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스 형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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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버지스 형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문학동네, 2017.


  화재 현장에서 할머니를 구한 불법체류 노동자가 영주권을 획득했다. 스리랑카인 니말은 ‘한국인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 기여’한 공로로 영주 자격을 얻은 최초의 외국인이 되었다. 제주도 예멘 난민으로 급격하게 불거진 외국인 혐오는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았지만 그 이유와 방식에는 차이가 있으니 이는 곧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 되는 외국인에도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영주권을 얻은 이유를 써 붙이고 살아가진 않을 터이니 니말은 그의 피부색을 이유로 혐오의 시선을 받는 날들을 여전히 겪을 것이다. 한국에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버지스 형제』에선 난민 문제를 중심으로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은 이제는 중년이 된 세 남매의 이야기다. 형제자매는 어릴 적엔 함께 살지만 성인이 되면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들 역시도 그러하지만 가족에게 사건이 일어나자 일을 해결하려 당장 달려간다. 또한 그들은 어릴 적 함께 겪은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재를 살고 있다. 언덕 위에 차를 잠시 세워 두고 함께 타고 있던 짐, 밥, 수전의 아버지가 내린 사이 네 살 밥의 장난으로 구른 차에 아버지가 치여 사망한 일이다. 기억에도 없는 어린 날의 일이지만 이 일은 자라는 내내 밥에게 원죄를 부여하였고 그는 죄책감 가득한 소심한 성인으로 성장했다. 반면 여덟이었던 짐은 집안 가장 역할을 맡아야 했다. 어머니가 사망하고 뉴욕으로 간 짐과 밥과 달리 수전은 고향 셜리폴스에 머문다.

  수전의 아들 재커리가 마을의 소말리족 난민 공동체 이슬람교 사원에 돼지 머리를 던진 일로 그들은 고향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 사건은 2006년 메인 주 루이스턴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라고 하는데 소설에서 재커리는 증오범죄로 기소되어 변호사 일을 하는 짐과 밥이 이 일을 해결하는 과정이 세 남매가 살아온 이야기들과 연결되면서 각각의 상황에서의 갈등을 드러낸다.

  갈등은 수전의 아들 재커리가 돼지 머리를 던진 일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갈등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에 대한 감정만 높게, 깊게 쌓아가고 해결할 의지를 갖지 않고 싸우기 위한 대치상태로 소모적이던 상태에서 재커리가 벌인 것과 같은 특정한 ‘사건’이 드러나야 상황에 대한 다른 형태의 일들이 진행되게 된다. 문제가 있음을 소리칠 수 있고 그렇기에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속 서로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품고서 은근히 드러내왔던 문제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더욱 뚜렷해지는데 그때 소말리족과 셜리폴스 주민들의 갈등은 세세한 것까지 드러나게 된다. 짐과 밥의 가족들 간의 은근했던 갈등의 감정들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메인에 왜 소말리족이있는 거야?” 헬렌이 문을 통과해 옆방으로 가면서 물었다. 그녀가 돌아보며 어깨 너머로 소리쳤다. “족쇄를 찬 게 아니고서야 누가 셜리폴스에 가겠어?”

밥은 헬렌이 그런 식으로 말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버지스 가족의 고향을 싫어하는 티를 노골적으로 내면서도 전혀 거리낄 게 없다는 투였다. 짐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 사람들은 족쇄를 찼으니까. 가난이 족쇄지.”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시각은 결국 같은 방향으로 보인다. 짐과 밥과 수전, 그들의 배우자, 그들의 아이들을 사다리로 연결하여 애정관계와 갈등관계를 선으로 잇는다면 무수한 교차가 이뤄진다. 그들 갈등의 이면을 한발짝 깊이 들여다보면 한 개인에 대한 감정의 틀을 쌓아가는 것이 환경에서 체득한 계급의식이다. 소말리족과 셜리폴스 주민들간의 갈등은 개인간, 가족간의 갈등속에 잠긴 생각의 확장판이다. 가족이 개인에게 애정을 달리 하듯, 사회는 특정 집단에게 애정을 달리한다. 그것은 곧이어 당연한 인식으로 굳어진다. 이 처절한 계급과 인종에 관한 인식, 그것이 갈등의 차별의 편견의 혐오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상처를 준 사람들한테 더 차갑게 대해. 참을 수가 없거든. 말 그대로야. 우리가 누구한테 그런 짓을 했다는 생각만으로도 참을 수가 없어져. 내가 그랬으니까. 우리는 우리가 한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온갖 이유를 다 끌어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이 그러하듯이 이 책 역시도 갈등을 다루고 있지만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하고 따스하게 전개된다. 불안하고 두려움 가득한 밥과 그렇게 보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르지 않았던 짐에게 그리고 헬렌에게, 이 세 남매에게 아닌듯이 보였던 가족의 느낌이 서려가듯 이 사회에서 다양한 인종들이 살아가는 형태도 이 남매들처럼이 아닐까. 미국의 개인주의가 무조건 나쁘지 않고 소말리아의 지역문화와 가족주의가 무조건 답이 아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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