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긴 증오
앤지 토머스 지음, 공민희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끝나지 않은 결말


당신이 남긴 증오, 앤지 토머스, 2018.


  음주와 심신 미약을 이유로 감형되는 사건이 연일 한국 뉴스를 장식한다면 미국에서는 총기사망사건이 그렇다. 백인 경찰이 무장하지 않은 흑인을 사살하는 일 역시 높은 통계치를 기록한다. 그리고 이 책은 경찰이 무장하지 않은 아이를 사살하는 순간, 그 후의 일을 이야기한다.

  눈 깜짝할 새라는 말의 의미, 총알이 훅 지나가는 시간이 얼만큼인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몇마디 대화가 오가지도 않은 상황에서 바로, 탕!탕!탕! 총격이 일어난다. 뭐지 할 새도 없이 열여섯 살 아이가 경찰이 쏜 총에 의해 사망한다. 그 바로 옆에 스타가 있었다. 총을 겨눈 경찰에 의해 손을 들어 올려야 하기에 피흘리며 죽어가는 친구를 어루만지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채로. 경찰은 칼릴이 무기를 소지했다며 그를 죽인 경찰관이 법의 심판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발표한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니 이야기가 매우 간단하지만 이 책은 제법 페이지가 많다. 순식간에 읽혀지는데 내면을 깊숙이 들어가는 심리묘사는 없지만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은 무겁지 않게 느껴진다. 스타의 가족사는 복잡함에도 그들의 끈끈한 애정이 불안을 이겨내게끔 하는 힘이 되고, 청소년 형제들의 대화가 현실적이라 웃음짓게 한다. 다인종 국가를 정체성으로 하지만 인종차별의 나라인 미국 사회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어떤 것인지 스타 가족의 입을 빌려 보여준다.


“‘당신이 아이들에게 심어준 분노가 모두를 망가뜨린다(The Hate U Give Little Infants Fucks Everyone)‘의 앞글자만을 보라고. 터그 라이프 THUG LIFE! 폭력배의 삶이잖아. 우리가 어릴 때 사회가 심어준 사상이 우리가 통제 불능이 되었을 때 오히려 사회를 공격하게 하는 거야.”


  이 책을 읽고프게 이끈 건 제목이다. 당신이 남긴 증오. 인종차별과 사회부조리를 노래한 힙합가수 Tupac의 말이라고 한다. 폭력배의 삶으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 스타의 아빠는 총과 마약으로 연명하는 생활을 청산하려 감옥행을 택하고 자신의 아이들은 빈민가인 가든 하이츠에 있는 학교가 아니라 백인이 다니는 윌리엄슨에서 공부하게끔 한다. 그곳이 제대로 된 교육을 하며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바로 그거야. 마약은 어디선가 흘러 들어와 우리 동네를 망가뜨리고 있어.” 아빠가 말했다. “살기 위해선 마약이 필요하다고 하는 브렌다나 살려면 마약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칼릴을 좀 봐. 브렌다는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일을 못 구할 거고 일을 못 구하면 재활원에 들어갈 돈을 마련하지 못해. 칼릴이 마약을 팔다 붙잡히면 평생을 감옥에서 썩거나 아니면 제대로 된 직업을 못 구해서 다시 마약을 팔아야 할 수도 있어. 그게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증오란다. 우리에게 맞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 둔 것. 그게 터그 라이프야.”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든 하이츠에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스타는 백인 친구들과의 학교에서의 삶과 생활과 생활터전인 가든 하이츠의 친구들과 삶 사이에서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삶에는 차이가 확연했다. 백인 친구와 백인 남자친구들과는 공유할 수 없는 흑인이라는 정체성은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인한 단절과 균열을 만들어 간다. 친구 칼릴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쉽게 경찰의 총을 맞게 되는 걸 목격했고 마약상이자 폭력범으로 오인된 채 죽어 마땅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스타가 느끼는 ‘인종차별’에 대한 생각은 강력한 혼란을 주는 요인이자 자신의 정체성과 정의를 각성하는 요인이 된다.

  소설 속에서 스타의 친구들은, 가든 하이츠의 아이들은 갱단에 소속되기를 원하지도 않고 폭력과 마약상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떡하든 그러한 삶에서 벗어나고파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도 버거운데 그들을 보살펴야할 엄마와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삶을 안고 있다. 칼릴의 살해사건의 목격자임을 세상에 드러내려하지 않으려던 스타가 그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조금씩 내딛을 때, 친구들 사이의 관계에서 흔들릴 때 이끌고 붙잡아 준 것은 일차적으로 스타의 부모다.

  스타의 엄마가 다른 오빠인 세븐이 현재의 가정에서의 삶과 스타의 집에서의 삶이 다르듯이 아이들이 가정에서 제대로 보호받고 교육받지 못한다면 가든 하이츠의 아이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스타의 가족뿐만 아니라 동네를 휩쓰는 마약상의 무리들을 보건대 마을공동체가 변하지 않는다면 스타의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가든 하이츠를 떠나 다른 곳에 간다 한들 1-15와 같은 경찰이, 검찰이, 판사가, 언론인이, 헤일리와 같은 친구들이 있다면 스타의 가족이 터전을 옮긴들 무슨 소용이 될까. 한 사회가 사회구성원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행하고 있는지….   

  

그게 문제다. 우리는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게 내버려두고 그 사람은 너무 말을 많이 한 나머지 선을 넘지만 자신이 그런 줄 모르고, 듣는 우리도 그냥 받아들인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이런 상황에서 잠자코 있다면 말을 할 수 있는 게 무슨 소용일까?


  한편으로는 동화같이 여겨지기도 했는데 그건 오로지 스타의 가족들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가족애와 사회의식 때문이었나 보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책의 뒷장에 자리한 경찰에 의해 사망한 이들의 명단이 현실을 다시금 냉철하게 바라보게 한다. 스타는 칼릴을 포기하지 않았고 침묵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소설의 결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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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8 0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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