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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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되지 않는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문학동네.


  크로스비 마을은 올리브로 인해 가상의 바닷가 마을에서 다양한 색채를 띤 정감어린 실제의 마을로 느껴진다.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 주인공 올리브 키터리지. 작가의 이름만큼이나 낯설던 올리브는 배우고파 지는 수학 선생님으로 그녀의 거구가 얼마만큼인지 옆에 서보고픈 충동을 일으키는 존재로, 마주치면 눈흘기게 되는 동네 아주머니로, 그럼에도 늘 옆에서 같이 얘기를 나누고픈 사이로 자리한다.

  열 세편의 단편소설에서 올리브 키터리지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젊은 날, 중년의, 노년의 올리브가 타인의 삶 속에 등장해 그들의 삶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수많은 인생들이 그러하듯이. 삶은 각자의 인생에서 주연이고 타인의 삶에서는 조연이지만 어느 순간에나 같은 속도로 흘러가고 있으며 결코 별일없이 흘러가지 않을 감정을 안겨준다. 그 같은 속도의 흐름을 깊이 있는 감정으로 채어 놓는 작가의 글은 참으로 매혹적이다. 이런 올리브 스타일의 아줌마가 동네에 있다면 성가실 것 같은데도 말이다.


올리브 역시 그녀만의 슬픔을 견디며 살아왔다. 오래전에, 그러니까 짐 오케이시의 차가 도로를 벗어난 후에, 그리고 올리브가 몇 주 동안이나 저녁만 먹고 나면 바로 침실로 들어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통곡한 후에야 헨리는 올리브가 짐 오케이시를 사랑했으며, 어쩌면 짐도 그녀를 사랑했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헨리는 한 번도 올리브에게 묻지 않았고, 그녀도 헨리에게 말하지 않았다. 데니즈를 향한 아프도록 절실한 감정에 대해 그가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어느 날, 데니즈가 다가와 제리의 청혼에 대해 알렸고 그는 말했다. “가.” - [약국]


  신기하게도 올리브도 남편 헨리도 각자의 마음속에 잊지 못할 사랑을, 사람을 품고서 살아왔다. 그들 삶에 기쁨이기도 하고 회한이 되기도 한 대상, 그 시절들은 흘러가 버렸고 헨리도 올리브도 부부라는 그 충실한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 아니, 잘 견뎌내고 있다고 믿었다. 부부란 사실 자그마한 일에도 무수히 싸우기도 하면서 또 자그마한 일로 인해 가장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떠나보내고 쓸쓸한 노년의 삶에 서로가 위로가 되며 그렇게 오랜 시간을 적이자 동지로 살아온 헨리와 올리브의 삶이 주욱 「다른 길」로만 걸어 왔음을 알게 되는 기분은 어떨까. 이것이 삶인가 싶은.


그 가을 공기는 아름다웠고, 땀에 젖은 건장하고 젊은 몸뚱이들은 다리에 진흙을 묻히고 공을 이마로 받으려고 온몸을 내던지곤 했다. 골이 들어갔을 때의 환호, 무릎을 꺾고 주저앉는 골키퍼. 집으로 걸어가면서 헨리가 올리브의 손을 잡던 날들이 있었다. 이런 날들은 기억할 수 있었다. 중년의 그들, 전성기의 그들. 그들은 그 순간을 조용히 기뻐할 줄 알았을까? 필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정작 인생을 살아갈 때는 그 소중함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올리브는 지금은 그 추억을 건강하고 순수한 것으로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축구장에서의 그 순간들이 올리브가 지녔던 가장 순수한 추억들인지도 모른다. 순수하지 않은 다른 추억들도 있었으니까. - [튤립]


  애써 추억이라 말해보지만 그 어떤 좋았던 날들의 기억이라도 그쯤되면 이 다른 길을 보여주기 위해, 다른 길을 맞닥뜨리기 위해 이 모든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른 길」이 보여주는 파국의 여운은 길다. 인질이라는 엄청난 사건과 마주했지만, 그 대상이 되었지만 헨리와 올리브에게 충격으로 전해진 것은 평생 겪을까 말까한 그 사건이 아니다. 그 사건을 통해 알게 된 오래도록 숨겨왔던, 감춰왔던 서로의 속내다. 위급한 순간에 드러난 아찔한 말들, 그 부대끼는 독설들은 생애 자체가 거짓이었다고 느껴질 만큼 강력하다. 상처 위에 상처, 그 위에 또다시 상처, 거듭된 상처의 중첩. 소설에서는 상실과 상처를 거듭 끄집어낸다.


그녀는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 [작은 기쁨]


  돌아봐도 멈춰봐도 씁쓸하고 쓸쓸한 바닷가. 휑한 마음 가득하게 서 있는 노인 올리브의 생애가 이대로 마감되도록 작가는 두지 않는다. 결코 사과할 줄 모르며 변덕 심한 사람이라는 것이 남편과 아들의 올리브에 대한 평가이며 그래서 힘겨워했던 두 사람, 특별히 크게 싸운 것 같지 않음에도 어느틈에 벌어진 관계는 쉬이 되돌려 지지 않는다. 그녀를 필요로 한다는 아들의 말 한마디를 바랬지만 결코 이뤄지지 않았고 헨리가 죽은 후엔 외로움을 더욱 더 껴안은 채 여전한 성격을 유지하며 올리브는 살아간다.

  외로움과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듯 철썩 달라붙어 있다. 칠십이 넘은 나이라고 해서 외로움에 면역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올리브는 세상을 등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상처와 고독과 외로움에 자살을 선택하지만  「밀물」 속 젊은 케빈과 패티의 놓고 싶지 않았던 생에 대한 의지가 올리브에게서도 나타난다. 노년에 만난 사랑 때문인지, 깨달음으로 인해 젊은 올리브였다면 관심두지 않았을 성향의 잭에게 마음을 주며, 결코 알지 못했던 알려 하지 않았던 지난날을 반추하며 작은 기쁨이 필요한 삶을 깨달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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