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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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껄 그대

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한겨레출판, 2018.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 아직 독립은 먼 1920~30년대다. 생각해보면 이 시기를 살아가던 우리 민족은 헤아릴 수 없음에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의 삶으로 사람들의 모습이 유형화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문학작품에서 그릴 수 있는 진정성있는 이야기이자 주권 잃은 민족이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실제 모습일 수밖에 없음이다. 이 소설은 그런 전형적인 삶을 살아가야 했던 여성이 태어날 때부터의 이름, ‘강주룡’으로 ‘두루주에 용룡 자, 내 한 몸으로 이 세상 다 안아주는 용이 되라’는 이름 뜻처럼 오래도록 기억될 삶을 소설화했다. 당대의 전형적인 유형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아니라 실존인물이 살아간 삶의 이야기다.

  1930년이 아니라 마치 1970~80년대 여공들의 삶이 아닌가 여겨진다면 강주룡이 한 일에 대한 놀라움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노동운동가이자 최초의 고공투쟁가인 강주룡의 인생은 소설에서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그렇다는 것은 무언가 삶의 전환이 이루어졌음으로 봐도 무방하다. 노동운동가로서의 강주룡의 일생만을 알았다가 소설을 통해 독립운동가로서의 강주룡의 삶 또한 알게 된다.

  1901년생 평안 출생 강주룡의 삶은 시대적 배경 속에 흐르고 흘러가는 삶을 보여준다. 당시 수많은 이들이 간도로 이주한 것처럼 일제의 억압과 가난으로 강주룡의 가족 역시 서간도로 이주한다. 그때 나이 14세, 그 시대의 여성의 삶이란 일제에 의한 억압에 더해 가부장제 속에서의 부모와 남편에 의해 더 억압당할 수밖에 없는 삶이다.


주룡은 말을 건다. 얘, 강녀야, 넌 곧 시집을 간다. 몹시도 고운 이 하고 부부가 된다. 강녀야, 너는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 그런 것 상상이나 해봤니, 서방은 널 집에 돌려보내고 곧 죽는다. 넌 살인범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다. 하나만 일어나도 기가 막힌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 이 같은 말들을 꿈속의 강녀는 듣지 못한다.


  스무살,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5살 어린 신랑과의 혼인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면 독립 운동에 뜻을 품은 남편을 따라 ‘함께’하기로 한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그 선택, 필연적으로 보이는 그 선택은 강주룡에게 내재한 신념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독립군에서도 뛰어난 기지로 활약하는 강주룡이 같은 뜻을 지닌 독립군에게 그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성’으로 부각되어 당하는 조롱과 질투, 멸시를 보고 있으면 그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독립이라는 뜻을 품은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그러할진대 ‘시어머니’와 ‘아버지’라는 가부장제의 뜻을 따르는 대표들은 오죽하랴. 아들, 자기 자신의 삶과 안위를 중시하던 그들에 의해 강주룡이라는 사람으로서의 가치는 훼손당한다. 독립운동 하던 남편의 병사의 책임이 오로지 강주룡의 몫이라 규정짓는 그 흔하디 흔하게 하는 말, ‘남편죽인 년’, 당연한듯한 그 굴레에 이젠 나이 많은 지주에게 팔려가야 하는 삶이 그 시대에도 여성들의 삶이었다.


돼먹지 못한 인간이 한 고약한 말은 잊으면 그만이다. 누가 나더러 모단 껄이 아니라 했다고 내가 정말 모단 껄이 아닌 것은 아니다.


  독립운동하는 남편을 따라가 직접 독립운동활동가가 되었던 것처럼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규정짓는 삶을 살기 위해 강주룡은 그들이 씌운 굴레를 내던진다. 가족을 떠나 평양 고무공장의 노동자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물론 그 환경이 여성에게 가하는 핍박이 덜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 일이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강주룡은 모단 껄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여성 노동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올바른 것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굳건히 하며, 그 부당한 노동환경에서 특히 여성에게는 더욱 더 열악하고 차별받는 상황에서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을 외치며 노동운동의 선두에서 활약한다. 평양 을밀대 12m 지붕에 올라 임금삭감을 반대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투쟁의 선구자가 된 강주룡은 이후에도 단식투쟁을 지속한다. 1970~80년대 내 나라에서도 노동운동은 힘겹고 어려운 일이었고 무참히 짓밟히는 일이 허다했으니 일본경찰에 잡히고 감옥을 드나들며 투쟁하는 강주룡의 몸이 쇠해지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렇게 서른살 강주룡의 삶이 이야기가 끝이 난다.


내래 배워 아는 것 중 으뜸 되는 지식은, 대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처럼 명예로운 일이 없다는 거입네다. 하야서 내래 죽음을 각오하고 이 지붕 우에 올라왔습네다. 평원 고무 공장주가 이 앞에 와 임금 감하 선언을 취소하기 전에 내 발로 내려가는 일은 없습네다. 끝내 임금 감하를 취소치 않는다면 내 고저 자본가 압제에 신음하는 노동 대중을 대표해 죽기를 명예로 여길 뿐입네다.


  강주룡의 일대기, 전기문을 보는 듯이 쓰인 소설은 쉬이 책장이 넘겨진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벌써 끝이 난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실존인물의 삶이니까 상상에 보태더라도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겠지만 어쩐지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더구나 노동운동의 이야기를 다룬 2부에서의 고공투쟁을 다룬 부분은 생각보다 너무나 휘익 지나가는 듯이 느껴져 단신 기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아쉬움은 강주룡 생애에 대한 안타까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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