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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주 - 우연이라 하기엔 운명에 가까운 이야기, 2018년 뉴베리 대상 수상작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18년 9월
평점 :
열한 살의 우주
안녕, 우주-우연이라 하기엔 운명에 가까운 이야기, 에린 엔트라다 켈리, 2018.
책을 읽으면서 우주로 날아가 버렸다. 나의 열한살은 어떠했더라, 과거에 잠기어 있다보니 아이들의 이야기를 자꾸 놓쳤다. 다시 책장으로 눈을 돌려 커다란 활자의 책장을 술렁 넘겼지만 내 머릿속은 책속 아이들의 세상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그 시절과 지금 이 시절의 어디를 헤매며 무한 글자를 반복해서 읽고 있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이라도 사람들의 삶은 다르지 않고 반복되어 간다. 아이들의 세상에서도 어른들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왕따가 있고 고독이 있다.
할 일이 무궁무궁해.
친구가 많을 필요는 없어.
친구 따위 없어도 상관없잖아.
나만 있으면 돼. 그렇지?
혼자 노는 게 제일 좋아.
그래야 성가신 일도 적지.
열한살을 보내고 중학교로 진학하게 될 두 아이는 깊은 고뇌를 짊어지고 있다. 소심한 아이와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끼고 있는 아이. 마냥 수줍고 부끄러움 많고 소심한 아이 버질은 발렌시아에게 호감을 느끼며 친구가 되고파 한다. 하지만 여지껏 한번도 말을 걸어보지 못했다. 그의 이야기 상대는 할머니와 기니피그 걸리버이다. 발렌시아는 친구들이 느리다는 이유로, 발렌시아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일들이 싫다는 이유로 같이 놀지 않기로 한 이후 친구를 잃어버렸다. 홀로 자연과 대화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그 말이 참 씁쓸하게 울린다. 모두를 괴롭히는데 탁월한 역할을 하는 쳇 블런스에게 이 두 아이도 예외가 아니다. 놀림과 괴롭힘을 받는다. 그 자신 허풍쟁이에다 겁쟁이면서.
동화속에서 가장 아이답기도 하고 전혀 아이답지 않은 존재가 카오리와 동생 겐이다. 카오리는 어린이들을 상대로 점성술을 알려주는 어른은 절대 사절을 고수하는 열한살 점성술사다. 버질이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하는 순간, 카오리는 절대 우연이 아니라 운명처럼 이어진 버질과 발렌시아의 점괘를 예언한다. 그렇게 우연인듯 운명처럼 버질은 쳇 때문에 우물 속으로 갇혀버리고 우물 속에서 버질이 나오기까지의 여정이 시작된다.
이 책을 연애소설화 시키면 주인공을 못살게 구는 쳇이란 악역으로 인해 운명처럼 만나게 된 버질과 발렌시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동화를 그런 익숙한 드라마로 봐버리면 신비감이 덜해지고 만다. 어떻든 이 동화가 가지는 매력이란 운명이라는 환상성, 그것이니까. 소심한 버질이 우물 속에 갇혀 아무에게도 도움을 얻지 못할 상황에서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 존재와 대화하며 자신을 다독이는 일, 발렌시아의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성자 르네에게 이야기하며 홀로 외로움과 상처를 다독이는 일을 보면, 섬세하고 여린 아이들이 누군가의 한마디 말로 인해 얼마나 헤매고 있을까 안타까워진다.
“우리 동업해야겠어.” “뭐라고?”
난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카오리가 다시 말한다.
“우린 동업을 해야 해. 나는 영적인 세계를 알고 넌 자연의 세계를 알아. 더없이 좋은 관계잖아. 그래서 운명이 우리를 친구로 묶어준 거야.” 친구.
하지만 그날의 사건들은 이렇게 아이들의 일상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한걸음 내딛어간다. 점성술사 카오리가 누누이 강조하듯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의 힘으로, 전 우주가 만들어내는 신비한 마력으로. 물론 어떤 큰 사건을 겪었다고 사람이 쉬이 변하지는 않는다. 우물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어준 말을 나눠보고픈 아이 발렌시아와 만났음에도 말한마디 하지 못하는 버질의 소심함은 여전했으니까. 고마워라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헤어져 버리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끝끝내 쳇 블런스는 그 악당의 면모를 유지하니까.
조용하게 웃음짓게 되는 이야기에 필리핀의 할머니가 들려주는 전통 설화가 얽이면서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장마다 각각의 아이들로 화자가 달라지는 이야기 방식은 동화속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허술한듯 모든 우주의 신비를 믿는 카오리라는 점성술사의 존재가 신비로운 세상을 믿고파하는 아이의 마음 같아서 응원해주고프다.
새로이 눈을 뜨면 세상이 달라 보이지. 시간의 마술이란다. 오늘 믿은 것을 내일은 믿지 못할 수도 있어. 보고 있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거든.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다른 세상이 보이는 거야.
새벽 세 시 삼십분. 이 시간 아이들이 잠들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주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별자리도 흘러가는 조용한 그 새벽. “안녕”이라는 인사말. 누군가의 내딛음이 시작된다. 동화속에서처럼 아이들이 거칠고 힘든 세상에서도 신비함을 믿어가며 긍정의 힘을 믿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점성술사를 만나러 가고픈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