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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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인식하는 방식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손보미, 문학과지성사, 2018.


  제법 본 단편이 여기 수록되어 있다. 단편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 수상작이다. 책 제목과 같은 단편은 없다.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내 관심에선 밀려난다. 고양이는 조용히, 우아하게 밤에 찾아드는 존재가 아니라 한밤 미칠듯이 갸르릉거리는 소리로 싸워대는 고양이가 더 각인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하더라도 끝끝내 이곳이 제 자리라 주장하는 것처럼, 옮겨야 하는 건 나인 것처럼 쳐다보는 고양이들의 그 소리없는 움직임에 오히려 놀라는 건 나라는 걸 기억해 낸 때문인지도.

  소설 속 무단침입한 고양이들처럼 내가 마주친 고양이들은 “폭신폭신하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종류의 침입”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드럽다니, 이미 침입 자체가 부드러움이란 말을 허락하지 않는다. 침입이란 이미 폭력의 한 부류 아닌가.

   

나는 가끔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에 대해 생각한다. 내 생각에 그건 아주 폭신폭신하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종류의 침입이다. 아주 폭신폭신하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천천히 파고들어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고 부지불식간에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하지만 때때로 무단 침입한 고양이는 정반대의 작용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게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냉정한 방식으로.


  후자의 의미가 이 소설집에 어울린다. 조용히 침입하여 자리잡고 있던 고양이들을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그 고양이를 발견한 순간에 인식하게 되는 것들. 그로 인해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모습을 보게 된다. 아닌듯하면서 줄곧 고양이를 의식하고 있던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해야 할까.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고양이에 대한 생각, 즉 타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생각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타인에 대한 외부에 대한 지나친 의식은 이미 나를 갉아먹는 것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며칠 후 그녀는 혼자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 후 백화점 안 카페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녀는 쇼핑백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저들 중 나처럼 진짜 고통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진짜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삶이 무엇인지 운명이 무엇인지를 한번쯤 생각해보는 일은 달달한 케이크를 맛보면서도 생겨날 수 있는 물음이다. 살아가는 동안 가벼이, 쉬이, 무심히 여겼던 어떤 일들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칠지는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알게 된다. 인생이란 그냥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란 것, 사는 건 다 그런 거라는 말들이 책속에서 자주 반복된다. 커다랗게 갸르릉거리는 것에만 몰두하고 그것만이 삶을 뒤흔드는 역할을 하리라 생각하지만 소소하고 사소한 일들의 반복과 우연으로 점철되는 삶, 그것이 주는 파장에 대해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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