세로 귀기울이고 있는 열 두명의 제자를 떠올리며 쓸데없이 파안대소한다. 그때 스승이 외우고 있던 시가 최영철의 「아직도 아직도 쭈구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였으면 아주 좋았을 거라 생각하면서….


누가 쏟아놓은 것인지도 모르는 똥덩어리 위에

또다시 자신의 똥을 내려놓으며

아직도 하나가 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 최영철, <아직도 쭈구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 中 -

 

  그들 삶에서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고 알아가도록 스승은 온몸을 다해 말해주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궁합과 타이밍의 조화다. 힘들어 죽겠다 말하면서도 그들은 스승으로서 구본형을 선택했다. 이 책은 스승이란 주어지는 것도 내게 무엇을 해주는 것도 아니라 함께 무엇을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스승의 가르침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상호과정을 통해 공감과 공명의 울림임을 보게 된다. 스승이 보여주는 삶의 태도, 꿈을 그려가는 방법이 가슴으로 인식되고 머리로 이해되어 손발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기에 각각의 삶의 태도와 방향을 깨우쳐가는 과정들이 책속에 담겼다. 각각의 지난한 여정들 속에서 변화해가는 그들 자신에 대한 인식이 뭉클하게 전해진다. 제자들의 이야기는 한순간에 일궈지지 않았고 삶의 변화 또한 완결되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만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