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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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라는 죽고 싶다고 했다


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2018.


   이야기의 구성 때문에 타임슬립처럼 느껴지는 소설이다. 동화로 유명한 상을 수상한 작가의 이력이 동화느낌도 나게 한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주연으로 영화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하니 이런 이야기가 소위 ‘먹히는’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임슬립 이야기가 계속 등장하는 것만 봐도. 이 소설은 시간여행자의 이야기라기보다 그저, 너무 오래 사는 사람의 이야기다. 너무 오래, 한 천년 정도? 그런 이가 절대 해서는 안되는 한가지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란 규칙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절대 해서는 안된다라고 할 때 목적어는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것을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하는지 그것은 ‘너무 오래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일까.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먹고 자고 사랑하고 그런 일들일텐데 사랑하지 않아야 하는 삶이란 일상의 삶을 살지 말라는 말과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삶처럼 살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 왜 그토록 오래 살아가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든다.

  보통 사람보다 15배 느린 성장속도를 가진 1581년생 톰 해저드는 다른 이들에게 40대로 보인다. 톰 해저드가 전하는 이력서를 검토해보자. 과연 무슨 일들을 했는지. 21세기 현재 그는 런던의 중고등학교 역사 선생이다. 오래 살아온 그의 이력을 볼 때 직접 경험한 역사를 전할 수 있으니 탁월한 직업선택이 아닐까 한다. 역사에는 전쟁이 있고 중세의 마녀사냥이 있다. 마녀사냥이라는 큰 타이틀로 묶일 이야기 속에 톰의 이야기가 있다. 아들보다 늙어 보이는 엄마는 당연하지만 그 아들과 나이차가 너무 나 보인다면 아들이 늙지 않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엄마는 마녀다. 늙지 않은 아들이 악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마녀가 된다. 엄마가 아들을 늙지 않게 마법을 걸었으니까. 왜? 엄마는 마녀니까.

  “살아남으라.” 물속에 던져진 엄마의 유언이었다. 살아남은 톰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여지없이 늙지 않는 남편이 된 톰은 또다시 고통을 겪는다. 딸이 자신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 톰의 딸을 찾기 위한 여정에는 다양한 시대와 나라를 오가는 톰의 삶이 이어진다. 딸과 자신처럼 늙지 않는 병을 가진 사람들, ‘소사이어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8년마다 완전히 정체를 바꾸며 사는 소사이어티의 일원으로 딸을 찾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바를 함께 하는 톰. 소사이어티의 두려움은 과거의 마녀사냥처럼 현대에서 생체실험 대상자가 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를 지배하는 엄청난 무언가의 존재를 믿게 돼. 우리 마음속에 갇혀 사는 무언가를. 그건 우리를 도울 수도 있고, 망쳐 놓을 수도 있어. 우리는 우리 자신들에게조차 수수께끼로 남아 있잖아. 과학조차도 그걸 인정하고.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우린 아직도 모르고 있어.


  소사이어티가 금지하는 규칙. 사랑에 빠지지 말라. 사랑과 죽음에 대한 생각,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삶, 시간이란 무엇인지 산다는 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고뇌를 거듭함에도 톰은 다시 사랑에 빠지려 하고 있다.


나처럼 오래 살다 보면 세상에 변치 않는 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래 살면 모두가 난민이 되어 버린다. 국적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뿐 아니라 오랫동안 고수해 온 자신의 세계관이 틀렸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을 정의하는 건 오로지 인간으로 사는 것뿐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고.


  시간을 오래 살아가는 톰의 고뇌는 사람들이 살면서 행하는 생각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단지 그 생각이 15배쯤 더 길고 오래 한다고 봐야할까. 결국 시간이란 굴레에서 인간의 해답은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삶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현재는 매 순간 속에서 영원히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 살아야 할 현재가 많이 남아 있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얼마든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면 비로소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나는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않을 거고.


  영화는 어떻게 표현될지 모르겠지만 소설속 고뇌는 익숙하고 결말은 식상하다. 시간에 대한 인식은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기엔 ‘현재’를 소중히 하라는 말 외엔 없는 모양이다. 그리스신화에서 시빌라는 아폴론이 한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손으로 모래한줌 움켜쥐고 그만큼 살게 해달라고 했다. 젊게 해달라는 것을 잊었기에 늙고 쪼그라들며 천년을 살아간 시빌라에게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냐 물었다. 지칠대로 지친 시빌라는 “죽고 싶어”라고 대답했다. 톰이 시빌라에게 자신의 고뇌를 전해주었다면 시빌라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톰은 늙지 않고 웬만한 병은 걸리지 않는 신체를 지녔으니 시간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는 시빌라에 비해 여유롭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다가오는 걸까.


시간이란 그런 거야. 늘 한결같지 않지. 살다 보면 공허하게 느껴지는 날들도 있잖아. 그게 몇 년이나 몇 십 년 동안 지속될 때도 있고. 괴어 있는 물처럼 무의미한 시간들. 그러다가 아주 특별한 해를 맞게 되지. 그건 딱 하루일 수도 있고, 오후의 짧은 순간일 수도 있어. 모든 게 갖춰진 완벽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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