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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평점 :
햄릿이 뭘 안다고?!
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문학동네, 2016.
교사의 학생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면 에이미가 생각났다. 하나같이 다르지 않는 똑같은 패턴의 말과 행동, 여지없는 결말, 그리고 그루밍. 한여름이란 어찌 해도 그늘을 찾게 만들고 그 볕은 얼굴을 그을리게 만든다. 소설의 배경인 무더운 여름 날씨와 셜리폴스 풍경이 습한 열기를 드리우고 숨이 막히게끔 한다.
에이미와 이저벨의 관계도 그렇게 느껴진다. 익숙한 패턴처럼 10대 소녀는 제 엄마에게 애정은 저 멀리 두고 반항과 적대적인 감정을 갖는다. 늘 엄마들은 항상 아이에게 이것을 또는 저것을 하지 말라 다그치고, 아이는 항상 그 말에 반항하느라 관계가 어그러지긴 하지만 제 엄마가 다른 엄마이기를 현재의 모습과는 다르기를 바라는 에이미의 감정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엄마”라고 입 밖으로 나오고 난 이후에야 이저벨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에이미가 그 말을 했다는 사실이, 이저벨에게는,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몇 주 뒤에 그윽한 밤의 어둠 속에서 이저벨은 그 말을 떠올렸는데,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와 똑같은 강도로 그녀의 가슴속에 은백색 고통의 파문이 일었다. 가만히 누워 있는데도 휘청거리는 것 같았고, 심장은 어처구니없는 속도로 질주했다. 흉물스러운 수치심 때문이었다. 그 시인의 이름을 잘못 발음한 일이 도덕적 약점이 되지는 않겠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되었으니 어쩌란 말인가. 진실은 에이미가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는 사실, 에이미가 의도했거나 짐작했던 것보다 더 강한 주먹을 날렸다는 사실이었다.
삼십대에 구두공장 사무실 비서로 일하는 이저벨 굿로는 교사가 되기를 꿈꿨었고 좋은 남편을 갖기를 소망하고 구두공장 사람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셜리폴스에 십사년째 살고 있다. 사람들과 특별하게 교류하지 않으며 홀로 에이미를 키우며 에이미의 일 하나하나 단도리하기 바쁜 이저벨은 이제 햄릿과 같은 책들을 읽으며 그런 ‘책들을 읽는 여자’임을 에이미가,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저벨 마음속에 깊이 있는 또다른 욕망.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실행할 수는 더더욱 없는 유부남 직장 상사에게 품은 이저벨의 욕망과 열다섯 에이미의 세배쯤 나이가 많은 교사에 대한 욕망은 대비된다. 감정의 깊이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실현에 있어서 말이다. 에이미와 이저벨은 지독히도 닮아 있고 그렇기에 그들의 갈등은 평행선으로만 향하는 듯 보인다. 엄마와 딸은 과연 친밀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들이 뒤섞인다. 먹먹해진다. 에이미와 이저벨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감정과 생각속에 매몰되어 버리는 일이 불안으로 인해 확장됨을 느낀다.
자신이 반대만 아는 엄마였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에이미에게 늘 무섭게 대했나? 이런 의문조차 끔찍했다. 그래서 이 아이는 겁이 많은 아이로 자랐고, 늘 고개를 숙이나? 이저벨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줄곧 스스로가 신중하고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혼란스러웠다. 기분이 끔찍했다. 에이버리 클라크가 그녀의 집에 오기로 한 약속을 잊은 일보다 더 끔찍했다. 자식이 겁에 질린 채 자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그녀는 딸을 흘끗 돌아보며, 그 말은 맞지 않아, 완전히 반대야, 하고 생각했다. 내가 줄곧 너를 무서워하고 있었으니까.
오, 그건 슬픈 일이었다. 올바르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도 겁에 질려 있었지. 이 세상 어떤 사랑도 끔찍한 진실을 미리 막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그대로를 물려준다는 진실을.
이저벨에게 마음이 쓰이는 것은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에이미의 나이였다면 에이미의 생각과 행동에 공감하였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놀란 건 이래저래 이저벨의 나이가 생각보다 적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사실이 더 마음쓰이게 된 이유였다. 에이미를 기르며, 대립하며 자신의 지나온 삶, 그리고 전개된 삶을 생각하였을 이저벨처럼 어느 순간이 시간이 세월이 훨씬 지나서야 깨닫게 되는 일들이 있다 해도 참으로 젊은 이저벨이었기에. ‘심각하고 창백한 얼굴을 한 외로운 외톨이’로 살아온 이저벨의 모습이 이 세상 거의 모든 싱글맘의 모습은 아니었을런지. 하긴 그렇게 볼만도 아니다. 이저벨은 그렇게 여기는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맙소사.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사랑하는 남자를 잃는 것에 대해 햄릿이 뭘 안다고?
나약함이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이니! 이저벨은 실내복을 더 단단히 여몄다. 솔직히 슬슬 짜증이 났다. 남자들은 깨우쳐야 할 것이 많았다. 여자들은 전혀 나약하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먼 옛날부터 세상을 흘러가게 한 것은 여자였다. 게다가 그녀만 해도 전혀 나약하지 않았다. 지붕은 새고 차에는 윤활유가 필요한 뉴잉글랜드의 을씨년스러운 겨울 날씨에 혼자 딸을 키우는 여자에게 나약하다니, 가당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