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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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를 쏟았다


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현대문학, 2018.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떠올려지는 이 책은 미소를 머금고 읽어나가게 된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러시아라는 나라가 가지는 상징성에 힘입어 매력적인 등장인물과 서사를 구축한다. 무인도에 표류한 것처럼 메트로폴 호텔에 종신 연금된 로스토프 백작의 삶은 얼핏 생각하면 ‘갇혀 있다’는 것이 맞는가 할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이어가며 이야기를 지속시킨다.

  암울한 시대이며 한 개인이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인데 로스토프 오히려 백작의 삶은 우아하고 환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이자 일상의 공간이 되기도 하면서도 화려함이 가득한 메트로폴 호텔이 주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백작이 무너져가는 방 한칸에 연금되었다면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러시아, 모스크바가 역사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그 특성에 의해서 이야기는 좀더 환상성을 획득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우습게도 ‘현실성’이 아니라.

  러시아라는 나라를 잘 알 리 없음에도 러시아, 모스크바의 이미지를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모스크바 시가지를 눈에 그리듯 묘사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그러했단 말이다. 작가 소개를 보고 나서야 작가가 러시아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러시아인이었다면 이런 분위기로의 소설이 나왔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이 이 책에 열광하는 이유 중 모스크바를 느낄 수 있다는 점도 크다라는 글을 보면서 내가 읽는 것은 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미국식의 러시아’가 아닐까 생각했다. 모스크바를 느끼지 못한 불만은 다른 데서 채우면 되는 것이고, 그 느낌만 제외한다면 흥미와 생각거리를 주는 소설이다.

  

타국 대신 자기 나라로 추방하면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게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국 추방은―시베리아로 보내든 ‘6대 도시 금지’형에 처하든 간에―자기 나라에 대한 사랑이 시간의 흐름에 부식되어 흐릿해지거나 시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손이 미치는 곳 바로 너머의 것에 최대한의 관심을 기울이는 종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모스크바의 훌륭하고 장려한 것들을 자유로이 즐길 수 있는 그 어떤 모스크바 사람보다도 더 애틋하게 그러한 훌륭한 것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1922년의 러시아, 혁명에 동조하는 시를 쓰지 않았다면 총살되었을지도 모를 구시대의 상징 로스토프 백작. 백작이라는 작위가 그를 호텔에 종신 연금되게 했지만 호텔에서의 삶은 백작 작위가 여전히 유지되는 것처럼 보인다. 백작 작위를 바탕으로 성장해온 그의 습성과 태도는 어쩌면 호텔에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유지시켜주는 힘으로 보이기도 한다. 교양있는 삶을 살아온 그대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고급 와인을 즐기는 그의 취향은 소멸되지 않으며, 여배우와의 로맨스, 소녀와의 친분, 호텔 안내인, 재봉사, 주방장, 식당 지배인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기품과 유머 가득한 매력을 발산하며 친분을 쌓는다. 때론 가족과 고향 니즈니노브고로드에 대한 향수로 외로워하지만 특정 공간에서 나갈 수 없을 뿐 그는 그 공간에서 맘껏 사랑하고 살아간다. 그때에 그는 연금된 자가 아니라 호텔을 지배하는 로스토프 백작으로 느껴진다. 아마도 그가 그 환경 속에서 ‘지배당하지 않는’ 삶을 선택한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으로 백작은 평생을 연금 상태로 지내야 하는 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이 목표를 이루려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지 궁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32년의 시간을 호텔에서 보내야 했던 그에게 호텔을 묘지와 같은 공간이 아니라 활력의 공간으로 바꾼 것은 로스토프 백작의 성향 때문이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소피아를 딸로 인연맺으며 성장을 지켜보고 키울 수 있었던 것이 그의 성향을, 성품을 유지하도록 이끌었다고 본다. 또한 변화까지도. 그가 학식과 유머로 무장하고 있다 소피아가 그 오랜 세월 그에게 살아갈 이유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신사의 현재의 모습은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파괴적인 성향쯤은 나타나지 않았을까.


아이를 양육하는 데는 수많은 걱정거리―학업, 옷, 예절 등―가 뒤따르지만, 결국 부모의 책임이란 매우 단순한 것이다.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안전하게 키움으로써 아이가 목적 있는 삶을, 그리고 신이 허락한다면 만족스러운 삶을 경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이야기는 백작의 성품처럼 고즈넉하고 낭만적이면서도 스릴을 부여하며 흥미있게 전개되지만 현실성을 부여하는 존재는 백작의 친구 미하일이다. 내겐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서 미하일이 현실을 일깨우는, 이곳이 러시아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인물이다. 그래서 쓸쓸하고 슬프게 다가왔다. 그런 친구의 죽음에 그치지 않은 백작의 울음처럼, 자신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유일한 이의 죽음을 느껴 자신을 위해서도 운 백작처럼, 어떤 시대가 소멸되는 느낌이다. 그 시대를 기억해야 하는 몫은 이제 살아있는 이들에게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후추가 통째로 쏟아진 스튜의 맛은 강하고 길게 남는다.


 알렉산드르 로스토프는 과학자도 아니고 현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예순넷이라는 나이를 먹은 그는, 인생이란 것은 성큼성큼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만큼은 현명했다. 인생은 서서히 펼쳐지는 것이다. 주어진 하나하나의 순간마다 천 번에 걸친 변화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우리의 능력은 흥하다가 이울고, 우리의 경험은 축적되며, 우리의 의견은―빙하가 녹듯 매우 느리지는 않다 해도 적어도 천천히 점진적으로―진화한다. 소량의 후추가 스튜를 변화시키듯, 매일매일 벌어지는 사건들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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