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의 인문학 - 이상한 놈, Peeling의 인문학을 만나다, 수정증보판
유범상 지음 / 논형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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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건대

필링의 인문학, 유범상, 논형, 2014.


  여전히 인문학 열풍은 지속되고 있다. 힐링이든 필링이든 인문학 열풍이 지속되는 것에 비하면 인문학적 사고와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하긴 아직도 필링보다 힐링 쪽으로 그 무게가 지워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저자는 힐링과 필링의 인문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힐링의 인문학이 개인의 내면문제에 집중하여 개인의 강점을 찾고 심리치료에 노력하는 것이라면 필링(Peeling)의 인문학은 인간을 정치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끊임없이 눈가리개를 문제 삼아 그것을 벗겨내는 것, 나를 지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을 권력관계와 구조 속에서 찾으려는 시도다. 그리하여 전자에서 인문학은 대중들을 계몽할 대상으로 보거나 고급 교양교육과 사교의 장을 만드는 데 관여한다면 후자의 인문학은 필연적으로 정치와 만나게 된다고.


이제 인문학은 개인의 이해와 힐링(healing)을 넘어 공동체의 갈등과 구조를 필링해야 한다. 힐링은 힐링 자체로 힐링되는 것이 아니라 필링과 필링의 정치를 통해 진정한 힐링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필링의 인문학은 진정한 힐링의 조건을 만들고, 생각하는 정치적 주체를 통해 작동할 것이다. 이때 인문학은 단순히 나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정치적 실천이 되는 것이다.


  수없이 개인의 힐링을 도모한다 한들 내 힐링의 장소가 시끄럽고 불편하다면 궁극적인 힐링이 이루어질 수 없다.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거나 그 장소가 불편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삶 자체가 정치와 연결되지 않을 수가 없다. 정치적이다라는 말이 주는 그 부정을 함의하는 말들 때문에 정치에 대한 혐오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정치를 삶과 분리시켜왔지만, 사실 겪어본 바에 의하면 하나하나의 삶에서 정치가 개입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럼에도 정치에서 뒤돌아 더 멀리로 달아나도록 부추기는 것은 그냥 이대로의 삶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이들 때문이란 생각이 거듭 든다.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생각당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생각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생각과 그에 따른 욕망은 자신의 것이 맞는지 타자의 것은 아닌지 말이다. 또한 헤아려 생각해야 할 것도 많다.


우리는 상식이라는 프리즘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런데 상식이라는 샘은 그 시대의 가치관과 철학, 이념이라는 저수지에서 나온다. 지식・역사・상식 등은 권력관계의 산물이다. 이것의 이면에는 어떤 권력, 즉 국가든 자본이든 그들의 의지와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이나 상식은 교양이 아니라 지배의 무기이고 정치의 싸움터이고 생사의 바로미터이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매트릭스 안에 머무를 수 있겠는가.


  지금을 지배하는 상식은 어떠한지를 생각해보면 거듭 기이하고 희한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만큼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대체로 상식이라는 것, 지켜야 하는 것에 관해서 일정한 방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상식에서 벗어난 것을 행할 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너무나 당연하게 몰상식을 부르짖으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나아가 그것을 자랑스럽고 힘차게 드러내는 어떤 상식을 다양성의 이름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이 시대의 가치관과 철학, 이념’의 한 틀이라는 것을 수용해야 하는 것인가. 저자는 ‘생각당하는 삶’을 경계했는데 생각당함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만을 알기 때문이구나 싶다. 함께 살아간다는 말이 지니는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책을 읽다 주먹을 굳게 쥐었던 것은 잠깐뿐 현실을 보면 고개부터 저어진다. 힐링, 필링,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정치적 무기는 어떤 철학과 상식어아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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