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되는 페미니즘
그녀 이름은, 조남주, 다산책방, 2018-05-25.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누군가의 글은 마음을 끌어당기고 누군가의 글을 마음을 닫아버리게 할까. 이런 경험을 하다보면 역시 글을 쓰는 이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글잘쓰는 이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일 지도. 한편으로는 ‘너는 바른 말을 해도 꼭 그렇게 싸가지 없게 들리냐’와 같은 말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책이 하고픈 말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는다. 82년생 김지영 역시도 그렇다. 하지만 같은 말을 전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왜 이 책을 읽었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 다르다. 이 책은 왜 소설인가. 왜 소설이어야만 했는가에 대해 나는 아직도 물음을 갖는다. 록산 게이의 소설이 나왔을 때는 록산 게이가 그려내는 소설은 어떨까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졌고 록산 게이가 주장하는 이야기를 다른 형태로 잘 그려냈다고 생각했다. 단지 그 방식이 소설보다는 경험을 녹여낸 에세이가 더 좋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소설이 나쁘진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이지만 다른 형태로, 확고하고 강하게 여성이 처한 현실과 극복방안에 관한 부르짖음을 타인의 경험을 덧대어 은유와 상징으로 엮어낸 『어려운 여자들』도 나쁘지 않았다.
최근 100만부를 돌파했다는『82년생 김지영』작가의 이후의 책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또한 같은 이유로 읽지 못했던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정지되었다. 할말이 없다가 먼저였지만 곧 록산 게이의 소설이 생각나면서 이 책에 대해 할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별론데가 아니라, 이게 뭐지였다.
얼핏 책 제목을 보면서 생각하긴 했지만 어쩌면 다르지 않은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난 이 책에 대해 상당한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을까. 소설인가? 왜 작가는 이런 형태로 이 책을 쓰며 소설이라 이름하였을까. 차라리 소설이 아니었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삶을 실제 취재했으므로 그 자체로 이야기는 소중한 경험이고 생각거리를 준다. 하지만 소설에 기대하는 것이 어디 정확한 내용의 전달만을 바라겠는가. 어쩌면 82년생 김지영에서 느꼈던 바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회수하지 못한 마음들이 이 책을 통해 더 느껴졌다.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작가가 우리 사회에 불러일으킨 반향은 매우 긍정적이다. 따라서 그 문제의식을 지속하고 있는 작가에게 더욱 박수를 보낼 일이다. 하지만 문제의식을 좀더 잘 형상화했으면 어땠을까. 책을 읽고 있는 내내 내가 무얼 읽고 있는가, 생각했다. 그녀들의 삶에 공감이 되어야 하는데 조금은… 딴데로 정신팔려 버린. 문학은 무엇인가와 소설과 기사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소설과 인터넷글에 대해서 생각했다. 최근에도 별별 사건이 벌어지며 특히 여성혐오가 극렬한데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친 글, 잘못된 정보에 기대어 올린 상황의 한 일면만을 보고 느끼는 글이 생각났다. 많은 이들이 등장하며 나열된 글은 그만큼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과 차별은 연령과 처한 환경을 가리지 않고 끝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겠다만. 그렇기에 이 글은 르포여야 했다. 소설이 아니라. 문학에 대한 내 생각이 너무 고리타분하여,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인지 이 ‘소설’을 보고 있으면 글을 쓴다는 것에 회의감이 든다.
이 책이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보이게 할까를 생각했다. 페미니즘이 소비되는 형태에 대해 생각했다. 한국사회는 오랜 동안 페미니즘에 무심했다가 갑자기 왜곡되게 흐르고 있다. 언젠가부터 페미니즘은 사회문제를 인식하는 언어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언어가 된 것 같다.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시스템에 의해 차별과 억압받은 이들의 투쟁이자 생존의 언어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의해 소비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이 소설이 그에 대한 대표가 아닐까 한다. 그것에 기대어 기획된 듯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