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안 데이즈 - 바다가 사랑한 서퍼 이야기
윌리엄 피네건 지음, 박현주 옮김, 김대원 용어감수 / 알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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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또는 허풍

바바리안 데이즈-바다가 사랑한 서퍼 이야기, 윌리엄 피네건, 2018.


  태풍 소식과 함께 비바람이 몰아친다. 산 이름이라는 태풍 콩레이가 바다에 거대한 파도를 남긴다. 제주도에 몰아치는 파도 사진을 보다가 이 위험상황에 안전을 대비해야 함에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갑자기 가슴 떨림을 느낀다. 이런 기분은 어쩌면 파도를 타는 서퍼의 이야기, 『바바라인 데이즈』때문이 아닌가 싶다. 파도를, 물을 무서워하는 내 마음에 파도에 대한 환상과 도전의식을 함께 심어준.

[태풍 콩레이가 몰고 온 파도/ https://news.v.daum.net/v/20181005111056827]


  이런 마음으로 바다에 나간다거나 황홀경에 잠겨있다면 나도 자르징 노파에게서 저주를 들을지도 모른다.


“당신들 서퍼는 부모님에 대한 존경도 없고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한 존중심도 없어. 저런 바다에 나가서 목숨을 걸어? 뭐를 위해서? 이 마을에 대한 존경심도 없는 거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수 세대에 걸쳐 바다에 목숨을 걸어온 어부들을 존중하지 않는 거야. 여기 사람들은 이 바다에서 자기 목숨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어. 당신들은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없다고!”


  누군가에게는 생활의 터전인 곳, 그렇기에 위험에 맞서는 곳에서 목숨을 건 유희를 벌이는 서퍼들이 낭만적이지도 아름답지도 대단하게도 보이지 않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파도를 타는 일이 살아가는 힘이고 존재를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바로 이 책의 저자와 그와 함께 한 서핑 동료들이 그렇다.

  2016 퓰리처상 수상작인데다가 ‘버락 오바마가 선택한 책’이란 수식을 받는 이 책은 저널리스트인 작가의 서핑과 함께 한 삶의 이야기다. 수영장에서도 허우적이는 내게 파도를 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세계에 빠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파도를 타는 것 자체보다 수려한 이국의 해변풍경, 남태평양,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아프리카, 페루 등 작가가 간 모든 장소에 때한 끌림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거침없이 파도를 탈 때의 그 기분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한동안은 이 파도타기를 앓을 듯하다.


커다란 파도 속으로 나아가는 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공포와 황홀이 사물의 가장자리 주위를 돌면서 밀려갔다가 밀려오며 각기 꿈꾸는 사람을 덮치겠다고 위협했다. 지상의 것 같지 않은 아름다움이, 움직이는 물과 잠재된 폭력, 지나치게 진짜 같은 폭발, 그리고 하늘이 들어선 거대한 경기장으로 스며들었다. 장면은 펼쳐질 때도 신화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늘 광포한 양가성을 느꼈다. 나는 다른 곳 어디에도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른 곳 어디든 있고 싶었다.


  일찌감치 이 세계에 빠진 작가는 세계에서 유명한 서핑 장소로 꼽히는 10곳을 선정한 시기에 벌써 아홉 곳에서 파도를 탔을 만큼 서핑에 중독되었다. 그에게 서핑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어린 시절 하와이에서 하울리로서 이방인으로 낙인찍힌 순간부터 그는 서핑의 세계를 즐기며 자유에 대한 탐닉을 모험의 강렬함에 빠졌다. 서핑의 세계에만 빠져 오로지 세계를 돌아다니고 파도만 탔을 듯하지만 사랑도 우정도 일도 한다. 정치사회에 무관심하지 않고 학위를 땄고 저널리스트가 되어 있다.

  저자가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서핑을 하면서 깨달아가는 삶과 죽음과 인생에 관한 생각 덕분이다. 저자의 인생의 스승은 서핑을 통해서 얻어지는 생생한 감각과 관조로 가능하다. 파도에 쓰러져 부상을 입기도 하고 겨우 살아남은 일도 수두룩하지만 강렬한 태양 아래 푸른 파도의 소리는 심장을 벌떡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는 모양이다. 서핑은 저자에게 마리화나와 약물보다 더 중독되어 그를 이끄는 것이었다. 종군 기자로 활동을 할 때에도 결혼하여 아이가 태어났어도 딸과 함께 파도를 타는 그가 노년에 이르러 점점 거친 파도를 타는 것에 힘들어 하게 되더라도 그에게 파도를 타는 일은 멈출 수 없는 심장이었다. 자기탐색의 과정이었다.


남태평양을 전전하는 동안, 내 안에 뭔가 다른 것이 일어났다. 브라이언의 관점으로 보면 수염보다도 더 곤란한 것이었다. 나는 자기 변혁에 관심이 생겼다. 나는 우리가 옮겨 가며 함께 살아온 섬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괌에 가기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 폰페이에서 사람들이 사카우 잔을 둘러싸고 느긋하게 살아가며, 산호돌이 가득한 소세계에 깊이 빠져들었을 때부터였다. 나는 여기에 배우러 왔다고 생각했다. 그저 멀리 떨어진 장소와 사람들에 관한 몇몇 가지를 배우는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존재의 새로운 방식을 배우고 싶었다. 바뀌고 싶었고, 존재적으로 덜 고립된 느낌을 받고 싶었으며, 뼛속까지, 사람들 말대로 이 세계에서 편안해지고 싶었다.


  서핑을 하는 동안 나이가 들어간다는 점도 있지만 서핑을 하기 위해 찾은 곳곳에서 매번 느끼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탐색 또한 저자를 성장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많은 나라를 돌면서 파도에 몸을 맡기는 그의 서핑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실제 파도를 타고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래서 저자의 희열과 공포와 두려움을 내가 느끼는 듯한 착각이 들면서 파도가 환영처럼 느껴지게 된다. 서핑을 하는 그들에게 전해오는 두 개의 상반된 말이 있다.

 

“큰 파도는 높이가 아니라 공포의 정도로 재는 것이다.”

“큰 파도는 높이로 재는 것이 아니라 허풍의 정도로 재는 것이다.”


  이 역설의 말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파도타기를 나는 해보지는 못할 것이다. 강렬한 끌림을 느끼지만 실행력이 떨어지느니만큼 인생의 버킷리스트에 올려두어 단지 동경으로만 간직하고 말지 모른다. 대신 인생의 파도에서는 이 두 가지 역설을 재볼 수는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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